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마켓 플레이스 모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
부모님께서 아주 가끔 주말마다 농사를 지으신다. 고추며 상추를 쫙 깔아 심으시는데 생각보다 농작물이 꽤 잘 자라는 편이다. 너무 잘 자라서 '옥수수'를 수확하는 달에는 매주마다 옥수수를 삶아 먹고, 고추를 수확하는 날에는 햇고추 무침, 고추 말랭이 등 온통 고추 요리가 밥상에 올라온다. 이럴 때면 근처 이마트가 절실해진다. 나는 구석기시대 마늘과 쑥으로 버틴 웅녀가 아니라 한 겨울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살기 때문이다. 정작 우리 집에는 고추와 마늘밖에 없지만 마트에 가면 고구마, 감자부터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까지 있다. 나는 옥수수와 고추만으로 살아갈 수 없기에, 기꺼이 돈을 지불해 내가 먹고 싶은 식재료를 구매한다. 고구마를 키우는 사람, 감자를 키우는 사람들 모두 고구마와 감자만으로는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켓이 필요하다. 고구마도 팔고, 옥수수도 팔고, 고추와 상추도 파는 마켓이 있다면 우리는 좀 더 다채로운 식단을 준비할 수 있다.
데이터 비즈니스 세계도 유사한 가치사슬이 형성되고 있다. 우리 부모님처럼 고추, 상추를 재배하는 회사도 있고 서로 데이터를 판매해 보라고 마켓을 열어주는 회사도 있다. 우리 가족이 고추와 옥수수만 농사를 지었다고 일 년 내내 옥수수 구이와 고추 장아찌만 먹으란 법이 없듯이 각 회사에서도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지만 타 분야, 타 회사의 데이터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데이터 마켓에서 거래를 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하는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이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데이터를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을 제공하고, 중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오토노모이다.
오토노모는 데이터 마켓 주최자이다. 다른 회사의 데이터를 직접 소유하거나 판매하지는 않지만 안전하게 데이터를 거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데이터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꽤 많은 공정이 필요한데 오토노모는 표준화를 도와주거나 개인정보보호, 보안을 적용해 고객들이 데이터를 쉽게 사고 판매할 수 있도록 한다. 데이터 규정은 잘 지켜졌는지를 확인하고 공정을 거쳐 데이터가 서로 교환되어 사용될 수 있도록 표준화를 담당한다. 데이터 중개인으로서 데이터 매매를 쉽게 할 수 있도록 각 회사 데이터 카탈로그를 만들어 필요한 데이터를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 더 나아가 특정 회사에 맞춤형 데이터를 중개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오토노모가 데이터 거래를 할 수 있는 장터를 만들면 그 안에 보험회사, 스마트 시티, 자동차 회사 등이 필요한 데이터가 있는지 쇼핑하듯 둘러보게 된다. 오토노모는 많은 회사들에게 입장료 개념으로 데이터 마켓에 들어갈 수 있는 '접근 요금'을 부과하며 돈을 번다. 만약 데이터 마켓에서 실제 데이터 구매가 이루어지면 또다시 수수료로 오토노모는 돈을 번다. 데이터를 구매하는 회사도 일정 수수료를 지불하고 데이터를 판매한 회사 역시 수수료를 마켓을 만든 오토노모에 지불하는 개념이다.
이렇게 오토노모가 만든 데이터 시장에 들어온 회사는 자동차 회사만 무려 16개 이상의 회사들이 속해있다. BMW, 다임러, GM, 포드, 미츠비시 등의 자동차 회사가 포함되어 있고 2021년 기준 4천만 대 이상의 차량이 데이터를 제공해 하루 약 43억 개의 데이터가 제공되고 있다. 아비스와 같은 모빌리티 렌털 서비스 회사까지 포함되어 모빌리티에 대한 풍부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이렇게 렌털 회사의 데이터가 데이터 마켓에 올라오게 되면 보험회사는 렌터카 사고에 대한 보험료 책정 시 활용할 수 있고 자동차 제조 회사는 얼마나 자주 유지보수가 필요하고 렌터카에서 어떤 기능을 보완하면 좋을지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오토노모가 모빌리티 데이터 마켓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2가지 요인이 있다. 먼저 자동차 회사와 서비스 제공업체들 간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이다. 오토노모의 기술과 모빌리티 회사의 니즈가 정확히 맞아 파트너십이 형성될 수 있었다. 모빌리티 회사들은 새로운 신규 수익원이 필요했고, 때론 다른 회사의 데이터가 필요하기도 했다. 이럴 때 회사 입장에서 가장 좋은 건 직거래 방식일 테다. 수수료가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번거로운 작업들을 필요로 한다.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데이터 판매에 필요한 보안, 개인정보 제거, 유지보수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토노모는 모빌리티 회사들의 불편 사항들을 이해하고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가공하는 기술에 초점을 맞춘다.
데이터의 가치를 높여 팔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한다. 예를 들어 날씨, 공간 등 맥락을 알 수 있는 다양한 데이터들과 기존의 모빌리티 데이터와 결합을 한다면 좀 더 가치를 높여 팔 수 있을 것이다. 다임러의 MBUX는 개인에게 가장 최적화된 서비스를 위해 여러 데이터를 조합하여 사용자별 자신만의 디스플레이를 만들어보거나 혹은 생일 알람, 할 일 목록 제안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때 좀 더 개인의 맥락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를 얼마든지 제안한다면 충분히 개인화 서비스를 만들고자 하는 회사는 구매를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 마켓플레이스는 언뜻 보면 연결만 해주는 비즈니스라 쉬워 보이지만 대규모 자원이 들어간 회사라도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Azure 데이터 마켓플레이스는 2018년에 문을 닫았다.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였지만 실패한 이유는 끈끈한 파트너십 기반으로 데이터를 사고, 파려는 기업들의 니즈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데이터로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하지만 데이터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체크해야 하는 포인트들이 필요하다. 데이터를 융합한다는 이야기는 언뜻 희망 있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막상 융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하는 산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각 회사마다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준도 다르고, 계속 쌓이는 데이터를 어떻게 가공해야 할지도 방향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데이터 마켓 플레이스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오랫동안 매력적인 파트너십이 유지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이고, 데이터 거래에 꼭 필요하지만 쉽게 확보하지 못하는 기술이 무엇인지 찾아 내재화하는 것들이 특히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