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의 결정적 순간에 관하여
곧 있으면 멘토링을 시작한 지 9년차가 되어 간다. 멘토링 구력을 일종의 연차처럼 읊어대는 것이 영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숫자로 인한 감회를 부인하진 못하겠다. 작년에 한 차례 활동패턴 자체에 변화를 가했고, 올해는 그 기조를 유지하면서 비교적 잠잠하게 순항다고 자평할 수 있겠다.
몇 개월 전, 처음으로 UX와 아예 무관한 멘토링을 해볼 기회가 있었다. 질문자분께선 UX 화두와 무관한 요청이었기에 혹시 실례 혹은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상당히 조심성있게 접촉을 해오셨다. 나는 당연히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해 고민했지만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까지는 여느 멘토링과 크게는 다르지 않다.
멘토님 커리어의 결정적 순간이 언제였고 무엇이었나요?
질문을 듣고 살짝 전율했다. 지금까지 나를 향하는 질문은 종종 있었지만, 여태 들어본 적 없었던 신선하고 질문자의 통찰력이 엿보이는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마련하기 위해 내 커리어 여정을 자연스레 차곡차곡 곱씹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서 들었던 기분이 '아, 영리한 질문이구나'였다. 왜냐하면 이 질문으로 인해서 나는 순식간에 주요 터닝포인트를 모두 스캔할 수밖에 없었고, 빠른 시간 내 안에서는 내 커리어 전체상이 삽시간에 활성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대답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나의 기분은 기억이 난다. 뭔가 차분하게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잘 대답하지 않았던 이야기까지 몽땅 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점이 질문자분께도 만족스럽게 다가갔던 것으로 기억난다. UX 화두를 벗어나니까 되려 커리어에 관한 본질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체험했던 순간이었다.
사실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나에 관해 궁금해하는 질문 자체를 거의 받지를 못했다. 책이 나오고 독자에서 멘티로 만남이 이어진 분들이 제법 생기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의 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멘토님이 이렇게 시간을 내어주시고 지속적으로
활동하실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나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순간 순간 깜짝 놀라기도 기분이 좋기도 당황하기도 묘했다. 지금은 적응이 되었지만 처음엔 그랬다. 그 덕에 나에 대해 보다 입체적으로 알려줘야 하겠단 결심도 더 해볼 수가 있었다.
영리한 질문은 한 가지 특징을 가졌다. 그것은 마치 한의사가 혈을 찌르는 것 같은 날카롭고 좁은 질문이란 것이다. 근데 좁다고 해서 단편적이고 단답형이 아닌 굉장히 열린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면접관도 감동케 할 수 있다. 특히 면접 마지막 순간, 하고 싶은 말이나 마지막으로 질문 같은 게 있냐고 하면 이런 류의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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