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일상
1. 허리 통증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어느 날 갑자기 몸살 기운이 심해졌다. 엄마는 병간호한답시고 '안 먹으면 죽는다'는 논리로 온갖 먹을 것을 가져다가 먹이는데 먹을 수 없는 상태에서 너무 먹었는지 토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은 어쩌다가 이지경까지 됐냐며 입원해야 할 수준이라고 했다. 감기 몸살 기운으로 병원에서 진통제 수액과 비타민 수액을 맞고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도저히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회사 휴가를 3일이나 쓰게 되었다. 회사에서 나를 제외한 팀원들은 고군분투하고 있었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더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2.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해외출장으로 그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아빠 역할까지 하느라 엄하게 자라왔다. 그리고 다소 행복한 가정은 아니었고, 돈도 별로 없는 집안이었다. 그래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성공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벼랑 끝에 있는 것처럼 인생을 살았다. 10대 때는 공부와 입시미술에만 매진했다. 20대 때는 대학생활과 직장생활에 올인했다. 30대 때는 운동에 매진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이제는 멈추기 어려운 폭주기관차가 된 것만 같다.
3. 주변사람들은 내게 왜 이리 강박적으로 운동하냐고 묻는다. 왜 이리 인생을 즐기지 못하냐고도 한다. 나도 그럴 수 있었다. 다만 내 인생이 고달파서 남들 놀 때 제대로 못 놀았던 것뿐이다. 어떻게 노는지 잘 모를 뿐이지 놀면 또 잘 논다.
4. 아파보니까 평범하기만 했던 일상이 상대적으로 행복하게 느껴졌다. 건강이 안 좋아지니 온 힘을 다해 정성스럽게 일하고 하루 두 시간 반 미친 듯이 운동하던 게 다 부질없이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했던 걸까? 왜 나에게 이런 악재들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대체 왜?
5. 돌이켜보면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눈 오는 그날부터였다.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에게 갑자기 다가오는 초고속 내리막길.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6.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고달픈 인생은 그저 이 악물고 버티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