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프리미엄 시체스를 가다
매번 입었던 옷만 입으니까 남편이 보기 안쓰러웠는지 옷을 몇 벌 사들고 왔다. 그 옷을 보고 “와! 신난다!”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불쑥 “갑자기 무슨 사치야... 아껴서 살아야지.”라는 이야기를 했다. 기껏 생각해서 사 왔건만 좋은 소리는커녕 아쉬운 소리만 해대니 남편의 표정도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아니... 나 자신이 과연 이렇게 옷 3벌씩이나 사서 입을 가치가 있는가 싶어서...
이번 달엔 뭐 특별히 잘한 일도 없는걸...”
“왜 그렇게 생각해. 충분히 스스로를 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잖아. 그냥 한벌이라도 입어.”
옷을 선물로 받으면서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나 자신의 기분’을 챙기는데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의 나를 희생하고 노후자금을 마련하거나 투자하는데 보탠다면 우리 가족이 안정적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에 대한 투자도 인색하고 내면 깊숙한 마음과 표현이 어긋나는 가운데 여행을 가면서 ‘프리미엄’의 트렌드를 만나게 되었다. 그 시작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해변 마을 ‘시체스’에서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시체스’는 크고 작은 지중해 해변가가 많은 도시이다. 한 시간이면 주요 관광지를 훑어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아 해변을 가기 전 돌아보기로 했다. 작은 마을은 한때 국내 유명 드라마의 배경 장소가 되었을 만큼 바닷가와 몇몇 성당이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었다. 그중 수백 년의 역사가 담겨있는 한 미술관을 가게 되었다.
‘궁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미술관은 역사적인 예술품과 아름다운 건축 양식으로 잘 알려진 장소이다. 여느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아름다운 조각과 미술작품이 여러 점 전시하고 있었다. 섬세한 조각상도 우아하고 그림 작품도 소장가치가 충분할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정작 내가 가장 놀라운 장소는 따로 있었다. 그곳은 바로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평범한 공중 화장실처럼 보인다. 밋밋한 아스팔트 바닥에 물기 하나 없이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는 세면대 정도가 전부이다. 그런데 화장실 칸으로 들어가면 탁 트인 바닷가가 먼저 보인다. 광활한 바다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데 그 어떤 미술작품보다 아름다운 작품을 화장실에서 만나는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전망이라면 보통 돈을 벌기 위해 값비싼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만들 만도 한데 ‘화장실’이라니, 공간을 선점하는 형태가 무척 과감하다. 얼마든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공간에 화장실을 배치한 것은 인간의 생활 전반에 걸쳐 가장 아름답고 만족스럽게 만든 노력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문득 이곳의 스페인어 이름에 ‘궁전’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는 게 기억난다. 아무런 계산과 조건 없이 인간의 개인적인 공간을 배치하였다는 점, 그렇게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에서 ‘궁전’, ‘프리미엄’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아름다운 전망이 담겨있는 화장실을 겪은 뒤 천천히 도시를 걸어보기로 했다. 시체스 도시 건물은 하얀색으로 페인트칠해져 있다. 이렇게 하얀 집이 많은 이유는 강한 햇살을 조금이라도 반사시키기 위해 옛날부터 전해져내려 오는 전통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멀리서 볼 땐 모두 같은 색깔의 하얀색 집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모두 다르다. ‘나’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색색깔의 타일로 문패를 꾸며놓기도 하고 화단을 알록달록하게 꾸며놓기도 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나의 집’을 드러내기 위해 표현하고 있다. 비단 집뿐만이 아니다. 바닥을 보니 무언가 문양이 적혀있다. 이 문양은 그냥 아스팔트 맨 도로가 아닌 시체스만의 문양이 담긴 도로이다. 여기 바로 이 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도로이다. 옆집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타일이 아니라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타일 한 조각, 도시를 표현하는 도로를 만들고 있다.
작지만 ‘나’라는 정체성, ‘우리’의 정체성을 표현해 결국 도시를 완성하고 있다. 작지만 가장 많은 얼굴은 이렇게 주체성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다. 도시가 작지만 흥미로운 이유는 수많은 얼굴을 가졌기 때문이다. 생각의 방식을 다른 색깔로 표현하면 할수록 이 작은 도시가 하나의 전시관처럼 보인다. 어쩐지 프리미엄 도시처럼 느껴진다.
예술을 표현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부터 시작을 한다.
나 자신을 귀하게 생각해야 표현하는 이유가 충분해진다. 내 안의 사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굳이 표현할 필요도 없다. 그냥 흘려보내는 잡념으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 가치를 내가 인정하고, 생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순간 그건 외부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즉 나를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예술을 표현하는 기본 토대가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에 나를 표현하고, 내가 살고 있는 이 거리를 표현하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다.
‘프리미엄’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한다. 심지어 커피 한잔을 마시더라도 일반 원두가 아닌 ‘프리미엄’ 원두가 따로 구분되어 있듯이 모든 제품과 서비스는 ‘프리미엄’이라는 단어를 지향하고 있다. ‘프리미엄’이라는 단어가 난무할수록 오히려 식상하게 느껴진다.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서비스, 제품을 그저 보여주고, 경험하게 만든다면 사람들은 ‘프리미엄’의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사치라고 생각하며 남편이 사준 옷을 멀리하다 중요한 날이 되면 조금씩 꺼내서 입기 시작했다. 행복을 담보 삼아 현재를 혹사시키는 삶의 방식 대신 현재의 나를 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연습하기로 했다. ‘나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 다독거리는 순간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프리미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여행을 통해 살아가는 트렌드를 통해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
* 흩어지는 순간을 기억하고자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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