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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가치

'1'을 정의하는 한 사람

by UX민수 ㅡ 변민수

우리는 숫자를 믿는다. 특히 ‘1’이라는 숫자는 명확함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하나면 하나고, 그것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는 값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에서는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다. 그러나 우리가 일하고 살아가는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숫자로 표현된 ‘하나’의 의미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운송수단 1대’가 자전거일 수도 있고, 자동차나 비행기일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모두 ‘1대’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와 무게는 완전히 다르다. 이처럼 같은 숫자라도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을 정의하는 힘


세상에서 숫자 ‘1’은 단순해 보인다. 누구나 알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값이자, 더하거나 빼거나 곱하거나 나누더라도 명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가 다루는 일과 경험 안에서는 그 단순함이 오히려 착각이 될 때가 많다. 업무의 크기를 단순히 숫자로 판단하거나, 이슈의 심각도를 ‘1’이라는 수치로 규정하는 순간, 그 뒤에 숨은 맥락과 복잡성은 쉽게 간과되기 때문이다.


같은 ‘1’이라고 해도, 그 안에 담긴 실제 의미와 무게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작은 기능 하나를 수정하는 작업이,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사용자 경험 전체를 바꿔버리는 경우가 있다. 반면, 개발 리소스를 크게 들여 대규모로 변경한 기능이 정작 사용자의 행동이나 인식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숫자는 동일할 수 있어도 그 파급력과 맥락은 전혀 다르다는 얘기다.


그래서 UXer는 항상 이 ‘1’을 세심하게 정의해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 같은 하나의 과제라도, 누구에게는 단순한 반복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한 번 해보겠다"는 가벼운 표현 속에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무게와 의미는 달라진다. 동일한 숫자라도 그 안에 숨은 복잡성과 다양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팀과 조직, 그리고 사용자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 일. 그것이 바로 UXer의 본질적인 역할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결국 UXer가 해야 할 일은 '하나'를 단순히 숫자로 관리하는 것이 아닌, 맥락을 통해 같은 ‘1’이라도 상황에 따라 그 의미와 우선순위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을 팀과 조직 안에 일관되게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과정이다. 그럴 때 비로소 모든 사람들이 같은 ‘1’을 바라보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일이 많다, 적다의 기준 설정하기


업무를 하다 보면 "일이 많다"는 말이 오가곤 한다. 그런데 과연 그 기준은 무엇일까? 단순히 시스템 상에 발행된 티켓 수가 많아서일까, 아니면 업무의 난이도와 파급력이 커서일까? 티켓이 열 개라도 대부분이 문구 수정이나 색상 변경 같은 단순 작업일 경우, 해당 건들은 빠르게 소화할 수 있다. 반대로 티켓이 단 하나뿐이더라도 서비스 전체를 재설계해야 하는 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처럼 숫자로 보이는 일의 양과 실제 체감하는 무게는 다를 수밖에 없다. 포장과 거짓이 난무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각자 생각하는 ‘일의 크기’에 대한 기준마저 다르다 보면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누군가는 티켓 수를 기준 삼고, 누군가는 작업의 복잡성과 영향도를 우선 판단하게 되면 혼선은 불가피하다. 이런 차이를 좁히고 공통된 기준을 세우는 일 또한 UXer로서 해야 할 중요한 역량이다. 때론 어필도 필요하곤, 때론 방어도 필요하기 때문에 상황과 맥락에 맞게 이 '1'을 잘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UXer는 단순히 일의 수량뿐만 아니라, 그 일이 서비스와 사용자 경험에 미치는 영향까지 기준으로 삼을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작은 수정이 전체 사용자의 만족도를 바꿀 수 있고, 어떤 일은 비즈니스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일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만들고, 그 기준을 팀과 조직에 일관되게 공유하는 것. 이것이 UXer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행해야 하는 핵심 업무다.



일관성은 단일화가 아닌 맥락을 읽는 일


UX 업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가 바로 ‘일관성’이다.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하든, 사용성 테스트를 하든, 브랜딩 전략을 논의하든 일관성은 언제나 핵심 기준처럼 강조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일관성’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하나로 맞추는 것, 규칙을 무조건적으로 통일하는 것을 일관성이라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서비스의 유연성을 해치게 된다.


일관성이란 단순히 동일한 형태와 기능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용자의 경험을 예측 가능하게 하고, 브랜드와 서비스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를 일관되게 유지하게 만드는 ‘체계적인 기준’이다. 진짜 일관성은 오히려 각기 다른 상황과 맥락에서 ‘왜 이렇게 설계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설명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메인 화면의 버튼 스타일을 A 패턴으로 정의했다고 해서 모든 화면에 무조건 같은 스타일을 적용하는 것이 일관성은 아니다. 오히려 특정 상황에서는 다른 색이나 형태가 필요할 수 있다. 사용자 상태나 행동 패턴, 그리고 그 순간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따라 차별화가 필요한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표면적으로 다르게 보여도 ‘이 선택이 왜 일관적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상황에 따라, 사용자에 따라, 그리고 비즈니스 목표에 따라 정의되는 ‘1’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팀원과 이해관계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논리를 세우고, 그 기준을 합의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일관성’을 지키는 일이란 단순한 설계된 규칙을 강제하는 일이 아니라, 다양한 맥락 속에서도 서비스와 브랜드가 흔들리지 않도록 기준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일이다. 당연히 어렵고 고등한 능력을 요한다.


결국 UXer는 시스템의 수호자가 아니라, 사용자 경험의 맥락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그 안에서 적절한 ‘1’을 그때 그때 잘 찾아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을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유능한 UXer의 한 가지 척도다.




결국 UXer가 다루는 모든 일의 본질은 '1'을 어떻게 정의하고 다룰 것인가에 달려 있다. 같은 숫자라도 그 안에 담긴 맥락과 무게는 언제나 다를 수 있고, 그것을 읽어내는 능력이 UX의 출발점이다. 일이 많고 적다는 기준조차 상황과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에, 이를 공감대와 기준으로 정리하고 공유하는 것은 UXer의 중요한 역할이다. 또한 일관성 역시 단순한 통일이 아닌 맥락을 기반으로 한 기준의 지속적인 설계와 운영에서 비롯된다.


잘 된 UX는 단순한 화면이 아니라, 복잡한 조건 속에서 모두가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 '1'을 찾아내고, 그것을 일관성 있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을 설계하고 끌어가는 사람이 바로 UXer다. ‘1’을 디자인(D)하고 정의하는 힘, 그것이 UXer가 팀과 사용자 사이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역량이자 태도라고 생각한다.



Photo by Gabriella Clare Marin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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