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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즈 uze Jan 15. 2020

'나이 오십'을 쳐 보는 그들  

어딘가 조용히 계시는 나의 동년배들에게 

그간 자격증 과정 마무리도 하고, 소소하게 아픈 몸 이곳 저곳 손보고, 가족 중 한 사람이 입원하고 등등 일이 많아서(물론 딱히 돈 되는 일은 없었음) 브런치가 몇 달 동안 개점 휴업 상태였다. 그게 괴로워서 휴대폰 화면에 떠있는 브런치 앱에 감히 손가락도 갖다대지 못하고 빙빙 맴돌았다. 그래도 궁금은 해서 가끔 들어와 '통계'만 확인해 보았다. 존재감 미미한 브런치답게 하루 조회수는 평균 10회를 맴돌았는데 문득 진입 키워드가 눈길을 끌었다. 다들 마음의 감기로 고생해선지 '우울증' '조현병' '공황' 등의 키워드가 내가 쓴 책 리뷰들과 연결되었고 경제 상황, 퇴사, 백수 등도 등장했다. 그러나 단연 눈에 띄는 단어는 '나이 오십'이었다. 


이 단어가 내 브런치 통계에 왜 심심찮게 나타나는 걸까. 그냥 마음에 짚히는 대로 짐작해보면 주로 밀레니얼 세대들의 퇴사, 육아, 진로, 사랑 관련 이슈들이 주류를 이루는 브런치를 방랑하던 그 누군가가 '나 비슷한 또래는 없나' 궁금하면서도 '설마 민증 깐 인간은 없겠지'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키보드를 눌렀는데... 대놓고 '오십대 취준생'이라고 내세운 미친 인간이 진짜 있더라는, 뭐 그런 거 아닐까. 


내 주위에는 홍길동처럼 자기 나이를 자기 나이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뭐 나이를 철저히 숨긴다기 보다는 공개적으로 드러낼 일은 최소화한다는 뜻. 브런치에 글을 쓰는 사람들 중에는 마케터, 작가, 에디터, 기획자, 그래픽 디자이너, 기획자, 일러스트레이터, 활동가 등이 많은데 내 지인들의 직업 역시 그러하다. 이중 동료나 선배들은 나이가 있으니 직접 현장에서 뛰는 실무자급은 아니지만 직업의 특성상 대중을 상대하기에 다들 나이 스트레스가 꽤 심하다. 


어떤 시대나 중심이 되는 세대가 있다. 지금은 밀레니얼의 시대이고 아마 향후 길어야 5년 안에 다른 세대가 그들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70년생 김구라가 연말 시상식에서 '양각만 남기고 물갈이'론을 펼치며 자폭하고, 전원 3~40년대 생인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하비 카이텔이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아 젊은 시절 장면까지 열연한 <아이리시맨>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한 지인은 얼굴은 어찌어찌 젊게 만들었으나 둔한 몸짓이 딱 세월의 무게를 보여주더라는 날카로운 지적을 내놓기도) 최근에는 2000년대 후반 네이버 웹툰의 황금기를 일궜던 한 웹툰 작가가 선보인 최신작을 우연히 보았는데 댓글에는 컴백을 반기는 옛 팬들의 안부인사와 함께 세대 차이나 떨어진 감각을 논하는 뾰족한 코멘트도 고루 섞여 있었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온갖 형태의 콘텐츠를 개인별로 맞춤 소비하는 시대지만 그래도 '대세'는 있는 법. 더이상 동시대인이 아니라 그들의 성취를 지원하고 지켜봐야 하는 주변인이라는 자의식이 한때는 트렌드세터였던 그들을 위축되게 만든다. (요새 정관장 CF 참고) 글을 쓰느니 영상을 만들고, 책보다는 유튜브를 보며 학습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시기섞인 찬탄 뒤에는 늘 '우리는 옛날 사람'이라는 한탄이 이어진다.  그래도 다들 다행히 눈치는 좀 빨라서 팀원들과 이야기할 때는 일단 알아먹은 척 하고 있다가 나중에 몰래 검색해 보곤 하는 이 시대의 부장님, 실장님, 본부장님들... 


더이상 'contemporary'가 아니라 해도 하던 일을 싹 접어버릴 필요는 없다. 모르는 건 배워가며 해도 된다. 다만 몰라도 아는 척, 공감이 안 가도 찬성하는 척, 그렇게 속마음을 감추고 연기하는 사람들은 최악이다. 청소년, 청년, 고용중단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요즘 이슈의 흐름이 그쪽인 것 같으니 잽싸게 옆에 붙긴 했으나 안 보이는 곳에서 '요즘 것들'의 패기 없음, 해이한 정신상태, 노력 부족, 뻔뻔한 숟가락 얹기라며 험담을 해대는 행태가 대표적인 케이스. 그렇게 젊은 대세를 추켜세우면서 시간을 벌고 싶겠지만, 수십 년 박혀 견고해진 사고방식은 숨길 수 없는 거라서 어느 순간 스쳐가듯 뱉은 말 한 마디, 무심코 뻗은 몸짓 하나에서 위선이 드러난다.  

 

나이를 밝히고, 안 밝히고가 중요한 건 아니고, 그냥 스스로 느끼는 대로, 하고 싶어 손이 가는 것들을 해나가는 게 답인 것 같다. 아직은 이 드넓은 콘텐츠 강호에서 전체 대중을 상대로 승부를 걸고 싶다는 분들은 또 갈 길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제 단어 하나 쓸 때도 옛날 느낌 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다. 요새 유행이라는 아이템이나 신기술도 지금 당장 익혀야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조바심 없이 대하니 오히려 흥미롭다. 미래 트렌드도 내 세대만이 아니라 부모, 조카, 청년인 지인 등 여러 세대들과 다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확장되는 것. 그것이야 말로 동시대 정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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