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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기획자 Oct 20. 2019

리스본, 골목길에서 낭만을 엿보다

유럽여행 중 발견한 트렌드, 일상의 낭만 찾기

사람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다양하겠지만 난 주로 소진되었을 때 떠난다. 감정적으로 소진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지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일까? 너무 큰 조직 안에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반경이 오히려 제약적이다, 나 자신이 부속품같이 느껴진다, 너무 피곤하다 등등의 부정적인 생각이 싹틀 즈음 포르투갈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리스본’에 대한 첫인상은 세련되거나 도시적이진 않았다. 대신 누적된 역사의 흔적을 오롯이 드러내 그 자체로 푸근하게 매력적이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면서 감미로운 에너지가 도시를 감싸 안고 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니 거리마다 조용히 울려 퍼지는 음악 때문이었다.      


딱 봐도 백 년 이상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골목길 어딘가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따라 걸어가니 노란 형광등 아래 앳된 얼굴의 청년 두 명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내 인생은 구리다고 징징대는 나에게 그 청년들은 ‘인생은 아름다워 OST’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좁은 골목길에서 펼쳐지는 공연이라 아주 가까이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꽁지머리 청년이 이미 바이올린 선율에 심취해 눈을 감으며 이마에 핏줄이 선명히 나타나는 그 모습까지도 모두 볼 수 있을 만큼의 거리랄까? 약 3분 내외의 공연이었지만 음악 한 곡은 내게 잔잔한 위로를 주었다. 뜻하지 않게 만난 위로가 고마웠다. 그 청년들 역시 동양 여자애가 물끄러미 봐주는 게 고마운지 내게 미소를 날리는데 순간 낯부끄러워 소심하게 박수를 몇 번 치고 얼른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어떤 광장을 걸어가는데 근육질의 청년들이 쿵쾅거리는 비트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빠르고 강렬한 음악을 외치며 노래를 부르는데 그 청년들을 지켜보는 사람들 중 한 두 사람이 따라서 노래를 함께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더니 그 청년들 주변을 에워싼 사람들 수십 명이 너도나도 함께 노래를 부른다. 모두가 고개를 앞뒤로 흔들면서 아예 청년들에게 다가가 함께 춤까지 춘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도 깔깔 웃으면서 손을 마주 잡고 한 바퀴 돌고 도는 춤을 춘다.      


‘이 사람들은 술 취한 사람들인가? 이런 곳에서 창피하게 왜들 그러지?’     


전학생의 마음과 같았다. 그들끼리는 ‘흥’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서로 어울리지만 내겐 ‘흥’도 ‘유쾌함’도 없었다. 사람들은 깔깔 웃으면서 춤추며 노래하는데 나는 좀처럼 어울릴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가 낯설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눈만 꿈뻑꿈뻑거리는 것뿐이다. 사람들을 외면하고 빠져나가기로 했다. 춤추는 사람들의 틈 사이로 나가려고 고개를 들고 사람들 사이의 틈을 찾기로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나같이 웃고 있다. 어깨춤을 추면서 웨이브를 춘다. 비켜달라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보는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즐거울 뿐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갑자기 나를 마주한 채 양팔을 마구 흔든다. 이쯤 되면 미치광이들의 모임터라고 생각할만하지만 이상하게 그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즐거운 감정이 내게 전달된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라는 것을 온몸으로 말해주는 듯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즐겁게 살자고!’


삶을 즐길 줄 안다는 건 작은 행동, 작은 감정에도 소홀히 하지 않고 온전히 만끽하는 것일 아닐까. 여유 있는 삶이란 팍팍한 삶을 내려놓고 그 안에 작은 감동, 기쁨이 들어올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놓는 것이 아닐까.     

하루 종일 걸어가면서 보았던 음악 공연, 마술쇼, 퍼포먼스만 해도 벌써 8번째이다. 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중세시대 해적을 재현한 사람도 보았고 광장에서 눈물이 맺힐 정도로 감미로운 바이올린 한 곡도 들었다. 거리가 24시간 야외 공연장이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예술가인 셈이다. 예술이 일상이고 일상이 예술인 셈이다.  

이들에겐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는 것이 삶의 한 부분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 역시 낯선 시간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일상이다. 경쟁을 하지 않고, 돈을 많이 벌지 않더라도 유연하게 삶을 바라보며 더 많이 웃을 수 있도록 마음의 틈을 열어놓는 것이 이들에겐 무척 자연스러운 시간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부터 학교 가는 길에 웬 피아노가 한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지만 용기 있는 몇몇 사람들은 피아노에 앉아 익숙한 곡을 연주한다. 그러면 다들 핸드폰을 꺼내 그 장면을 녹화하고 사진을 찍으며 감탄을 한다. 좀 더 걸어가면 젊은 비보이들이 단체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때론 어떤 여성 보컬이 감미로운 발라드를 부르기도 한다. 낯선 풍경이지만 재주 있는 그들의 모습이 멋있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여 핸드폰을 꺼내 들고 다 같이 사진을 찍으며 환호를 한다. 하지만 어쩐지 이런 모습은 일상적인 풍경이라고 하기엔 어색하다. 일단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닐뿐더러 대학가라는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역시도 아직은 함께 호흡하기보단 관람객의 입장에서 낯설지만 특별한 시간으로 바라보는 이유 때문에 일상이라고 하기엔 다소 어색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조금씩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노래와 춤, 악기 연주 등의 예술이 파고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얼어붙은 삶에 예술이라는 돌덩이를 던져 유연한 파도를 일렁이도록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시간이 지나도 리스본이 여전히 낭만적인 도시로 기억되는 이유는 단순히 도시의 풍경 때문은 아니다. 그 안에서 숨 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 역시도 오롯이 낭만적인 태도로 삶을 일관했기 때문이다. 어느 거리를 걷든 음악이 함께 흐르고 춤을 추는 거리에선 저절로 보폭의 속도가 줄어든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눈이 떠지고 마음까지도 열리게 된다. 사람에 다치고 일에 치이고 나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울고 싶을 때 나를 위로한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닌 그저 잔잔한 음악이었다. 예술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위로한다. 빨리 뛰라고만 하는 경직된 생활 속에 조금씩 예술이 파고들 것이라 생각한다. 그 예술은 결코 특별하고 낯선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인식 역시도 점점 늘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 흩어지는 순간을 기억하고자 기록합니다.

@traveler_jo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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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k_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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