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할 수 있도록, 지치지 않고
작년 겨울, 어떤 카페에 참 자주 왔었다.
처음 방문한 이후 단골 카페가 되어 그해 겨울과 봄까지 매주 주말이면 찾고는 했다. “나의 겨울은 OO”라고 할 만큼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좋았기에 참으로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창가자리에서는 공원의 나무들이, 각자 다른 목적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나처럼 카페에서 -혼자, 강아지와, 가족과- 주말 아침을 지내는 사람들이 보였다. 언제부턴가 이웃같이 느껴지는 직원분들과 주고받는 눈인사 그리고 대화는 한 주를 어렵게 보낸 후 늘 새롭게 다가오는 즐거움 또는 위로 같은 거였다. 가게에 앉아 있으면 다시 보는 얼굴의 손님이 들어올 때면 반갑게 맞이하는 인사가 들렸다. 이곳은 서울에 혼자 살면서 매우 드물게 인간대 인간의 공기가 채우는 곳이었다.
가게 간판과 머그잔 받침 등 곳곳에는 자그막히 “House”라는 단어가 쓰여있는데, 거기에서 그 단어를 보고 있으면 가슴속 어딘가 “하우스"라고 칭할 만한 곳이 있을 거라 느껴졌다. 너무 자주 잊어버리는 그러나 늘 찾아 헤매는 그래서 결국은 돌아갈 곳.
올해 초 겨울이 내게 이토록 선명한 건, 이 카페에서 보낸 시간 덕분일지도. 아마도 그럴 것이다. 왜인지 이 카페에 오면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때그때의 계절을 온전히 눈에 담을 수 있는 이곳에서 내게 있어 행복이라는 게 어떤 느낌인지 처음에는 어렴풋이, 점점 선명하게 정의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찾고 있던 걸 발견한 거였다.
…
1년이 지나 올해 겨울이 왔다. 최근에 이 카페를 자주 방문하지 못했다. 회사 일, 이직 준비, 새로운 사람, 달라진 생활패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이전처럼 자주 이 카페를 방문할 수 없었다. 오늘 오랜만에 이곳 창가자리에 앉으니 어딘가 낯선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오랜만인가..'싶으면서 특히 지난 몇 개월 동안을 거치며 스스로가 약간, 어쩌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자리 같은 사람인데 거기에 앉아 있는 스스로가 왜 이리 어색한 느낌인지. 이 가게에 오지 못한 몇 달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의 일부가 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건 잃어버린다는 것도 모른 채 잃어버리기 쉬운 거였다.
사실 오늘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던 건 이 카페 덕분이었다. 금요일이었던 어제 저녁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 아침 이 카페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이직준비를 하다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후 아무렇지 않은 척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멀리 하는 동안 몸과 마음의 양식이라 할만한 것들이 채워지지 못한 채 바닥을 드러냈다. 사람이 지친 상태라면 좋은 것들도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를 들여올 여유 공간이 필요한데 자신의 짐 무게를 감당하느라 정말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을 놓치는 거였다. 많은 것들에 대해 상당히 무감각해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가혹하게 잃어버린지도 몰랐던 스스로의 일부를 되살려야겠다고 느꼈다.
그곳은 그대로였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카푸치노를 마셨다. 십일월 말에 낙엽이 흩날리는 걸 보니 아직 계절은 가을과 겨울 그 어디쯤인 것 같다. 가을이 가기 전 계절의 일부를 이곳에서 눈에 담으니 다행이다.
잠시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곧 이곳을 좋아한 이유를 몸과 마음이 알아차려 준다. 앞날 걱정, 회사에 관한 생각들에 매몰될수록 스스로 중요시하는 것들과 멀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위한 일상적인 일들을 할 수 있는 토요일이라 마음가짐이 조금은 가벼워진.
좋은 것들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어디에 가지 않았다. 좋은 것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