사용자와 소통하는 방법과 사수의 중요성
모바일 LBS TFT 기획자
앞선 글 "초보 기획자와 백수였던 그때"에서 말했던 것처럼, 게임 회사에서 월급을 밀려보고, 6개월간 백수생활을 하던 나는 드디어 4번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15년간 나는 같은 회사를 다니게 되고
바로 25년 6월이 입사 15주년이 되는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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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내가 취직하게 된 계기가 그렇게 지겨워했던 LBS(Location Based Service) 경력 덕분이었다.
우리 팀은 TFT
내가 새로 들어간 회사의 팀은 TFT(Task Foce Team)였다.
내비게이션에 대한 경험과 리소스들을 모바일 앱으로 만들어 서비스를 하자고 팀장님은 회사를 설득했고, 그렇게 우리 팀은 꾸려졌다. 기획자 1명을 더 추가 영입했고, 그게 나였다.
2년간 힘든 점도 있었으나, 재밌었고 보람찼던 추억을 꺼내보자.
보람차다 보람차!
웹/앱 UX 기획 이외에도 UV(User Visits)와 PV(Page Views), 앱스토어 순위를 체크하는 것과 함께 앱 스토어 제품 평가에 대한 피드백도 매일같이 체크해야 하는 것도 기획자의 Role이었는데, 조금이라도 순위가 오르거나, 고객의 따뜻하고 정겨운 피드백이 올라오면 역시 즐거웠다.
그리고 SNS 홍보 및 고객 관리 업무도 있었는데, 어느 날은 이벤트에 선정된 우수 고객들에게 상품을 보냈어야 했다. 순위별로 선정된 상품을 사 오고 포장하고 진심을 담아 카드에 일일이 손으로 꾹꾹 눌러 담아 쓴 후 상품과 함께 택배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서비스를 진심으로 즐겁게 사용하는 사용자와의 피드백과 그 답례여서 그랬는지 더욱 보람찼었다.
무서운 콜센터 체험
하지만, 서비스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피드백이 올라오는 부분은 왠지 마음이 불편하고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정말이지 고객의 불만을 체크하고 VOC(Voice of Customer)를 처리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 같다.
울 회사는 내비게이션에 대한 고객 응대를 하는 품질관리팀이 있었고, 별도의 전문적인 콜센터와 함께 해당 업무를 같이 했었다. 입사하면 무조건 콜센터 체험이 있어서 1-2시간 같이 고객의 콜을 같이 듣고 경험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도 기수 별로 참가하는 체험 시간에 참여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가게 된 콜센터는 파티션 사이사이에 앉아계신 상담원 분들의 표정에서 비장함과 긴장감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첫 콜을 받기 전에 관련 안내를 해 주셨고, 드디어 1:1로 나와 같이 매핑되신 상담원 분과 함께 같이 헤드셋을 끼고 첫 콜을 듣는데, 나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듣기만 하는 건데도 너무 살 떨리는 경험이었다.
아무래도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다 문제가 생겨서 화가 난 상태의 고객들이다 보니, 당연히 목소리는 격앙이 되어있었고, 그때도 고객 상담하시는 분들의 보호를 위한 제도(고객응대근로자 보호를 위한 산업안전보건법)가 시행이 되고 있었을 테지만, 지금보다 더 열악했었던 때였던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욕하는 것을 듣지는 않았지만, 욕을 하지는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이 있기에 잠깐만 같이 들어도 심장이 두근두근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콜센터 통화할 때 최대한 친절하게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Be kindful...
한강으로 외근가요!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SNS에 올릴 홍보 영상 만들기가 있었는데, 우리 서비스를 실생활에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콩트 형식으로 만들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팀장님의 열정이 대단하셨던..)
콘티부터 촬영, 배우 다 우리 팀원들이 직접 했는데, 콘티는 CF 촬영 시 하는 것처럼 그림으로 미리 그려놨고, 촬영은 진짜 아이폰만으로 했으며, 평일 아침부터 근처 한강 고수부지로 외근하러 나가서 하루 종일 찍고, 편집하고 올렸다.
평일 낮에 우리는 일하러 왔는데, 한강에서 노닥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현타가 오기도 했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는다. 하하
그리고、 그 당시 기획하면서 개발자들과의 소통으로 힘들었던 날이 있었는데, 마음이 너무 허전하고 답답해서 퇴근길에 명동 성당에 들러서 괜스레 서성거리다가 명동 성당 굿즈 샵에서 인간관계와 관련된 책을 사서 집에 갔던 날도 있었다.
그렇게 2년 후에 우리 서비스는 종료를 하게 되어 TFT는 없어졌고, 팀장님은 매우 아쉬워하시면서 카**로 이직을 하셨다. (스톡 옵션을 엄청 받으셨다는 소문이.. 잘 지내시죠?!)
이제는 경영전략팀
그 무렵 나는 나를 유심히 지켜보시던 '경영전략팀' 과장님의 발탁으로 팀 변경을 하게 되고, 회사 공식 웹사이트 업무를 맡게 된다. 그 당시 각각 운영되던 OEM/AM/PIO 내비게이션 웹사이트 5개를 통합해야 하는 큰 프로젝트가 있었고, 이를 위해 과장님께서는 사내의 기획자들을 모으고 있었다.
내비게이션 종류
* OEM :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의 약자로,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이며, 차량 출고 시 장착되는 순정 내비게이션
* AM : After Market Navigation의 약자로, 차량 출고 후 소비자가 별도로 구매하여 장착하는 내비게이션으로 현대오토에버 지니, 맵피 및 팅크웨어 아이나비 등
* PIO : Port Installed Option의 약자로 완성차 수출 시, 선적 전 항구에서 차량에 장착되는 옵션 품목으로, 특히 중국/인도 등 해외 시장을 겨냥한 내비게이션
이 프로젝트는 각각의 웹사이트 5개의 통합 구축을 하기 위해 각 사이트 이해 관계자의 인터뷰와 요구사항 분석 작업도 만만치 않았고, 이 프로젝트를 실제 구축할 협력사를 구하는 입찰 과정도 처음으로 하게 되면서 RFP("Request For Proposal"의 약자로, 제안 요청서이며, 발주처가 특정 프로젝트나 서비스에 대한 요구사항을 명확히 제시하고, 이에 대한 제안서를 제출하도록 요청하는 문서)를 작성해 보고, 제안 설명회 및 제안 발표회를 진행하면서 협력사 선정 프로세스를 처음으로 경험해 보게 된다.
이때 제안 설명회와 발표회 진행하시는 과장님을 옆에서 보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고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를 발탁하신 과장님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와 술을 한 번에!
과장님은 그 당시 유명한 웹 에이전시 출신이셨는데, 열심히 하는 나를 좋게 보고, 거의 내 멱살을 잡고 끌면서 업무를 가르쳤다. 차근차근 스텝별로 알려주시기도 하고, 때론 사무실에 다 들리게 엄청 큰 목소리로 훈계도 하셨는데, 시무룩해진 나에게 저녁에는 술도 많이 사주시기도 하셨다. 대표님께서 뽑는 연간 우수 직원 상도 추천해 주셨고, 덕분에 승진하는데도 도움이 되어 주셨다.
하지만, 많이 배운 만큼 나름 속도 많이 아파서 생애 처음으로 위장 장애가 났다. 그날은 팀 회식이었는데, 1차 고기와 술, 2차 노래방, 3차로 당구장까지 따라갔다. (요즘 회식은 웬만하면 저녁 회식도 잘 안 하고, 회식을 해도 절대로 노래방은 가지 않는다. 일단, 회사 사람들하고 가면 노래방 자체가 재미가 없는데, 이와는 별개로 유흥 문화에 물든 몇몇 분들의 이상한 행동으로 징계 및 퇴사를 하게 된 사건들도 있어서 회사 규율이 엄격해졌다.)
하여간, 나는 그때도 역시 00군 콘셉트이었는데, 당구도 못 치는데 3차를 따라가게 되었고, 진심 첨으로 당구장에서 소주와 탕수육도 먹어보았다. 그렇게 새벽까지 있다가 마지막에는 과장님을 댁에 택시로 모셔다 드리고, 다음날 출근해서 다 같이 속풀이로 짬뽕을 먹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거기 있던 매운 뭔가를 먹었는데, 바로 위가 아파오더니 위가 쪼그라드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너무너무 아팠고, 말로 형용할 수 없었던 느낌이었는데, 글쎄 그게 위경련이었다. 그 후로 절대로 무리해서 회식을 따라가지 않게 되었고, 과장님과의 벙개 횟수도 줄여나갔다.
과장님 덕분에 힘든 순간도 많았으나,
기획자 및 PM(Project Manager)로서 알고 있어야 할 Basic, 그리고 회사 생활의 노하우 등을 배우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과장님은 다른 곳으로 이직하셨다.
각종 버라이어티한 경험들
이후 나는 현대/기아의 해외 내비게이션 업데이트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각종 버라이어티한 경험들을 하게 되는데, 그중 압권인건 3사의 합병이었다.
이 파란만장한 사건 들은 다음 시간에 소개해보겠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