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없이도 괜찮은 나이기를 바라는 마음
오랜만에 휴무 전날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
약간 위험한 상태라고 느껴져서 그렇다.
쉬는 전날 맥주를 즐기게 된 배경은 이렇다.
어느 날 퇴근길이 무척 지쳤다. 그냥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작은 공간에 혼자 있고 싶지도, 스스로 뭔가를 요리하고, 먹은 다음 정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딱히 생각나는 메뉴도 없었지만 그저 맛있게 배부른 정도면 되었다. 시원한 맥주도 생각이 났다. 사는 곳 근처에 호텔이 많아 근처 호텔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그곳은 저녁에 방문하면 테라 생맥주를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다. 첫 접시를 담기 전, 맥주를 먼저 가져와서 한 입 마셨다. 그때였을까 내가 테라에 반하게 된 게. 시원하게 넘어가는 탄산이 있는 그 맥주가 모든 피로와 애환을 씻어주는 듯했다.
그때부터였다. 금요일 밤, 쉬는 전날 그렇게도 시원한 맥주가 생각이 났다.
'혼술'이라는 걸 잘하지 않던 나는 혼술이 주는 쓸쓸하고 달콤한 맛에 빠져버렸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는 것 같은 답답하고 어지러운 머릿속을 술기운에 조금 풀어놓을 수 있어서. ‘괜찮을 거야..'라면서 고독과 외로움을 달래기에 나쁘지 않았다.
오늘도 생각이 났다.
가볍게 그러나 완전히는 아니게 복잡한 머릿속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면 맥주 생각이 나는 것 같다. 바깥에 가을바람이 불어 잠깐 벤치에 앉았다. 눈을 감고 저녁시간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봤다.
'네 목소리가 들리지를 않아.'
이게 내가 내게 준 답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면 이렇다. 뭔가를 선택해야 할 때 눈을 감고 잠깐 내면에 집중해 보는 버릇이 있다. 지금 어떡할까? 이렇게 작게 물어보고 그러면 어떤 감각들이 반응해서 알려준다. 그러니까, 머릿속으로 A를 고르더라도 그 감각이 B를 말한다면 B를 선택한다. 그리고 많은 순간 그 선택은 내게 옳다. 옳다는 건 온몸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나는 이 감각에 집중하지 못한다. 머릿속이 어지러워 집중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것 같다. 오늘 저녁 나에게 어떤 선택을 할지 여러 번 물어봤는데 선택을 내릴 수가 없었다.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감각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내면을 따르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 어떤 느낌이 드냐 하면, 과도하게 원하거나 정작 원한 걸 선택한 게 아니기에 자꾸 선택을 되짚어 보게 된다.
'집중할 수가 없어.. 없다고..'
복잡한 머릿속과 소진된 체력으로 인해 내면에 닿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그때 내게 알맞은 선택을 하고 싶은데 그럴 힘이 많이 없는 상태라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게 되었다. 내면에서 확신을 주지 않아서 조금 걸었다. 그러다 어쩌면 맥주가 주는 기분에 의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위로받으며 가볍게 짐을 쥘 수 있는 그 기분. 옆에 어떤 외국인 여성분이 건강한 발걸음으로 서브웨이에 들어가는 걸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맥주를 마시고 싶던 걸까 잠깐 모든 걸 내려놓고 위로 받고 싶은 걸까.
그래서 오늘은 맥주를 준비하지 않았다.
한 잔이 주는 위로감이 필요 없었으면 좋겠다.
그게 없이도 나는 나로서 괜찮다는 기분이 들었으면 좋겠다. 불쌍해서 못 봐주겠다.
맥주를 마신 다음날은 그렇게 아침답지는 않다. 왜인지 모르게 항상 조금 피곤하다. 그럼에도 요즘 휴일 전날이 되면 자꾸 떠오르는 시원한 맥주에 기대고는 했다.
내일은 일어났을 때 상쾌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