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의 본질은 타이틀이 아니라 태도다
물경력이라는 단어는 참 쉽게 입에 오르내린다. 누구나 ‘헛되이 흘러간 시간’에 대한 공포를 품고 산다. 회사에 다녔고,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렸고, 보고서도 썼지만, 막상 내세울 게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그 반대편에 있는 불경력은 좀처럼 탐내지 않는다. 물경력을 피하고 싶다면서도, 불경력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 그 간극이 늘 궁금했다. 두려워하는 건 분명한데, 감히 욕심내지도 못하는 태도. 어쩌면 이 시대는 경력을 증명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증명될 수 있는 경험에는 스스로 선을 긋는 것 아닐까.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 남는 것들이 있다. 불경력은 그런 것이다. 불경력은 말 그대로 ‘쉽지 않은 경력’이다.
단순히 오래 일했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타이틀이 좋다고 자동으로 쌓이는 것도 아니다.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남이 대신해줄 수 없는 판단을 해야 한다. 기준이 없을 때는 기준부터 만들고, 책임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실패도 잦다. 결국 몸을 던져야만 얻을 수 있는 경력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불경력을 부러워는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무게를 감당할 생각까지는 하지 않는다. 말로 설명되기 전에, 몸이 먼저 알고 있는 시간. 나는 그것을 욕망하기보다, 먼저 감당할 준비부터 해야 했다.
이 시대는 ‘가성비’를 숭배한다. 최소한의 인풋으로 최대한의 아웃풋을 끌어내는 것이 스마트함의 기준이 되었다. 가능한 한 아끼고 줄이고, 덜 고생하면서 많은 결과를 얻는 방식이 지혜로운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인풋을 줄이면서도 결과는 남보다 앞서고 싶어한다. 이 모순 앞에서, 불경력은 너무 쉽게 기각된다.
어차피 많은 것을 넣어야 하는 일이라면,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겠다는 자세.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아’라는 말은 어쩌면 이 세대의 가장 솔직한 심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부러운 경력이란 건, 분명히 ‘그렇게까지 한 사람’에게만 남겨진다.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 잊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안일해서는, 보통의 잣대로는 절대 불경력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은, 이토록 불경력이 기피당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것을 얻는 일이 예상보다 쉬워졌다고도 볼 수 있다. 모두가 뒤로 물러설 때,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면 된다. 아무도 안 하려고 할 때, 내가 그 자리를 채우면 된다. 경쟁자는 없고, 도전자는 드물다.
불경력은 희소한 만큼 새롭게 특별해졌다. 특별하다는 것은 결국, ‘선택한 사람만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성공 확률은 낮지만, 시도하는 사람조차 적기 때문에 기회는 오히려 넓게 열려 있다. ‘아무도 안 해본 일’이 아니라, ‘모두가 안 하려는 일’을 해내는 것. 나는 거기서 불경력이라는 이름의 기회를 다시 보게 된다.
물경력을 두려워한다면, 불경력을 탐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둘 다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경우, 정말 물경력을 두려워하는 게 맞는 걸까? 사실은 욕심은 없지만, 뒤처지고는 싶지 않은 것이다. 남들보다 잘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남들보다 못해 보이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나는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말하면서도, 자꾸 주변을 눈치 본다. 욕망 없는 체하지만, 비교는 포기하지 않는 태도. 그건 어쩌면 가장 미묘한 자기기만일지 모른다. 나는 그 마음을 잘 안다. 나 역시 그런 시기를 거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결코 나를 구원해주지 못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역설적으로 물경력과 나를 계속 친하게 둘 뿐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현실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경력에 대해 아무런 욕심이 없다면, 그저 주어진 삶에 안주하겠다고 솔직히 말하는 편이 훨씬 정직하다. 애매한 욕심만 품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불안해하는 것은 더 고통스럽다. 보통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인정하면 차라리 괜찮다. 그치만 그게 아니라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성장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한다. 불경력은 그 고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정말 욕심이 없다면, 깔끔하게 내려놓자. 아니면 욕심이 있다면, 단단히 감당할 준비를 시작하자. 물경력을 두려워한다면, 물경력도 탐내야 하는 이유다. 그렇지 않다면 물경력을 두려워하지 말라.
물경력을 걱정하는 척 하면서도, 불경력은 탐내지 않는 이 기묘한 자세. 나는 그것이 이 시대의 모순이고, 어쩌면 내 안의 모순이기도 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정말 물경력이 두려운가? 아니면, 그냥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불안한 것뿐인가?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건 조금 불타더라도, 진짜 나만의 경력을 쌓아가는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만, 나는 정직해질 수 있다. 물과 불 사이의 시간을 흘려보낼 것인가,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 선택은 늘 그렇게, 아주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