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질문은 가치 있고 훌륭한 질문은 따로 있다
책의 저자로서 가장 중요한 핵심단어를 딱 하나 골라달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주저 없이 '경력'을 고를 것이다. 만약 저자로서가 아닌 멘토로서 한 단어를 뽑아야 한다면, 그땐 '질문'을 택할 것이다. 그만큼 질문이 참 중요하다.
용어와 개념 설명, 취업이나 실무 꿀팁에 허기진 입장이라면 못내 답답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제 막 분야에 입문한 경우라면 뭘 물어봐야 하는지 조차 막막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무언가 배우고 싶어서 이제 막 질문하는 입장인데, 그 질문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막상 실무현장에서 UX 담당자로서 디자인 행위를 한다는 것(UXing)의 시작과 끝이 온통 '질문'뿐인걸 안다면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회사 선택이나 이직 결심 등 업무를 떠나서도, 앞으로 펼쳐질 장구한 커리어 여정의 모든 국면은 사실상 자기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에 의한 좌충우돌 대응일기나 다름없다.
결국 만들어질 커리어라는 것은 그렇게 해서 얻은 성장의 결과이기에 '질문'하기가 어렵다 하더라도 마냥 외면하긴 힘들 것이다.
저자로서의 키워드—경력
멘토로서의 키워드—질문
취준생이 현직자와 멘토링을 하는 이유는 필요한 답, 원하는 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멘토링을 통해 받아본 수많은 질문들은 대체로 공통된 특성을 지닌다. 바로 '정해진 답이 없는(nonanswerable)' 질문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UX란 때론 가르칠 수도 없으며, 즉시 배울 수도 없는 대상임을 뜻한다.
물론 진로나 취업 고민이 수학문제처럼 답을 풀 수 있는 것이 아닌 점은 상식적이다. 문제는 UX 분야는 UX 개념의 모호성으로 말미암아 더욱 그렇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역설적으로 쉽게 생각해 볼 여지도 있겠다. 어차피 답이 없는 질문에 하는 답변이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동의한다.
그래서 나는 '좋은' 질문이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물론 대답을 잘 이끌어 내는 '훌륭한' 질문은 반드시 존재한다. 하지만 훌륭함이 무조건 좋다는 이유로 권장될 수 있을까 싶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뭘 모르기 때문에 하는 질문에 퀄리티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래도 된다는 것이다.
질문은 결국 외모, 어쩌면 생김새만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어딘가 갖춰 입고 참석해야 하는 곳을 갈 때 옷차림에 신경 쓰는 것처럼 질문이란 그저 '예의'만 챙기면 족하지 않을까?
좀 추레하면 어떻고 부족하면 어떤가? 그렇다. 질문자로서의 예의만 차렸고 구색만 갖췄다면 그 질문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좋은' 질문이라고 나는 생각 한다. 마치 우리 모두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질문도 존재하는 순간부터 가치를 지니는 셈이다. 이것이 질문의 가치다.
한편, 아니 모든 질문이 다 가치가 있다면, 더 훌륭한 질문인들 무슨 소용이며 결국 모든 질문은 가치가 없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반문할 수도 있겠다. 나는 이걸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질문 자체가 이미 가치롭다면, 질문의 진정한 본질적 가치는 어디서 올까? 우문현답이라는 말이 힌트가 될 것이다.
질문의 찐가치는 답변에서 온다. 답변을 하기 편하게 해주는 질문은 물론 훌륭할 순 있겠지만, 그 질문의 진정한 가치를 채워주는 것은 결국 훌륭한 답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모든 질문이 가치 있지만 차이가 나타나는 지점은 답변에 있는 셈이다. 따라서 질문이 생성되는 순간부터 이미 다음과 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매너가 멘티를 만들고, 질문이 멘토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