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누구인가?
* 이번 글은 Chapter 1,2에서 이야기했던 내용과 연결되니, 먼저 해당 글을 연이어 읽고 오시면 이해의 연결성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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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 학생창업과 오프더레코드: 긍정과잉 속 허와 실 https://brunch.co.kr/@uxlee/1
Chapter 1. 학생창업과 팀 결성 https://brunch.co.kr/@uxlee/2
Chapter 2. 학생창업과 전문성 https://brunch.co.kr/@uxlee/3
Chapter 2.에서는 학생창업의 전문성, 스킬셋과 그에 따른 경험이 문제 될 수 있는 부분을 다루었다. 이번 글에서는 학생창업자의 관점, 태도상 문제에 관해 서술하고자 한다. 단순히 마인드셋 뿐만 아니라 흐름상 오늘은 필자의 경험영역인 UX 리서처로서의 관점도 부가적으로 포함될 예정이다.
마인드셋을 다룬다고 해서 단순히 노오오오력을 더해야 한다는 꼰대스러운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가장 적합한 워딩이 무엇일까 조금 고민해보았는데, 아마도 ‘관점’이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더이상 서비스 사용자가 아니다
학생창업자 및 팀원은 본인이 ‘서비스 사용자’에서 ‘서비스 제공자’로 포지션이 변경되었다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얼핏 들으면 ‘누가 몰라?’ 싶을 정도로 쉽고 당연한 이야기로 보인다. 포지션 변화를 인지하였다면 업무수행에 있어서도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학생’인 상태로 사업을 하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글을 공유한다.
‘서비스 사용자’, 즉 고객은 본인이 소비한 상품을 누리는 입장이다. 해당 상품에 대한 긍정 혹은 부정 평가를 할 수 있지만 제품의 방향성에 대해 깊게 관여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그것을 고객에게 요구하지도 않으며, 깊게 관여하고 싶어도 회사 담당자가 아닌 이상 직접적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권한도 없기 때문이다.
‘서비스 제공자’, 즉 임직원은 본인이 제공하는 상품을 관리하는 입장이다. 해당 상품에 대한 pain point를 찾고, 개선안을 고안하고, 발전을 시켜야 하는 주체이다.
당연한 말을 했는데, 학생창업자들이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라 서비스 사용자 태도로 사업을 다루는 경우가 있다. 즉, ‘어떤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까지는 수행하였는데, ‘어떻게 변화시킬지 구체화하는 과정’은 생략해버리는 부류들이다.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도 있다.
첫째,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A: 나는 음식점에서 키오스크 사용이 불편해. 좀 더 빨리 처리가 되었으면 좋겠어.
B: 그렇구나.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부분 중에 어떤 부분을 처리하면 좋을까?
A: 글쎄,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이런 식이다. 제공자, 비즈니스 혹은 기술적 관점에서 기본적인 고민도 없으며, 최소한의 데스크 리서치 조차 없고, ‘같이 생각해보자’도 아니고, 그냥 ‘본인은 문제제기 했으니 된 것 아닌가’라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태도의 대표 혹은 팀원은 피상적이고 개인 경험에 근거한(흔히 뇌피셜이라고 하는) 문제 제기는 열심히 한다. 하지만 방향성 제시도 없이 나머지 과정을 ‘이제 난 다 했으니 너희들이 처리할 일’로 여긴다. 흔히 대학 수업에서 조별모임하면 있을 법한 책임감의 수준에 그친 것이다.
두 번째, 접근법이나 해결책, 방향성을 제안은 하는데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부류이다.
예를 들면,
C: 나는 음식점에서 키오스크 사용이 불편해. 좀 더 빨리 처리가 되었으면 좋겠어.
B: 그렇구나.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부분 중에 어떤 부분을 처리하면 좋을까?
C: 일단 키오스크용 앱을 만들자. 굳이 키오스크 쓰지 않고 우리 앱으로 처리할 수 있는 거지! 그리고 노인 타겟으로 우리 앱을 알 수 있게 마케팅을 많이 뿌리는 거야. 그리고 앱을 잘 못 쓰실 수도 있으니 전용상담센터를 만들어서 혹시나 곤란하면 언제든 친절하게 대응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면 편안함을 느끼지 않을까.
C의 제안은 대안은 제시했지만 본질적으로는 A와 다를 바가 없다. 본인의 사업과 어울리는 현실성과 논리성이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키오스크용 앱을 만드는데 필요한 인력이 현재 없고, 젊은 층도 아니고 노인 타겟으로 ‘앱’을 사용하게 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며, 키오스크 앱을 만들고 노인들에게 잘 알렸다 치더라도 그 앱이 각 매장 키오스크 기계와 결제 연동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부분인지, 제휴를 맺어야 하는 부분이 있는지 등의 괴리가 예상되는 이슈들이 연달아 있는 제안이다. 단순히 아이디어가 좋고 나쁨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다. 당연히 모든 이슈에 대해 본인이 답을 모를 수 있고 회의 중 물어볼 수도 있다. 문제는 본인의 이상향과 현재의 비즈니스를 연결시키지 않는 관점이다.
깊이 있게 생각해보거나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본인의 주장을 fancy하다 여기며 밀어붙이려 한다. 보통 A에게 좀 더 생산적으로 일하자고 하면 의욕만 있으면 꽤나 빠르게 C로 변해서 온다. 하지만 C가 현실적인 핀트를 잡는 데는 그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창업자는 그동안의 인생이 서비스 ‘사용자’의 아이덴티티로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창업팀이 할 수 있는 역량의 수준을 카카오나 삼성이 할 수 있을 법한 시도와 은연중에 동일 선상으로 보는 것이다.
Chapter 2.에서 말한 ‘앱부터 만들게요’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본인이 비즈니스 주체로서 어떤 액션을 취했을 때 수반되는 반작용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없다. 고객센터를 운영하면 되지, 라는 말에서는 자금이 부족한 초기창업이기에 CS 인력을 채용하지 못하면 우리 팀이 번갈아 상담원을 해야 한다는 가능성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이다. 혹은 꼭 필요하여 돈을 들여 채용하더라도 그만큼 마케팅, 개발 등 다른 분야에서 비용, 시도가 줄어든다는 것을 미리 감안하지 못한다. 학교 수업 프로젝트에서는 그냥 ‘고객 친화적 상담센터로 인한 유연하고 편리한 경험 증대’ 정도로 결론지어도 문제없었으니까. 이를 과도하게 겁을 내면 공무원이 되지만, 과도하게 무시하면 학생이 된다. 그 중간 균형지점은 깊은 고찰과 커뮤니케이션, 리서치 능력으로 획득된다. 학생의 경우 보통 처음 경험해보는 입장이기에, 여러 시행착오 속에서 운영의 주체로서의 관점에 익숙해지는 시간만 꽤 걸릴 수 있다.
차라리 히스토리가 있는 기존의 제품, 서비스를 제공 중인 기업에 취직해서 업무를 한다면 그나마 서비스 제공자의 관점이 상대적으로 덜 크리티컬 할 것이다. 회사에 따라서는 변화를 달갑지 않아 하는 곳도 있으니까.
하지만 창업은 일반적으로 Bottom-up 방식으로 비즈니스가 진행되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창업은 사용자의 pain point, 니즈 파악 단계부터 아이디에이션, 프로토타입, 상용화까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빌드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철저히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분석하고 사업화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창업할 때나 맘 편히 할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미 많은 사용자를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는 기성 서비스의 경우 흐름도 빠르고 리스크도 있어서 사용자를 깊이 있게 고찰하고 반영할만한 여유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비즈니스에는 워낙 많은 변수가 개입되기 때문에 근거를 탄탄히 밟아 사업을 진행해도 시장에서 외면을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UX 리서처/기획자로서 관점
앞서 이야기한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pain point, 니즈를 구체화한 후 다룰 만한 부분을 찾는 게 직업적으로는 UX(user experience: 사용자경험) 리서처가 수행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필자는 스타트업이 UX 리서처를 채용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이 글은 철저히 창업자를 대상으로 쓰여졌다. 그러므로 냉정하게 판단하건대, 오히려 반대로 UX 리서처는 창업에 있어서 최소단위에 포함되는 존재가 아니기에, (웬만큼 큰 기업이 아니라면) 별도 포지션으로는 생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그렇게 돌아가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또 국내에서 제대로 훈련받은 UX 리서처가 많지도 않다고 생각한다(*이와 관련된 구체적 이야기는 시리즈 추후 UX 콘텐츠에서 다루겠다) 핵심은 꼭 UX 리서처가 없더라도, 창업팀 구성원 중 누군가는 UX 리서치 역할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 출발점은 뇌피셜을 배제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창업할 때 가장 시간 단축이 쉬우면서 과정에서 티도 잘 안 나고 편리한 과정은 의사결정을 뇌피셜로 하는 것이다. 경영자의 ‘직관’을 방패 삼아 사업선정, 방향성, 업데이트 등 많은 부분을 ‘적당한 양의 데스크 리서치 + 내가 느끼기에 그럴 것 같은’ 쪽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전에 UX로 유명한 국내 lab에 방문했을 때 칠판에 적혀 있던 인상적인 글귀가 있었다.
사용자 데이터 받기 전까지는 생각하지 말기.
연구실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UX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문장이기도 하다.
창업자에게 뇌피셜 의사결정은 암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장은 보이지 않고 영향을 주지 않을지 몰라도, 끝에 다다라서야 뭔가 잘못된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사용자의 반응이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필자가 데모데이를 준비할 때였다. 당시 카페를 중심으로 자영업자를 위한 인테리어 소품 교체 서비스를 사업 아이템으로 준비 중이었다. 서비스는 본인 모바일 AR을 활용하여 직관적으로 소품 배치를 해보고 바로 교체까지 하는 컨셉이었다. 해당 제품을 구현하기 위한 필요 인력까지 마련된 상태였다. 경쟁 대회를 위한 서류상으로는 경쟁력 있다고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당시 유행하던 구독형 서비스, 기술 기반 사업(AR), 정부 지원사업선정 등 매력적으로 보일만 한 것은 다 때려 박았(?)으니까. 서비스디자인 과정에서도 모든 요소에 근거를 달 수 있을 만큼 데스크 리서치를 굉장히 탄탄하게 하였었다. 하지만 당시 팀에서 PM, UX 리서처, 기획자 역할이었던 필자는 데모데이가 다가올수록 불안했다.
“이게 진짜 사용자가 원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데모데이가 팀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이루어졌기에 설계를 촘촘히 할만한 여유가 없었다. 필수적인 것 위주로 검토하고 진행하다 보니 정작 사용자의 니즈를 페이퍼 상으로만 증명하였었다. 데모데이를 불과 일주일도 안 남기고 필자는 기차를 타고 대전 유성구로 내려가 카페거리에 있는 개인 카페 20~30여 곳을 방문했다. 사장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사업에 관한 생각과 프로토타입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렸다. 물론 심히 대놓고 거절도 많이 당했고 민망하다 싶을 만큼 무시도 당했지만, 다행히 그 와중에 자세히 피드백 주시는 감사한 분들도 있었다. 또한 해당 사업 분야의 박사급 전문가를 찾아가 도메인을 비롯해 궁금한 부분에 대해 인터뷰를 나누었다. 서울로 돌아와서는 연남동에 있는 카페 20~30여 곳을 마찬가지 목적으로 방문하였다. 총 50여 개가 넘는 카페를 방문해서야 우리의 서비스의 방향성이 잘못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창업 네트워크 속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아왔는데, 실제 시장에서는 쓰지 않는 제품이 될 예정이었던 것이다. 구체적인 사항을 말할 수는 없지만, 개선안을 정리하여 남은 시간 동안 연속으로 밤을 새웠고, 결국 데모데이까지 완성하여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당시 느낀 점은 실제 사용자의 진짜 평가는 페이퍼 속 예상된 사용자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데스크 리서치의 레퍼런스 신뢰성이 높더라도 사업에서는 무작정 신뢰할 수 있는 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에 교내 봉사 동아리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봉사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기획하는 데 있어서, 양로원에 스트레칭 동작 포스터를 건네주자는 의견이 나왔다. 어떤 동작을 해야 할지는 인터넷으로 허리에 좋은 동작을 찾아 그리자고 하였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우선 양로원 담당자부터 이야기를 나누고 결정하자고 할 것 같다. 양로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스트레칭 프로그램은 있으신지, 어느 부위가 편찮으신 분이 많으신지, 종이 포스터를 드린다면 보실 만큼 시력은 괜찮으신지, 보통 양로원에 걸려있는 포스터 사이즈는 어떤 크기인지 등등을 먼저 알아볼 것 같다. 그러고 진짜 그분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제작을 할 것 같다. 큰 공수가 드는 것도 아니고 인터뷰 한 번이면 해결되는 문제니까.
개인적으로 이 정도는 UX의 U도 모르는 창업자라 할 지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유능한 UX리서처, 기획자는 더 다양한 방법론을 활용하여 각 상황에 맞추어 문제를 발견, 해결책을 설계할 수 있다. 초기사업뿐만 아니라 이미 완성된 제품에 대해서도 User Test를 통해 개선안을 제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복하지만 그런 복잡한 방법론이 사업에 필수 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실사용자를 데이터를 중시하는 관점을 가진다면 자연스럽게 학생으로서의 마인드셋에서도 벗어날 수 있지 않나 싶다. 제품-사용자 자체에 집중하는 UX 결과물을 먼저 만들어내면 비즈니스상 합리적인 의사결정도 쉽다. task의 중요성이 사용자의 특성과 pain point의 심각성이 나열된 결과를 보고, 현재의 비즈니스 가치상 우선적인 부분을 선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제품 개선안 중 A가 가장 필요하지만, 개발소요시간이 길어서 B부터 먼저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A가 중요한 근거들을 기록해두었기 때문에 추후에도 상황에 따라 관리할 수 있다. UX를 절대적 가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B가 C보다 UX 관점에서는 우선이지만, TAM/SAM/SOM을 계산해보았더니 임팩트가 C가 월등하면 C를 선택할 수도 있다. 무엇이든, 뇌피셜보다는 합리적이고 계획성 있는 의사결정이다.
학생창업 시 겪는 관점 상의 문제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공유했다. 비록 비판적으로 서술하기는 했지만 학생, 즉 서비스 사용자 상태에서의 태도를 서비스 제공자로 옮겨올 때 생기는 오류는 흔하고 자연스러운 사건이다. 다른 학생창업 문제들과 비교했을 때는 시간에 따라 개선될 여지가 높은 이슈라고 생각한다. 그 해결책 중 하나로 UX적 사고를 권장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