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첫 영화
다시 주제로 돌아가자면, 내 인생에 첫 극장은 태양극장이었다.
한 울타리에 같이 살던, 아버지 친구 예비군 중대장네 막내 중학생 언니와 같이 가서 봤던 기억이 가장 최초의 극장이다.
70년대 후반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즈음, 나는 이 댁 식구들과 어머니 몰래 성당을 다녔다.
일요일에 미사가 끝나고 걸어오는 길에 극장이 있었다.
언니와 나는 우연히 영화 티켓을 구해서 봤던 기억이 난다.
제목이 뭐였는지 배우가 누구였는지 어렴풋한 기억뿐이다.
무슨 얄개 시대라고 했다. 당시 얄개 시대가 연재로 나왔던 것 같다.
아마도 티켓은 중대장 아저씨네 언니들 중에 누군가가 준 것 같다.
첫 기억은 언제나 가장 애틋하고 소중한 법이다.
내 인생의 첫 극장 기억은 이렇다.
아주 커다란 대형 스크린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실제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일 년에 한 번 오던 가설극단 배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동네에 가설극단이 올 계절이면, 할머니는 어린 나를 데리고 제일 먼저 관객이 되어 무대 제일 앞자리를 차지했다.
무대 위 배우들은 진하게 분장을 하고 눈썹도 아주 길었다.
두꺼운 막이 몇 번 내리고 올라가는 사이, 관객들은 울고 웃었다. 가설 무대라 관객들은 모두 그냥 맨땅에 앉아서 봤다.
그런데 극장이라고 하는 곳은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어린 내 첫 극장은, 떨림과 기대와 흥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입석이었다. 두 시간 내 까치발을 하고 어른들 틈에 끼여 서서 관람했다.
어두컴컴한 실내, 담배 연기가 자욱한 사이로 스크린에 사람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목이 따가웠다.
검정 교복 입은 중고등학생들 사이로 피비린내와 방귀 냄새가 났고 아무리 목을 빼고 까치발을 해도 스크린이 보였다 안보였다 반복했다.
가득 찬 언니 오빠들 바짓가랭이와 치마 사이로 겨우 고개를 내밀고는 쳐다봤다.
다들 화면을 보면서 울고 웃고 한다.
어린 나는 도무지 스크린 속 사람들이 가짜 같기만 하다.
가설극장 원술랑 이야기보다 재미도 없다.
어두운 극장 가득 들어찬 교복 입은 언니 오빠들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분장도 없이 속 눈썹도 길지 않게 그대로 화면 속에 몇 명 나와서는, 태어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부드러운 말씨로 서로 주고받으면 떠들어대기만 한다.
그런데 뭐가 그리 재미난 건지.
들어보지 못한 말투라 부러운 건지 아니면 화면에 나오는 멋진 이층 양옥집이 부러운 것인지.
어린 내 머릿속에는 온통 어지러운 생각들 뿐이었다.
내 인생 두 번째 영화는 ‘말띠 며느리’라는 영화였다.
시내 어디쯤에선가 봤던 기억이 난다.
극장 이름은 기억에 없다.
다만 나보다 두어 살 위면서 어른인 척하는 외사촌 언니를 따라 시내 장군동 친척 할머니 댁에 가서 하루를 잔 기억이 있다.
그집은 70년대 우리 집처럼 단층 슬레이트 지붕 집이었는데 우리보다 조금 더 나이 든 몸매가 길쭉하고 하얀 피부의 처녀 같은 언니와 머리카락이 온통 새하얀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기억 속에서 어렴풋하게나마 안채 다른 방들에 다른 가족들이 살았던 것 같다.
다만 우리는 그 밤에 마당을 끼고 따로 나 있는 할머니 방에서 잤다.
우리는 할머니 방에서 민화투 놀이를 하며 밤을 지샜다.
어린 시절 나는 언제나 겁이 많았고 낯선 세상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울어버리는 나약한 아이였다.
잘 놀다가 어두워지고 조용한 밤이 점점 가까이오자 갑자기 나는 무서워 울었다.
그시절 나는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이 닥치면, 일단 울고 봤다.
중년인 지금도 여전히 나는 정말 이 세상이 두렵고 무섭다. 아닌 척 애쓰며 살 뿐이다.
어둑어둑 해가 지면서부터 나는 집에 갈 거라며 때를 쓰기 시작했다.
외사촌 언니는 어김없이 짜증을 냈고 하얀 피부 결의 언니는 부드럽게 달래주며 실뜨기도 가르쳐주고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할머니도 누워서 우리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셨다.
내 기억으로, 어두운 창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진 새벽까지 우리는 그렇게 뜬 눈으로 보냈다.
해가 뜬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심하고 잠이 들었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니, 하얀 피부의 언니는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그 집안에서도 언니가 막내였는지, 오빠들이 줬다면서 성인 영화라고 했다.
외사촌 언니는 좋아서 난리였다. 그 집 위치가 시내여서 그런지 극장 가는 길은 걸어서도 얼마 멀지 않았다.
몽고정을 지나 삼촌이 운영하던 교복사를 지났던 것 같다.
그런데도 교복사에 들리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일탈 때문이었다.
그때 내 나이 겨우 아홉 살이었다.
우리는 화장을 하고 거리로 나갔다.
언니들은 내게 붉은 립스틱을 입술에 발라주고 볼에도 연지를 붉게 칠했다.
꼭 내가 제일 무서워하던 거리 의상실 마네킹 같았다.
하얀 피부의 언니는, 화장을 해야 영화관에 들여보내 준다고 말했다.
외사촌 언니는 어른처럼 붉은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눈두덩이에도 시퍼렇게 멍든 것처럼 뭔가를 발랐다.
이상한 쇼올도 걸치고 백도 하나 빌려 들었다.
언니들은 내 입술에 립 스틱을 몇 번이나 겹쳐 발랐다.
찐득거리는 느낌이 마치 지렁이가 내 입술 위로 기어가는 것 같았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입술을 쑥 내밀고 있으려니, 외사촌언니가 그러면 안 데려간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할머니는 요란을 떠는 우리 세 아이들을 쳐다보면서 앞니 빠진 입으로 허렁허렁 마냥 웃기만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길을 나서서 영화관으로 갔다.
기억으로는, 김보연이라는 보이시한 여배우가 주연인 영화였는데, 말띠 여자가 어느 이층 양옥 부잣집 며느리로 왈가닥 행세를 하는 내용이었다. 어린 내 눈에, 시크하고 멋진 그 여배우의 스타일이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내 생애 첫 영화였다.
사진자료출처
https://hub.zum.com/artinsight/%EC%A7%80%EA%B8%88-%EB%8C%80%ED%95%9C%EA%B7%B9%EC%9E%A5-28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