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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Sep 20. 2020

한 침대 위에 두 개의 이불

  우리 안방 침대에는 이불이 두 개가 놓여있다. 하나는 내가 덮고 자는 이불이고, 하나는 신랑이 덮고 자는 이불이다. 우리 부부가 이불을 따로 쓰는 이유는 이불 덮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랑은 발을 이불 밖에 둔 채 얼굴까지 끌어올려서 덮는 반면 나는 발을 이불속에 두고 얼굴은 이불밖에 둔 채 잠을 잔다. 결혼 후 1년 동안 한 이불을 덮었는데, 그동안 이불을 위로 끌어올리려는 신랑과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나의 잠결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아침마다 서로를 탓하며 잠을 못 잤다고 말하다가 결국 이불을 따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 후 우리는 방해받지 않고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되었고, 아침에 더 활기찬 얼굴로 서로를 마주했다.


  각자의 침대에서 잠을 자던 신랑과 내가 결혼 후 같은 침대에서 자면서 마찰이 발생했다.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부터 빨래망 사용 여부까지 공동 영역이 된 부분에서 의견 차이가 생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부부는 의견을 좁혀왔다. 5년간의 조율 끝에 마찰은 거의 없어지고,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평화와 함께 아기도 찾아왔다.



  아기가 생긴 후 나와 신랑 사이의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우리 부부는 전보다 티격태격하는 일이 늘었다. 임신 전에 자리 잡은 평화가 이후에도 이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이전과 같지 않았다.


  아기가 6개월이 넘은 어느 , 우리 부부는 아기와 함께 아웃렛을 방문했다. 신랑은 지하 주차장에서 양옆으로 차가 없는 주차 영역에 차를 세웠다. 신랑이 운전석에서 내려 유모차를 꺼내는 동안 나는 카시트에서 아기를 꺼내 뒷좌석을 나왔다. 아기를 안고 서서 신랑이 유모차를 펼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  뒤편그려진 주차라인 바깥 영역으로  세대의 차량이 지나갔다. 움직이는 차가 주차라인에 바짝 붙어 지나가는  아니었지만, 아기를 안고 있는 내게는 그저 위험한 곳으로 보였다. 주차라인과 맞닿은 곳에서 유모차를 펼치는 신랑의 모습을 나는 불안하게 바라봤다. 유모차를  펼친 신랑이 아기를 유모차에 앉히려고 했다.  순간 나는 아기를 앉고 몸을 돌렸다. 이어서  여기서 해야 하냐고 짜증을 냈다. 결국 신랑도 화가 났다. 신랑은 안전 공간을 충분히 확보했는데, 짜증 내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자신이 펼친 유모차를 끌고 아웃렛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나는 신랑을 쫓으며 몇 주전의 일을 떠올렸다. 서울대공원으로 아기와 산책을 나갔던 날이다. 아기 식사를 위해 들어갔던 수유실에서 나는 땅에 떨어트렸던 공갈젖꼭지를 아기에게 물렸다. 이유식을 데우러 가던 신랑은 그 광경을 보고 놀라서 화를 냈다. 그날 일에서 신랑과 나는 정 반대 입장이었다.


  생각해보면 아기에 관한 일은 다툼의 소지가 많았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아내와 남편으로서 합을  맞춰왔는데 유독 아기 문제에서 삐걱거리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우리는 아기를 안는 방식, 젖병 소독방식, 아기  빨래  크고 작은 마찰을 이어왔다. 마찰 속에서 신랑과 내가 했던 주장을 떠올려보면, 모두 아기를 위한다는 내용이었다. 분명 아웃렛 주차장에서 아기의 안전을 걱정하던 나도, 서울대공원에서 아기의 위생을 걱정하던 신랑도 모두 아기를 위하고 있었다. 신랑도 나도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혼  공동 영역에서 많은 마찰을 겪었는데, 새로 생긴 ‘아기라는 공동 영역에서 마찰이 생기는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아기의 신생아 시절에 자주 문제가 되었던 아기 안는 방식, 젖병 소독방식은 6개월 아기를 키우는 우리 부부에게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는 서로의 방식을 믿고 맡기고 있다. 아직 많이 투닥거리지만, 6개월  아빠와 엄마로서 합을 제법 맞춰온  같다. 우리 부부도 6개월간 부모로 성장해  모양이다.


  아빠로 성장하느라 잔뜩 힘이 들어간 신랑의 뒷목이 눈에 들어왔다. 아웃렛 엘리베이터 앞에 선 신랑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나는 그저 걱정이 되었을 뿐이라고 말하며 내 마음을 전했다. 신랑은 내 손을 잡고, 자신도 나만큼 아기를 걱정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날 신랑과 나는 손을 잡고 유모차를 끌며 맑은 하늘 아래를 걸었다.



  둘이서 가족이 되려고 투닥거리던 시간이 지나가고 셋이서 가족이 되기 위해 투닥거리는 시간이 찾아왔다.  일 때보다 새로 적응하고 새로 맞춰나갈 부분이  많아졌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이번에도 서로 존중하며 조율해 나갈 거라고 믿는다. 우리 안방 침대 위에 이불  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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