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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에몽 May 12. 2021

Chapter 2. 학생창업과 전문성

해봤다고 할 줄 아는 건 아니다

* 이번 글은 Chapter 1에서 이야기했던 내용과 연결되니, 먼저 해당 글을 읽고 오시면 이해의 연결성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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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 학생창업과 오프더레코드: 긍정과잉 속 허와 실 https://brunch.co.kr/@uxlee/1

Chapter 1. 학생창업과 팀 결성  https://brunch.co.kr/@uxlee/2






앞선 글에서 학생창업은 일반적으로 학생을 뽑을 수밖에 없게 되는 구조라고 서술한 바 있다. 학생을 뽑았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언급했었는데, 이번에는 최소한의 전문성, 즉 업무수행에 있어 어떤 기본적인 문제점이 있는지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해봤다고 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다


 학생창업은 task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능력에 비해 인력이 충분한 숙련도를 갖추지 못한 문제에 놓이기 쉽다. 이렇게 들으면 학생이니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창업 당사자가 되면 과한 긍정 회로를 돌리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제품 및 회사를 홍보해줄 마케터을 뽑는 상황을 예시로 들겠다. 마케터도 세부 분야로는 콘텐츠 마케터, 퍼포먼스 마케터 등 다양한 능력과 종류가 있지만 초기 스타트업이니 그런 부분은 무시하도록 하자. 사업에 따라 마케팅 접근법이 다르긴 하겠지만 일단 B2C로 제조한 화장품을 판다고 가정해보자. 대표의 목적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 화장품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시키고, 해당 제품을 판매하는 플랫폼에 고객이 검색&방문하여 구매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2030 여성 타겟이기 때문에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마케팅 (유사) 경험이 있었으면 좋겠다. 

 학생창업이라 학생 중에 뽑으니(*Chapter 1 참고) 이런 채용조건을 내걸면 생각보다 적지 않은 지원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서 막상 뽑아놓고 실무를 시켜보려 하니, 해당 제품에 맞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마케팅 전략을 짜지 못한다. 그래도 뭔가 계획이 있지 않을까 대표는 물어본다. 얼마나 예산이 필요한지, 어느 채널이 가장 효과적인지, 채널마다 마케팅 예산 분배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어떤 콘텐츠로 구성해야 할지, SNS에 돈을 태운 만큼 구매전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목표치 대비 어느 정도의 시간 소요를 예상하는지, SNS에서 본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은 어떤 특성이 있을지 등을 부분적으로라도, 대략적으로라도 회사는 알고 싶다. 하지만 채용된 마케터는 잘 알지 못한다. 본인이 알던 것과 다른 결의 업무를 지시받는다고 느끼니 의지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리더가 각종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마케팅 교육을 받고 마케터에게 이런게 있다더라, 한 번 검색해서 공부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보는 경험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학생 마케터의 마케팅 경험이라고 해봤자, 보통 본인의 인스타그램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팔로워를 키워나가며 제품협찬을 해주는 인플루언서 광고를 받거나 하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아니면 동아리 활동을 하며 관련 경험을 업로드하고 공유하는 경험이었거나. 해당 경험들이 SNS 생태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주었겠지만, 회사에서 제품을 실제 마케팅할 때 필요한 역량과는 거리가 있다. 개인적인 마케팅 단계에서는 회사에서 바라는 고객 피드백 데이터를 심각하게 고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마케팅 예산과 같은 빠른 시간 내에 소모되는 큰 단위의 금액을 사용해 본 경험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여기서 대표의 ‘마케팅 경험 있는 애니까 일정 부분 마케팅에 큰 문제는 없겠지’와 같은 생각이 틀어지는 것이다. 마케터를 예시로 들기는 했지만 개발, 디자인 등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나름 해당 영역에 관심이 있어왔거나 전공인 학생들을 모집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막상 사업을 해보니 요구수준에 크게 미달하여 추진력이 안 붙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그냥 떼다 파는 사업 할 건데?    


라고 이야기했었던 과거 창업학회 동기가 있었다. 꽤나 인상적인 말이어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의 말마따나, 사실 요구되는 스킬셋이 적은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물론 일단 장사냐 사업이냐의 경계에서 균형을 잡는 걸 고려해야겠지만. 그래도 학생창업에서 소위 ‘원맨쇼’로 처리할 수 있는 사업을 선택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전문성의 덫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단적으로 직무와 별개로 도메인 지식이 필요하다. 화장품을 판매한다면 어떤 방식이든 화장품에 대해 잘 알고, 요리도구를 판다면 요식업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스타일리스트가 옷 사업을 시작하는 것처럼 대표 본인이 잘 아는 분야라면 나이스지만, 본인의 관심사만 사업 영역으로 한정하는 것도 또 다른 위협요소이다. 시장성에 대한 능동적 선택을 못 하고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기본적으로 사업은 협업의 결과물인 경우가 태반이다. 세상이 복잡해진 만큼, 복합적인 능력을 가용해야 사업 성공률 또한 높이기 쉽기 때문이다.     


 이 흐름에서 예비 학생창업자들의 도드라진 특성이 있는데 사업도메인이 어떻든 IT적인 요소를 결합하려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젊은 세대가 스마트폰, PC 등 디지털 디바이스, 환경에 매우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추측한다. 그도 그럴 것이 소비과정 전반에 걸쳐 정보탐색이든 결제든 디지털 환경을 이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많은 분들에게 사업을 구상할 때 앱이나 웹을 통해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하는 듯하다. 


 과거 창업학회 후배 기수에서 UX 관련 세션을 부탁한 적이 있다. 세션이란 전통적으로 관련(이 경우 UX) 미션을 사전에 주고, 방문해서 발표를 듣고 피드백을 주는 시간이었다. 몇몇 과제를 주면서 한 문제에 조건을 걸었다. 문제를 주워주고 ‘해결과정에 있어서 가능한 앱을 만들어서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라고 하였다. 그렇게 명시적으로 조건을 달았는데도, 막상 발표날 보니 앱을 만든 팀이 매우 많았다. 다들 ‘앱 만들지 않고는 어떻게 해결해요? 이게 제일 효과적인데?’와 같은 반응이었다. 당연히 앱은 좋은 수단이다.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앱을 만들고 유지, 보수하는 데는 인력이 필요하고, 영세 사업의 앱을 사람들이 깔게 하는 데는 뛰어난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실제로 본인 스마트폰에 깔린 앱이 몇 개나 되는가? 또 계속 들어가게 하려면 앱 내 UX 설계 및 UI 배치도 효과적으로 구성해야겠지. 예비/초기 창업자이기 때문에 앱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앱을 만드는 순간 이 모든 것을 감당하겠다는 뜻이 되니까. 혹자는 외주를 말할지 모른다. 어찌어찌 돈을 끌어오고, 성실한 좋은 외주처를 발견해 앱을 만들 수는 있지만, 유지보수에 대한 이슈는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때마다 외주를 맡길 것인가? 이런 전문성의 굴레(?) 속에서 학생창업은 곤란을 겪는다. 초기에는 열정 있는 학생창업자라면 각종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며 본인이 배우고 해결하려 하지만, 혼자 담당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창업학회에서 처음 창업에 뜻을 가진 동기들을 만나고 1~2년쯤 지났을 때였다. 그 시점에는 개인사업이든 법인이든 각자 실제 창업 경험을 한 후였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었다. “난 아직 창업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회사 들어가려고”였다. 안정적인 삶, 수익 같은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한 말이 아니었다. 다들 실제 창업을 해보니 ‘일을 진행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경험’이 본인에게 없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모두들 관련 회사에 몸을 담고, 이후에 창업을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고 하였다. 각기 다른 사업과 경험을 하고 왔는데도 결론이 하나로 모여서 신기하고, 아쉬웠다.


물론 사업 성공에 있어서 대표의 직무 전문성이 필수 불가결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앞서 표현한 대로 사업은 협업의 결과이니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학습능력으로 문제없이 운영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다만 직무 전문성은 물론 비즈니스 생태계, 조직문화 등 아직 여러 방면에서 처음 경험하는 것이 너무 많은 학생/청년창업자에게는 변화가 버거울 수 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사전에 충분히 겸손하게 생각한 후, 지금 창업을 하는 게 정말로 ‘효과적, 효율적’인지 기회비용을 잘 따져보았으면 한다. 직장을 간다고 창업 실패가 아니다. 고리타분한 인용이지만, 창업을 우선 가치로 보는 사람에게도 ‘두 발자국 전진을 위한 한 발자국 후퇴’일 수 있다. 그 결정은 본인이 하고자 하는 사업, 그리고 장기적 전략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가변적이다. 만약 잘 모르겠다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만약 본인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일단 창업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냥 머릿속에서 간접 상상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몸으로 부딪쳤을 때 필요한 현실의 것들을 인지할 수 있는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지금의 시간이 자양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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