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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하트 Nov 01. 2023

악성 민원에 대처하는 나의 미숙함

나는 보건소 민원실에서 일하고 있다. 뜨문뜨문 악성 민원이 있지만 그래도 좋으신 분들이 더~ 많아서 근무하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다. 있다 하더라도 그 민원인이 가고 나면 동료들끼리 서로 토닥여주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오늘 오전에는 평소 목소리에 애교 가득하고 상냥한 동료 방에서 목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지고 커지는 거 보니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도저히 안 됐는지 20대 동료분은 민원인이 도저히 말이 안 통하고 본인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내 옆에 계신 계장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진료실 안에서도 의사 선생님한테는 아무 말 못 하고 직원 분에게만 큰소리치는 일명 강약약강 스타일의 민원인이었다. 계장님께서 상황파악 하신 후 차분하게 상황을 마무리해주셨다. 어떻게 어르고 달래 민원인은 가시고, 얼굴이 뻘게진 동료분은 한참을 구석에서 열을 식혔다. 슬쩍 다가가니 눈물을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내가 살짝 빠져야 할 것 같아서 자리로 돌아오고 계장님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시고 의사 선생님께도 직접 찾아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계장님 덕분에 상황은 좋게 마무리되었다.



오후에는 나에게 일이 생겼다. 다짜고짜 나에게 오셔서 병원 갔는데 코로나 예방접종 약이 없어서 못 맞았다고 불만을 털어놓으셨다. 집 근처 병원 이름을 말씀해 주시면 백신현황을 알아봐 드리겠다고 했는데 동네를 말하면서 나보고 병원은 알아서 찾아보라고 하셨다. 저는 이쪽 지역 사람이 아니라 병원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니 병원 이름을 몇 개 불러달라고 요청했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여기 앉혀놨다고 불똥이 그리로 튀었다. 점심시간이라 전화받는 병원이 없는데 전화를 직접 해보라고 하기에 스피커폰으로 점심시간이라는 걸 들려드려도 그 불똥까지 나에게 튀었다. 처음엔 웃으며 응대를 하다가 점점 화가 올라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같이 목소리가 커졌다.


그 순간 점심시간이 끝나고 계장님이 자리로 돌아오시면서 멀리서부터 내 표정이 안 좋은 걸 보시고 상황을 정리해 주셨다. 계장님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아무것도 모르는 애 앉히지 말고 아는 애 앉히라는 말을 남기고 민원인은 돌아갔다. 후끈후끈 더워진 나는 옷을 벗고 마침 계장님이 사 오신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열을 식혔다.


민원인이 소리를 높인다고 나도 똑같이 높이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차분하게 응대했었으면 상황이 부드럽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내 기분도 안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그게 내가 맡은 업무이지 않을까. 같이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계장님, 저는 왜 계장님처럼 차분하게 응대가 안될까요"

"그게 하루아침에 되니~ 나도 잘 안돼!"

"계장님은 너무 부드럽게 잘 하시잖아요ㅠㅠ. 저는 버럭버럭 화가 올라와요"

"나도 그래~ 이러면서 단단해지는 거야"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나를 계장님이 달래주셨다. 인상, 말투, 마음 다 부드럽고 따뜻한 계장님 옆에서 오늘도 많이 배운다. 나도 나중에 저 나이가 되면 후배들에게 이런 선배가 될 수 있을까. 그러고 싶다. 힘들 때 나서서 도와주시고 마음도 달래주시고. 내 일 아니면 슬그머니 빠지는 사람들이 많은 조직 속에서(나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런 분이 계셔서 참 든든하고 힘이 된다.


하 오늘은 아무튼 민원으로 힘이 빠진 날이었다.

태백아 엄마가 오늘 화가 좀 나서 미안해!

엄마가 앞으론 좀 더 부드럽고 차분하게 응대하는 연습을 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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