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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즈 uze Jun 27. 2019

<책갈피의 기분>

책갈피가 있어야 책을 읽죠!

‘책 만들고 쓰는 일의 피 땀 눈물에 관하여’ 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현존하는 상품 중 가장 노동집약적인 것 중 하나인 책을 만드는 팔자를 짊어진 편집자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12구 멀티탭’이라는 단어 하나로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책임져야 하는 편집자의 기구한 팔자를 재치있게 표현해 낸다. 


이사림의 일러스트도 좋은  <책갈피의 기분> 


편집자의 일은 실로 넓은 분야에 걸쳐 있고 게다가 다양하기까지 한데 대표적인 것만 꼽아봐도 숨이 차다. 작가를 발굴하거나 이미 책을 낸 작가를 관리하고, 계약을 성사시키고, 글을 쓰도록 다양한 조언과 독촉전화를 하고, 시장조사와 콘셉트 회의를 하고, 일러스트 등 그림작가 섭외하고, 사진작가도 섭외하거나 심지어 직접 찍고, 원고가 완성되면 교정 보고, 디자이너에게 디자인 발주하고, 마케터와 마케팅 회의하고, 사은품 제작하고, 제목과 카피를 뽑고, 견적을 내서 인쇄소와 제작소에 의뢰하고, 지업사에 종이 발주하고, 컬러가 잘 나왔는지 인쇄소에 가서 감리도 보고, 외주자들 인건비도 제때 정산해서 줘야 한다.  


책이 나와도 쉬지 못한다. 보도자료 쓰고, 출간기념 이벤트 진행하고, 언론사와 방송국에 홍보용 책도 보낸다. 기획팀, 편집팀. 제작팀, 홍보팀이 있는 규모 있는 출판사라면 모르겠지만 작은 출판사에 다니는 편집자는 이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근데 큰 출판사 다니는 지인들 봐도 그닥 나은 상황은 아니었음)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과정, 그 세밀한 틈새마다 존재하는 편집자라는 존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가며 치열하게 책을 만들던 어느 날 저자는 래퍼 빈첸의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를 들으며 ‘책갈피의 기분’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고 한다. 이 책 저 책 사이에서 치이고, 결국 너덜너덜 납작해져 버린 바로 그 날. 


그래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기왕 책갈피로 살아야 한다면 가급적 납작해지는 것이 좋겠지. 편집자의 삶이란 어차피 책 안에 담겨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하루 하루 과부하에 시달리는 12구 멀티탭에 빨대를 꼽는 사람들도 재미있다. 최고의 진상은 작가들인데 달라는 원고는 안 주고 외국으로 튀거나 추석 연휴 다음 주까지 책을 만들어달라거나 다 된 디자인을 몇 번이고 뒤집는다. 처음 책을 내는 초보 저자도 그렇게나 갑질을 할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아마 몰라서 더 용감할 수 있는 거겠지. 


문맥을 꼬투리 삼아 파본이라며 문화상품권을 요구하는 독자, 출판사마다 파본이 왔다고 전화해서 받은 책을 중고나라로 팔아넘기는 어르신 등 출판 월드의 또다른 갑님들 행태도 웃기다. 저자가 소제목들을 매력적으로 바꿔서 ‘차례의 여왕’이라고 불린다는 대목을 보니 앞으로는 목차에 속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도 들고. 출판계의 소소한 속사정을 알게 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88만원도 아니고 꼴랑 80만원 주는 첫 직장에서 10개월 만에 뛰쳐나왔으나 태생적으로 책을 사랑하는 저자는 어느덧 경력 8년차, 편집장 반열까지 올랐다. 너무 책을 열심히 만들다 보니 여가시간에는 책을 거들떠보기도 싫은 ‘책이 싫어증’, 출판이 다 거기서 거기지 하는 마음이 들고 책 만드는 일이 지루해지는 ‘책태기’를 겪기도 하지만 반응 좋다는 주변 평에 은근슬쩍 사표를 접는 어쩔 수 없는 책바보.   


그가 만난 또 한 번 전환점의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국문과를 선택할 만큼 글 쓰는 일을 사랑했으나 문예창작과 수업을 들으면서 스토리텔링이나 문학적 감각은 제로에 가깝다고 자체 판단한 뒤 곁눈질 하지 않고 일해왔으나 자기만의 글, 책을 향한 갈증은 늘 있었나보다. 나의 꿈을 이루는 대신 다른 이의 꿈을 위해 한없이 소비되어 닳아 없어지는 중은 아닐까 자각했다고 한다. 마침 계기가 되었던 건 괜찮은 저자 찾으러 업무 겸 참석했던 독립출판 모임. 다른 사람들이 털어놓는 ‘내 책’에 대한 포부를 듣다가 글을 쓰고 싶었던 예전의 마음을 되살리게 되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집중해서 글을 쓰던 날. 저자는 말한다.

“공중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나만의 생각과 느낌을 정성껏 고른 언어로 만드는 작업. 이것이야말로 나를 정성껏 가꾸고 돌보는 시간,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책을 내고 초판 1쇄를 소진한 뒤 그가 만난 수많은 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출판사의 제의를 받아 정식 출판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엿한 ‘출간작가’지만 책 만드는 일이 좋아 게속 업계에 머물 예정이라 실명 대신 같이 사는 고양이 이름을 따 김먼지란 필명을 쓴다. 


최근 어떤 일간지에 백화점이나 쇼핑몰마다 앞다투어 대형 서점을 유치하거나 아예 서점을 자체적으로 만든다는 기사가 실렸다. 매장 안에 카페를 들이고 생활소품 매장까지 같이 운영하면 ‘집객 효과’가 크다고 한다. 그밖에도 이런 저런 좋은 점을 나열했는데 정작 책이 잘 팔린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기사 안에 코멘트를 제공한 한 교수는 "서점은 사람들에게 온라인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문화적 만족감'을 준다"고 하던데 문제는 만족감만 느끼고 책은 그냥 두고 간다는 데 있겠지. 몇 권씩 가져와서 함부로 보다가 그냥 테이블에 쌓아두고. 그래도 아마 저자 같은 출판사 사람들은 “그래도 서점이 많아지면 좋겠죠.”라고 말할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난 테이블야자가 다시 살아나서 기쁘고, 오타는 결국 찾아내지 못해서 아쉽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책을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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