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시작, 그리고 사장님은 월급 잘 주는 사장님이 최고다!
최초의 파견
앞선 글 "여자" 동료가 되어보기에서 말했던 것처럼 두 번째 회사는 개발자로 입사했는데 지역 정보 서비스 LBS(Location Based Service) 웹개발을 몇 년 하다가 기획으로 업무를 변경하는 계기가 생겼다.
왜 갑자기 가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투입 인력이 없어서 갑자기 '갑'사로 파견 나간 듯하다.
당시 3위 포털의 로컬 서비스를 담당하는 매니저 분과 함께 몇 달 동안 기획을 했어야 했는데, 우리 회사 개발자 몇 명과 함께 파견되었으나, 기획자 role은 나 혼자였다.
파견도 처음 가는 거라 싫었지만, 새로운 업무여서 매우 걱정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동안 개발을 하면서 로직을 고민하고, 케이스별로 예외 처리를 했던 나였기에 디스크립션 부분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획자가 그려야 하는 화면설계는 다르다
개발자의 관점에서 보던 화면설계서와 기획자가 그려야 하는 화면설계서는 매우 달랐다.
한 곡을 완성하는 작사가와 작곡가에게 요구하는 달란트가 다른 것처럼!
처음으로 기획자로 투입되게 되어 파워포인트로 화면설계서를 그리는데,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던 일이 있었다.
기획자는 화면설계서를 그릴 때 기획하려는 웹 페이지가 파워포인트보다 긴 경우에는 화면을 분할하여 설계서를 그린다. 뭐 요즘에는 피그마로 그리면 웹 페이지 하나는 full로 그릴 수 있어서 문제가 없지만,
여전히 파워포인트로 그리는 프로젝트도 아직 많다. - 나도 2개의 툴을 섞어가면서 일하는 중이다.
- 화면설계서 템플릿은 오른쪽에는 주로 description(설명)이 있어서 왼쪽에 와이어프레임 형태의 화면을 그리는데, 보통 3등분 정도면 웹페이지 하나는 그릴 수 있다.
( 그동안 작업했던 화면설계서 자체를 외부로 출력하는 것 자체가 보안 위반이라 템플릿 자체도 공유할 수 없으나, 다른 공유된 템플릿을 참조 이미지로 공유 드린다)
첫 번째 장에서는 상단(GNB : Global Navigation Bar)과 메인 콘텐츠(Main Contents)의 1/3을 그리고
물결선을 그리고 '이어서'라고 표기한다. 두 번째 장에서는 물결선을 그리고 '이어서'라고 표기한 후 남은 메인 페이지 2/3를 그리고 다시 물결선을 그리고 '이어서'라고 표기한다. 세 번째 장에서는 물결선을 그리고 '이어서'라고 표기한 후 메인 콘텐츠의 3/3 부분과 하단(Footer)을 그린다. 물론 포털의 메인 웹페이지라면 이마저도 모자란다. 이 얼마나 효율적이지 않은 툴이던가!
역시 기획은 파워포인트(Powerpoint)보다는 피그마(Figma)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완전 초보 기획자
자 위와 같은 화면설계 기법(?)이 있었으나 나는 어떻게 했을까?
나는 상단 GNB를 - 그 당시 GNB가 뭔지 모르고 그냥 메뉴라고 생각했다 - 그린 후 중간까지 그리다가 '아.???.. 자리가 모자라네'라고 고민하다가 갑자기 폰트를 줄여서 같은 장표에 한 페이지를 구겨서 넣어버렸다. 하하..
빠르게 퍼포먼스를 내야 하는 프로젝트에서 그 당시 PM이셨던 '갑'사의 포털 매니저분께서 거의 내 멱살을 이고 끌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던 것 같다. 다른 샘플 기획서를 전달해 주시기도 하고 내 산출물의 잘못된 것은 짚어주고 알려 주셨다.
보라매 공원 잘 있니
해당 프로젝트는 보라매공원 근처 건물에서 진행했는데, 일하다가 점심 먹고 다 같이 산책하던 음악분수가 나오던 보라매 공원도 기억에 남고, 그 옆에 있던 롯데백화점도 집에 가면서 들렀다 간 기억이 난다. - 물론 뭘 사려고 간 게 아니라, 업무 끝나고 머리 식히려고 들렀던 것 같다 - 그렇게 나의 최초이자 마지막 파견은 그렇게 끝났고, 너무 힘들어서 그랬는가, 다시는 그 근처는 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포털에서의 기획자의 경험은 나의 커리어패스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고,
기획자로 전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두 번째 회사에서 LBS만 몇 년 하면서 새로운 서비스를 해보고 싶었고, 그중 하나가 게임이었다.
이전 글 디자인 수업 적응기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게임을 좋아했었단 말이다. 그래서 그 당시 인기 있던 게임 회사에 게임 기획자로 지원하였고, 생각보다 이직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기획자로 처음 파견 나갔던 곳에서 알게 된 다른 회사 매니저님께서 새로운 게임 회사로 이직한다고 하셨고, 나에게도 같이 가자고 제의를 주셨다. 그렇게 해서 두 번째 회사에는 그만둔다고 말씀드리고 바로 이직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
이직은 정말 심사 숙고 해서 하자! 아는 사람만 믿고, 가지 말고!
세 번째 회사는 퀴즈 게임 회사
그렇게 이직하게 된 3번째 회사는 게임 회사였는데, 내가 가고자 했던 대규모 게임 회사는 아니었고, 이제 막 투자를 받아서 시작하게 된 '퀴즈 게임'회사였다. 게임 개발은 외주 협력사에서 플래시로 개발을 했고, 게임에 대한 기획과 게임을 서비스하는 웹서버와 웹개발은 우리 회사에서 진행하였다. 그 당시 업무 role은 게임 기획자, 웹 개발자, 퀴즈 생성자 들이었다. 여기서 퀴즈 생성자란 퀴즈 콘텐츠를 카테고리별로 생성하여 입력하는 사람들이었다. (별로 안 친했던..ㅋㅋ)
사실 내가 가고 싶었던 role은 게임 기획이었으나, 이곳에서 필요한 담당자는 웹개발자였고,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일단 다루는 서비스가 게임이었기에 LBS에 이골이 났던 나는 개발자로라도 이직하고 싶었었다.
그렇게 새해부터 새로운 회사에서 업무를 시작했고, 개발 팀장님과 단둘이 개발자였고, 서버 쪽은 개발 팀장님이 진행했고, 나는 PHP로 Front Web page 개발을 했다. 업무를 바라보는 관점이 맞아서 직장 생활은 어렵지 않았다.
호텔 사우나를 매일 할 수 있는 복지
우리 회사는 벤처임에도 불구하고 복지가 좋았는데, 그중 최고는 근처 ibis 호텔 헬스장 및 사우나 이용권을 무료로 주었던 것이었다. 회사가 테헤란로에 있었기에 삼성역에서 야근하고 집에 가다가 호텔에 들려 사우나만 하고 집에 가는 것도 좋았다.
오프라인 도전 퀴즈 골든벨
회사에서 운영하는 단 하나의 서비스가 퀴즈 게임이었고, 그 당시 이벤트로 도전 골든벨 행사를 진행했었는데, 최종 우승자인 1등을 하는 사람은 교육부 장관상을 받을 수 있어서 굉장히 많은 학생들이 게임에 참여했었다. 그리고 게임 전까지 웹사이트로 예선전과 결과 발표 등을 하는데, 어찌나 살이 떨리던지, 조금만 틀리거나하면 바로 회사로 전화올 정도로 참여자들이 예민했었다. 마치 시험 점수 1점으로 등급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드디어 오프라인 도전 퀴즈 골든벨 당일이었고, TV에서 보던 형태의 골든벨 행사장이 마련되었다. 전문 MC를 초청해서 우리는 Staff가 되었다. 같은 흰색 단체 티를 입고 시험을 보러 온 학생들을 접수하고 자리 안내해 주고, 2-3시간 동안 진행한 프로그램이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다행히 프로그램은 잘 마무리되었고, 그때 기억은 행사 기획도 참 재밌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컴퓨터로 자리에 앉아서 화면을 기획하는 업무가 아닌 공간을 기획하고 공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동선과 필요한 요건들이 무엇인지 기획하는 업무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보람찼다.
하지만 역시 체력이슈로! 이런 업무는 단발적으로만 가능한 나란 사람, 중요한 행사를 끝내고 바로 몸살이 걸렸던 것 같다.
경리 가라사대
지금은 '인사 총무 및 재경, 영업팀 등과 업무를 진행하지만, 그 당시 회사에는 개발/기획 직군 이외에 경리 업무를 하는 분이 한 분 계셨었다. 15명 미만 되는 벤처 회사였기에 인원 비율로 따지면 실제 경리 업무는 그분이 다하셨는데, 나를 스카우트(?)하신 부장님이 같이 회사 전반적인 재경 업무를 진행하고 계셔서 어렵지는 않아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경리 분이 회사에 연락 없이 나오지를 않았다. '응? 아니 왜 얘기도 없이 회사를 안 나와? '나는 어이없었지만, 뭐 그런 사람도 있겠거니 했다. 결국 나는
'경리가 회사를 안 나올 때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을 직접 체험하고 만다.
당연한 건 없다.
그때가 내가 이직하고 6개월 후였던 것 같다. 월급이 늦게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0일 지나서, 그다음 달에는 20일 지나서, 그다음 달에는 30일 지나서.... 점점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으니, 매월 나가야 하는 생활비는 적금에서 가져다 쓰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12월이 되었고, 나는 이직한 지 6개월이 되자마자 월급이 밀렸고, 1년이 돼 가는 무렵에는 월급 자체가 없었다.
벤처에 투자한 투자비에 대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데, 퀴즈 게임은 협력사에서 제작한 게임의 퀄리티가 떨어져 오류가 잦았고, 출시는 미뤄졌으며, 그렇게 우리는 시간도 흘러갔고, 월급도 밀리게 된 거였다.
다행인지 나에게 이직 제의를 하셨던 부장님이 발 벗고 나서서 노무사를 선정하셨고, 우리는 노무사 선정 비용을 같이 내면서 못 받은 월급을 받았다.
물론 100%를 받지는 못했으나, 그렇게 1년 근무한 것으로 마무리 짓고, 헤어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6개월 나는 백수가 되었다.
그 게임 회사는 폐업 절차를 밟게 되었고, 지금 그 회사는 웹 사이트도 없지만, 건강 보험 공단 의료보험 납부 내역서를 떼면 그 당시 회사명은 살아있다. 몇 년이 지나 소식을 들었는데, 대표님은 잘 지내고 계셨고, 나머지 직원 들은 다들 어찌어찌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다들 고생을 했을 거고, 나는 그때 매달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모든 것에 당연한 것은 없었다.
나를 살린 전직장 상무님
그렇게 나의 백수 생활은 기약도 없어 보였고, 나는 많은 회사를 try 해봤지만, 계속 입사 거절 메시지만 받았고, 나의 자신감은 하락했으며, 적금도 점점 줄어갔다.
그러던 중 두 번째 회사에서 나를 좋게 보셨던 상무님께서 나를 새로운 회사에 연결해 주셨다.
"00아! 내비게이션 만드는 회사인데 서류 한 번 넣어봐! "
라고! 그래서 나는 서류를 바로 넣었고, 서류 합격을 하고 바로 면접을 보러 갔다.
업무 role은 내가 원하던 웹/앱 서비스 기획자였고, 그 회사는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오토에버의 전신이었던 엠엔소프트였다. (2021년 4월 엠엔소프트는 오토에버와 합병한다)
면접에서 그 당시 팀장님은 나에게 물어보셨다.
아이폰 쓰세요?
그날 면접 끝나자마자 나는 아이폰을 사러 갔고, 그렇게 나의 4번째 회사 경력이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