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그러다 만나기도 헤어지기도 하는 것
드라마 대사가 갑자기 떠올랐다. 김은숙 작가의 <신사의 품격>. “지금 이 시간부터 함께 흘러가요”라는 장동건 대사다. 시간이라는 단어 의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는 그저 지금 몇 시인지, 일하고 누군가를 만날 때 정하는 시간 약속과 같이 물리적인 숫자였다. 일반적인 국어사전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같다. 그래야만 오해의 소지를 가장 최소로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라마 대사를 떠올린 순간 시간의 속뜻을 정말 잘 표현하지 않았나 싶었다. 남자 주인공 역이 생각하는 시간의 중요성이자 가치,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녹여내는 대사였으니까.
지금 이 빈 화면을 한 자 한 자 채우는 것,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물 한 잔을 꼭 마시는 것, 휴대폰을 자주 보지 않으려 하는 것 모두 내가 선택한 나의 시간이다. 아마도 2025.03.13 오후 8시 29분, 지금 내 친구는 배우자와 함께 육아를 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이다. 누군가는 공원 한 바퀴를 돌고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먹고 싶은 음식으로 식탁을 차리고 있을 것이다. ‘~롭게, ~답게’와 같은 수식어가 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상황이 주는 의무가 따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각자의 방식대로 존재하다가 우연히 혹은 일부러 만나고 헤어지는 지점이 온다. ‘혼자’ 그리고 ‘서로’ 겹치고 흩어지는 흐름을 어떻게 느낄 것인지가 시간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는 따뜻한 물이 속을 촤르르하게 덥히는 느낌이 좋다. 내 친구는 배우자와 함께하는 육아를 통해 정신없고 녹초가 되기도 하지만 뭔가 가득 차는 기운을 얻는다고 한다. 공원 한 바퀴를 도는 사람에게는 운동하기 전까지의 고뇌와 기꺼이 움직인 후 땀 흘리는 기분이 있을 것 같고, 요리하는 사람은 음식을 만들 때의 남다른 감정이 있을 것 같다. 이런 점 때문에 마음 상태까지가 시간에 포함되지 않겠냐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설사 인상이 찌푸려지는 부정적인 감정일지라도 찰나 안에 포함된 묶음이니까. 어쩌면 종종 과거의 시간을 돌이켜볼 때 상황 혹은 감정 등이 먼저 생각나는 건 시간이 일부러 의도한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은밀하게 아무도 모르게.
열매이자 동시에 새싹이기도 한 시간을 쑥 뽑아 올리면 제멋대로 휘감긴 덩굴이 있을 것이다. 얼기설기 감긴 여러 줄기를 천천히 펼치면 한 사람 또는 그 이상으로 완성되는. 새벽과 아침, 한낮, 초저녁, 저녁, 밤. 이렇게 정확한 명칭으로 언급할 수 없는 사이사이의 시간들 모두 앞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떠오를 쉼표들일 테다. 어떤 순간을 보내든 그 안에 무수한 존재와 마음들, 오롯이 쌓아가는 각자의 시간을 응원하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다. 시간의 정도를 가늠하려 하거나 평가하려 하지 않고. 어떤 수식어가 달리더라도 ‘나’를 설명하는 에너지는 그 자체로 대단하며 존중받아 마땅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