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와 업계, 이 두 세계 사이에서 어떻게 위치하고 있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단순히 고학력자가 많으니 석박사를 해야 한다의 측면도 아니고, 경력이 중요하니 업계에서 시간이 더 우위에 있다는 비교와는 다른 어떤 결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학계 UX는 사용자 행동, 인지과정, 경험의 구조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 한다. 주로 이론적 모델과 실험을 통해 보편적인 패턴을 찾거나, 특정 상황에서의 사용자 반응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데 초점을 둔다. 말 그대로 ‘파고드는 것’이다.
반면 업계 UX는 실사용자의 맥락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개선하여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심이다. 현업에서는 대부분 문제 해결과 비즈니스 임팩트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엄밀한 검증보다는 빠르고 직관적인 실행이 요구되곤 한다.
이 차이는 특히 업무의 목적과 리듬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학계는 시간과 자원을 들여 가설을 정립하고 이를 입증하려는 접근을 취한다. 반면 업계는 시간과 자원이 늘 부족하기 때문에, 빠르게 가설을 설정하고 최소한의 실험을 통해 즉각적인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Lean UX’ 방식이 주류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같은 사용자 인터뷰를 진행하더라도, 학계는 철저한 통제와 샘플링을 고려한 반면, 업계는 핵심 사용자 몇 명의 피드백만으로 방향을 설정하기도 한다.
현업에서 UXer로 근무하면서 체감해 온 한 가지는, 연구 없이 실행만 거듭하게 되면 그 결과물은 결국 뭔가 얄팍하고 한계가 분명해진다는 점이다. 반대로, 연구만 하고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현실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약해진다는 점도 뼈아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업 UX 실무자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 중 하나는 바로 연구를 실행 가능하게 번역할 수 있는 능력, 즉 해석과 전략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인상 깊게 진행된 프로젝트들 대부분은, 리서치의 깊이가 실행의 설계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경우였다. 인터뷰에서 발견한 통찰이 곧바로 정보구조 설계나 UI 흐름으로 변환되는 순간들이었다.
또 현업에서는 UX의 역할과 깊이가 조직과 도메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일부 조직에서는 UX 리서치가 핵심적인 기능으로 자리 잡고 있으나, 다른 조직에서는 UI 업무의 한 부분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또한 리서치 중심의 에이전시에서는 정제된 방법론이 중요시되는 반면, 제품 조직 내에서는 당장의 문제 해결 능력이 우선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의 차이에서, 학계와 업계의 거리감이 생기기도 하고, 반대로 협업이 필요한 이유도 발생한다. 즉, 양쪽은 결과적으로 모두 필요하고 커리어 전체 측면에서 언젠가는 채워야 할 균형감이 가장 중요한 셈이다.
솔직히 대학원 시절 UX 연구실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해본 방법론적인 접근만큼 현재 실무에서 뭔가를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은 사안과 이슈를 대하는 데 있어 예체능계인 내게는 큰 영향을 끼친 바 있다. 학계의 훈련은 문제를 추상화하고 구조화하는 데 강점을 가지며, 이는 제품 전략을 세울 때 매우 유용한 기법이자 자산이 된다.
학계 UX와 업계 UX는 그 목적과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어느 한쪽만으로는 완결된 사용자 경험을 만들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업계가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학계의 성과를 수용하고 이를 실무 언어로 재해석할 줄 알아야 하며, 반대로 학계는 실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실적 제약을 반영해야 연구가 살아있는 지식이 될 수 있다. 물론 다소 이상적인 표현일 것이다.
실제로 느끼는 바는 대기업 UX 조직에서도, 리서치 기반 인사이트를 가지고 전략적으로 제품 방향을 설정하는 ‘기획형 UXer’에 대한 니즈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학문적 깊이만큼이나 커뮤니케이션과 협업, 그리고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 함께 갖추어야 한다.
UX는 결국 사람에 대한 일이다. 그리고 사람은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의 정밀함과 실무의 탄력성을 모두 갖춘 UX 인재야말로 시장에서 분명 가치롭다. 커리어를 구성할 때는 이 두 세계를 오가며 다리 놓기를 하길 권하며, 다만 무엇이 더 중요하다거나 뭘 먼저 하면 좋다와 같은 선후관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