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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 Mar 04. 2024

하나가 가면 또 하나가 온다는 삶에 대하여

물결과 닮은 삶


파도는 사실 잔물결이야


오늘 업무에서 사고가 났다.

업무 특성상 사고가 터지면 수습이 조금 급박하다.


혼이 잠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짧은 찰나 들었던 비관적인 생각이나 울 것 같은 심정은 그 상황에서 나를 꺼내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도망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상황이 닥치면 할 수 있다고 했던가, 정신을 부여잡고 해야 하는데 집중했다. 같이 수습을 도와주신 분 덕분에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내일 출근길에 커피를 사갈 예정이다.


사고 수습을 하느라 오랜만에 잡힌 고객 회사와의 저녁식사에 늦게 참석했다. 다른 팀원들은 먼저 가 있었다. 택시에 탄 후에야 얼굴 상태와 옷매무새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가는 동안 마음을 정돈하고, 화장도 조금 수정하자 생각했다. 퇴근 시간이라 길이 막혔지만 어쨌든 나는 가고 있었다. 1차에 함께하지 못해도 얼굴이라도 보고 오자고, 가기로 약속한 거니까 늦게라도 참석하는 게 맞았다.



한숨은 쉬지 않는 게 좋다지만, 삶에서 어떤 무게감이 느껴질 때면 애환과 탄식을 담아 내쉬게 된다. 애써 긴장을 내려놓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스스로에게 동정을 해 주는 마음도 일부 있다. 그래, 힘들지.. 택시에서 그런 한숨을 내쉬었다.



가는 길에 기사님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가 내게 담담한 위로와 용기로 다가왔다.


“전 솔직히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미리 알았다면, 무서워서 못 왔을 것 같아요. 뭐든지 앞날에 뭐가 있을지 몰라서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기사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인생에서 하나가 가면 하나가 또 오죠?“


다음 이어질 말이 조금 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기사님의 말이 꽤 멋졌다.


“인생이 파도와 같아요. 파도처럼 물결 하나가 오면 다음 물결이 오고 있어요. 그렇게 끊임없이 와요.“


마침 지나가는 곳이 한강 다리였다. 창 밖에 강을 봤다. 강과 바다에 있는 물결을 상상했다. 잔물결이 계속 오고 있는 물을. 기사님 말씀처럼 물결은 계속 오는 것이었다. ‘왜 하나가 가면 하나가 또 오는 거야?’라고 불평할 건 아니었다. 물결이 여러 결인 게 당연하듯이.


“그래서 넓게 볼 필요가 있어요. 지금 당장 온 파도만 너무 볼 게 아니라요. 조금 멀리서 잔물결이 오는 모습을 보는 거죠.“



내 상상 속에 파도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이었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잠시 동안 ’난 이 일과 정말 안 맞나 봐’, ‘도망치고 싶은데 이걸 내버려 두고 도망칠 수가 없네’, ‘난 책임감도 없는 애인가봐, 뭘 해도 이럴까?’ 등 두려운 생각들이 들었다.


하지만 기사님 말대로 삶이 파도가 넘실넘실 오는 물결의 모습과 닮았다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 높은 곳에서 조망해 보면 파도 하나하나는 나를 집어삼킬 만한 크기가 아닐 수 있었다. 계속 넘실넘실 오는 게 자연스러운 물결일 수 있었다.


햇빛을 반사해 은은하게 반짝이는 물결을 상상하며 저녁을 맞이하는 기분이 개운해졌다. 덕분에 후발대로 참석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조용히 스스로의 수고를 알아주는 듯한 맥주가 더욱 시원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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