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수업 적응기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파란만장한 대학원 '산업 디자인' 학과 입학 과정 및 수업 후기

by AngieKim
나는 완전 이과!

내게 미대 수업을 듣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과였고, 학부에서는 컴퓨터학(Computer Science)을 전공해서, 컴퓨터 구조, 각종 언어 (C, Visual C++, Visual Basic), 데이터 베이스 설계 (Oracle), 네트워크 OSI 7 계층에 대하여 배우고, 실제 기판에 납땜도 하면서 0과 1로 이루어지는 "Hello World"의 세계에서 4년을 살았다.


컴퓨터.png 출처 - https://www.etsy.com/listing/1655317307/early-2000s-miniature-pc-bun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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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프로그래밍 언어의 첫 예제는 "Hello World!" - 출처 : 위키피디아 (C언어)



컴퓨터 그래픽! 그 시작은 역시 Game!

그런데 지금도 기억나고 제일 재미있던 수업은 "컴퓨터 그래픽스(Computer Graphics)"였는데, 각자 3D 게임을 미니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요즘이라면 Blender나 Maya로 캐릭터 모델링을 하고, Unreal Engine나 Unity 게임 엔진을 활용하여 프로그래밍을 했을 테지만, 그때는 모눈종이에 x/y/z 좌표를 찍고 스케치 한 다음 그 치수를 컴퓨터에 입력하여 캐릭터를 생성했다. 당연히 표면 처리나 그런 건 없었고, 일단 어떤 형태가 나온 상태에서 조건이 주어지면 행동을 하는 것으로 구현했다. 이때 좋아했던 게임은 "둠(Doom)"과 "툼레이더(TombRaider)"였기에 많은 영향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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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m 1993 vs. Doom Eternal 2020 - 출처: Doom 매니아 카페, DOOM Eternal Review
툼레이더 '라라 크로프트' 변천사 - 출처: https://zesian1004.tistory.com/172


게임 캐릭터는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Lara Croft)와 비슷하게 그리려고 했으나, 땋은 머리는 도저히 좌표 구성이 쉽지 않아서 아마 쇼트커트로 바꿨던 기억이 나고, 팔은 절대로 굽혀지지 않았다. 하하하. 어쨌든 단순하게 4개 방향으로만 움직였지만, 총도 쏠 수 있도록 작동시켰다. 시점은 매우 어려웠는데, 둠처럼 1인칭 슈팅 시점으로 하면 캐릭터가 안 보였고, 아마 3인칭 시점으로 했던 것 같다. (기억 너무 오래됨)


포스팅하면서 찾다 보니 예전에 재밌게 했던 게임도 찾아보았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다크 하게 변형한 호러 게임 '아메리칸 맥기스 앨리스(American McGee's Alice)'도 기억나는데 이게 언제였더라! (위키에서 2000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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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맥기의 앨리스(2000), 앨리스: 매드니스 리턴즈(2011), 엘리스: 어사일럼(제작취소?) - 출처: 나무위키


그래픽에 대한 관심

이 수업을 통해 지금도 생각나는 게, 나란 인간은 컴퓨터가 좋아서 컴퓨터 전공을 선택했지만, 사실 실제 개발보다는 컴퓨터란 Tool을 이용하여 그래픽 산출물을 만드는 것을 더 재밌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컴퓨터 그래픽(Computer Graphic)"은 순수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도,
컴퓨터 전공자가 "아트(Art)"의 세계에 눈을 돌릴 수 있던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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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unsplash.com/ko/@europeana https://unsplash.com/ko/@ilyapavlov




산업디자인을 선택한 이유

대학원은 사실 학부 때부터 미국 유학과 함께 꿈꾸던 것이었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 포기하고 바로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회사를 다니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항상 대학원에 다니고 싶었고, 전공은 MBA와 컴퓨터 전공, 외국어 전공까지 여러 가지 학과를 고려했으나 그 어느 과도 회사를 관두면서 Full-Time으로 할 만한 포부는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산업디자인학과' 석사 과정을 시작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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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웹개발자로 몇 년간 일했고 - 각각의 커리어 패스에 대한 내용은 뒤 챕터에서 하나씩 공유할 예정 - 우연한 계기로 기획자로 전향하면서 느낀 점들이 많았다. 각종 우여곡절 끝에 UX 기획자로 완전히 전향하면서부터는 무엇보다도 개발할 때는 몰랐던 기획의 기본기가 가장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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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레이아웃은 어떻게 잡는지, 디자인 기본 이론이 궁금했고, 타이포크라피, 디자인 시스템, 사용자 평가, 유저 저니, 더블 다이아몬드 다이어그램, 컬러 매칭 rule은 대체 무엇인지. UX 전공 및 석사 논문을 작성한 선/후배들은 자연스럽게 말하는 이런 키워드에 대해서 Udemy 온라인 클래스들을 통해서 독학을 했지만 뭔가 항상 부족한 느낌이 들었고, 정규 교육을 받고 싶었다.




대학원 입학 후기

다시 한번 대학원을 고민하게 되었고, 여전히 회사 커리어를 포기할 수 없고, 업무와 병행할 수 있는 특수대학원을 고려하게 되었다. UX 전공으로 야간에 수업이 있으며, 학교와 집과의 거리가 가까운 곳으로 몇 개의 대학교를 리스트업 하고, 관련 교수님들의 전공과목과 논문을 찾아보았고, 나랑 가장 잘 맞는 학교 2개를 골랐고, 교수님께 메일을 드렸다.


한 곳은 야간에 수업이 없다는 full-time 수업만 하신다고 하셔서 포기했고, 나머지 한 곳만 생각하고 대학원 입학 프로세스를 진행했다. 각종 서류들은 차근차근 준비했고, 논문 계획서는 내가 다니고 있는 '자동차'와 관련한 UX 관련 논문으로 찾아보고 작성하고 제출했다. (교수님 또는 직장 상사 추천서는 없었다) 그렇게 5월에 교수님 두 분과 함께 2:1로 면접을 보고, 7월에 합격했고, '24년 8월에


고려대학교 공학대학원 산업디자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공학대학원.png 아니 언제 웹사이트 리뉴얼 되었냐고! 고려대학교 공학대학원 웹사이트' 출처: https://enggra.korea.ac.kr/main/main.html






대학원에 가려면 한 살이라도 일찍 가야!!!

8월 입학식과 MT를 하면서,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겠다며 모여든 열정의 동기들과 선배들을 보면서 다시금 입학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같이 있는 나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대학원에 들어와 보니 내가 생각했던 나이대보다 한참 어린 분들이 더 많았다. 엊그제 학부 졸업하고 대학원에 온 Full-Time 대학원생 분들과 같은 나이대의 동기/선배들이 더 많았다는 것을 알았다. 공부에 대한 열정은 나도 남부럽지 않고 오히려 더 충만했지만, 체력 이슈는 진짜 어쩔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다시 학교에 와서 수업을 10시까지 듣고, 새벽 2시까지 뒤풀이를 하고 담날 바로 출근하는 선배/동기들이라니! 9월에는 각 학과별로 개강파티와 각종 이벤트들이 있어서 나도 같이 따라 하다가 면역력 급감으로 각종 병원 순례를 했다. 링거도 맞았던! 하하




대학원 수업 적응기

한 학기 당 최대로 들을 수 있는 수업은 총 4과목(각 2학점) 8학점이었고, 총 5학기 동안 수업을 듣고 논문을 써야 졸업을 할 수 있다. 나의 첫 학기 수업은 전공 3과목과 교양 1과목이었다. 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제품디자인론"이었는데 제품 프로세스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고, 실제 디자인조형학부 학부생들이 하는 수업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제품 기획/디자인/개발의 과정을 따라가면서 이론 중심으로 각종 개인별 과제를 열심히 했었다.


Form follows Function

이때 처음 들었던 문구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였다!

It is the pervading law of all things organic and inorganic, of all things physical and metaphysical, of all things human and all things superhuman: that the life is recognizable in its expression, that form ever follows function.
– Louis Sullivan, 1896


Form follows function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에 등장한 원칙으로 건축이나 디자인에서 어떤 사물이나 건축물의 외형(형태)은 그 목적이나 기능에 맞게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겉모양이 멋있거나 장식적이기보다는, 그 대상이 해야 할 역할(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철학이라고 한다. 미국 건축가인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 1856~1924)이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근대 디자인 운동(Modernism)의 핵심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20세기 초 바우하우스(Bauhaus) 운동에서도 이 철학이 매우 중요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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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설리반의 건축물 - Wainwright(1891), Guaranty(1895), Auditorium(1889)

출처 https://www.puremodern.com/blogs/news/influential-designer-louis-sullivan



바우하우스 Bauhaus

그러면서 새로운 용어인 "바우하우스"가 나왔다! 바우하우스 (Bauhaus)는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된 예술·디자인 학교이자, 20세기 디자인과 건축에 큰 영향을 준 운동으로 "Form follows function"의 원칙을 실천적으로 계승했다. “장식은 죄악이다(Ornament is crime)”라는 아돌프 루스(Adolf Loos)의 말처럼, 불필요한 장식이나 감성적 요소보다는 실용성과 구조적 논리를 강조했다.

Bauhaus.jpg ‘바우하우스’를 직역하면 짓다(bau) + 건물(haus)로 철학적인 의미로 ‘사회적 구축’을 의미하며 또 다른 의미로 ‘건축의 집’을 뜻함



Vitra Chair

그리고 교수님은 물어보셨다! 비트라 체어를 아냐고! '네? 비트라요?' 나는 난생처음 들었는데, 우리 과에는 실제 스위스에 다녀온 분도 있었다. 비트라(Vitra)는 스위스의 세계적인 디자인 가구 브랜드인데, 대표적인 의자 중 하나는 '팬톤 체어(Panton Chair)'로, 여러 유명 디자이너들과 협업하여 다양한 모더니즘 의자를 제작해 왔으며, 팬톤 체어 외에도 미국 모더니즘 디자이너들의 가구를 유럽에 소개하고 생산해왔다고 한다.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vitra.com/en-as/home

VitraChair.png 비트라 뮤지엄 전시 - Chair Times: A History of Sea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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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다 사고 싶다! 비트라 체어 미니어처 - 출처 : https://nonlabel.co.kr/lifestyle/?bmode=view&idx=13015999


이렇게 수업 시간에 새로 듣는 단어에 속으로 혼자 허둥대면서 찾아보고, 외우고, 공부하면서 기계의 세계와는 완전 다른 산업 디자인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었고, 이 모든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너무 짜릿해서 도파민이 막 나올 지경이었다. 그리고 나는 왜 이런 것들을 모르고 살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유명 인플루언서의 집들이 영상 속에 있던 그 의자, 그 테이블, 그 조명들이 얼마나 유명한 제품이었는지, 관심이 1도 없었고, 다 돈 사치라고 생각했는데, 그 소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디자인의 역사를 알게 되고, 해당 작가가 어떤 사고를 통해 그 작품을 만들었는지 알게 되면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것으로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다.


david-kristianto--DCjx3NKy7c-unsplash.jpg https://unsplash.com/ko/@davidkristianto


그리고 이렇게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해나가니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해당 제품이 보이거나 하면 반가웠고, 어렴풋하게나마 저건 모더니즘이군!이라고 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실제로 다른 수업의 갤러리 참관 과제로 DDP 갤러리에 갔을 때 Vitra Chair 전시를 보고 바로 알아보게 되었고, 모더니즘에 대해서 배웠던 디자이너 작품도 알아보는 관점이 생겼다.


피와 땀으로 만들어서 제출한 대학원 과제들은 브런치북 Season 2에서 하나하나 풀어보겠다.

sergey-sokolov-j_7pyHaF39s-unsplash.jpg https://unsplash.com/ko/@svsokol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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