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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09. 2024

어둠을 밝히는 소녀1

  숨 쉬기가 힘들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버스 안 공기는 더 이상 들이마실 산소 절대 부족이다. 창밖은 깜깜한 어둠이고 창안은 콩나물시루처럼 가득 차서 꼼짝달싹 할 수가 없다. 졸음이 쏟아졌다. 버스 안내양은 뒷문에 붙어 서서 아까부터 졸고 있었다. 버스 안에 가득 찬 야간 학생들도 손잡이를 겨우 붙들고 서서 절반은 졸고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아 매달리면서 다른 손으로 영어 사전을 들고서 외고 있었다. 늦은 밤 버스 안은 언제나처럼 고요했다. 


  그때,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졸고 서 있던 학생들이 무더기로 앞으로 막 쏟아지면서 넘어질 듯 아찔했다. 짧은 비명소리들. 나도 겨우 몸을 추스르며 버티고 서 있었다. 뒷문이 열리면서 급하게 사내 둘이 뛰어 들어온다. 졸던 버스 안내양이 언제 깼는지 어둠 속을 잠시 훑어보더니 급하게 문을 닫았다.      


  “오-라이!”     


  버스가 다시 움직였다. 어두운 창 밖에 뭔가 검은 그림자들이 꿈틀거렸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뭔가 토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버스 안에 들어온 사내들은 벌써 교복 입은 학생들 틈에 섞여 숨어버렸다.      


  어디쯤일까. 자동차 불빛이 번쩍이는 걸 보니 마산 수출자유지역 앞인가 보았다. 고단한 몸에 갑자기 긴장이 풀렸다. 낮에는 여기서 일하고 저녁에 창원군에 있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닌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고등학교 졸업장도 받기가 어렵다. 아직도 시골집에 있었으면 지금쯤 아마 언니처럼 시집가서 애가 두셋 되었을 거고 아니면 골방에서 새끼나 꼬고 있었을 거다. 다행히 마산 고모 댁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이런 생각들을 꼬리 물고 있는데 버스가 다시 정차했다. 자동차 불빛들이 눈부시게 발광했다. 나는 교복 소맷자락을 빼서 창에 낀 성에를 닦아냈다. 전경들이다. 무섭다. 이 늦은 밤에 전경들이 수출자유지역 입구에 진을 치고 깔려 있다. 검열이다. 버스 앞문이 열리고 얼굴에 보호막을 쓴 전경 두 명이 올라탔다. 발 디딜 틈이 없다.      


  “대학생들 안 탔나?”     


  버스 안은 온통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학생들은 서로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이 시간에는 야간 고등학생들 뿐이라요!”     


  버스 기사가 쉰 목소리로 가래 뱉듯이 내뱉었다. 전경들은 고개만 쭉 빼서 두리번거리더니 내린다. 버스는 다시 움직였다. 까만 교복 입은 학생들 사이에 숨어 있던 사내 둘이 그제야 고개를 들고 섰다. 키가 컸다. 버스 기사 쪽을 보면서 고개를 숙이면서 눈인사를 했다.     


  “고등학생들이 교복도 안 입고 잘- 한다!”     


  하면서 피식 웃는 버스 기사. 다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두 사내. 버스 안내양도 자꾸만 그 사내 둘을 흘금흘금 쳐다보면서 배시시 웃는다. 그중에 키가 더 큰 사내가 뒤를 돌아보는데 순간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나는 고개를 들어 곁눈질로 살짝 다시 보았다. 그런데 아직도 나를 쳐다보고 있다. 놀라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 덥다. 온몸에 열이 확 달라 올랐다.     


  “희덕아! 니 오데 아프나? 얼굴이 벌-겋다!”     


  재순이가 눈치도 없이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이런 상황이면 집까지 고개도 들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막 부끄럽고 겁도 나고 무섭고, 가슴까지 콩닥거린다. 왜일까. 그래도 부럽다. 대학생들 같은데. 아마 시내 끝에 있는 대학교 학생들일 거다. 데모꾼들인가. 좋은 부모 만나서 대학까지 다니면서 데모는 무슨. 우리 같은 공순이들이야 당장에 밥줄 끊기지 않으려고 한다지만, 대학생들이 하는 데모는 이해가 안 된다. 부모가 주는 학비 받아서 따뜻한 밥 먹고 공부하다가 졸업하면 좋은 취직자리가 널렸는데 왜 저러는지 도무지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된다. 오늘도 낮에 작업반장이 다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수출자유지역 안에 있는 공장에서는 노조도 안 되고 파업도 안 된다고. 자유무역지역 안에 있는 일본인 사장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노조에 가입하는 순간 사표 쓰라고. 그런데 학교 선생님들 말은 달랐다. 경제는 발전했는데 정치는 구한말이라고. 그것도 다 배부른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 열여덟 살 밖에 안 된 내 인생은 벌써 온 집안 가장 노릇을 한 지 오래다. 손가락 마디마디 대나무 마디처럼 갈수록 굵어지는 아버지 손, 귀머거리 어머니, 야밤에 보쌈당해 열여섯에 시집간 언니와 절름발이 형부, 아래로 다섯 명 동생들. 이게 내 현실이다. 그나마 고모가 마산에 살고 계시니 이렇게 일하면서 학교라도 다니는 거다. 시골 마을에 다른 또래 계집애들은 절반 이상이 벌써 시집을 가거나 부산이나 서울에 취직한다고 올라갔다. 그러다가 잘못 풀린 애들은 술집으로 흘러 들어갔다. 희자와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마산은 서울이나 부산만큼은 아니어도 알차게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 이번 달까지 지금 다니는 공장에서 일하고 다음 달부터는 친구 말숙이가 일하는 공장으로 옮길 거다. 적금 부은 거랑 퇴직금이랑 모아서 시골에 보내서 암소를 한 마리 사 드릴 거다. 할아버지가 탕해 남의 손에 넘어간 그 많던 논밭을 쳐다보며 매일 아버지는 한숨을 내쉰다. 오늘도 남의 땅이 된 논두렁을 지나 남의 논 경작하러 나가셨을 거다. 우리 논이라야 손바닥 만 한 것뿐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한 번도 할아버지 원망을 한 적이 없다. 고모는 한 번씩 나를 앉혀놓고 하소연을 늘어놓을 때가 있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부자였는지, 얼마나 재주가 많았는지, 또 얼마나 방탕했는지도. 덕분에 우리 아버지만 늘 고생이라고. 남의 집 논은 경작 해도 남의 집 소라도 더 이상 빌리지 않게 우리 소를 꼭 사 드릴 거다.     


  “공동탁주 양조장, 나온나!”     


  재순이가 인사를 하며 내렸다. 이제 학생들이 제법 많이 내렸다. 다시 버스가 출발했다.   

   

  “남향 탕 나온나! 그다음은 교도소 입구다!”     


  버스 안내양이 찢어지는 소리로 외쳤다. 나는 안내양이 서 있는 문 옆으로 갔다. 그런데 아까 그 키 큰 대학생이 내 뒤에 따라 섰다. 여기 내리나? 어디 살지? 갑자기 겁도 나고 호기심도 발동했다. 정류장에서 내려 바로 골목만 들어가면 두 번째 대문집이 우리 고모 집이다. 첫 번째 검은 대문 집, 그다음 초록 대문 집. 나는 벌써부터 뛸 자세를 취했다. 버스 문이 열렸다. 나는 얼른 내려 뛰려고 했다. 그때였다.     


  “여기 사니?”     


  돌아보니까 그 대학생이었다. 맑게 이를 드러내며 웃고 서 있다. 정류장 가로등에 오뚝한 콧날이 더 오뚝해 보였다.     


  “아, 예!”

  “골목 안?”

  “예, 초록 …….”

  “아! 김 소장님 댁?”

  “예!”

  “난, 여기다!”     


  그는 골목 입구‘포항 집’간판을 가리켰다. 아! 고모가 말한 그 대학생. 고모 말에 의하면 포항 댁이 복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배다른 아들이 둘인데 큰 아들이 얼굴도 잘나고 머리도 보통이 아니라고 했다. 도시 끝에 있는 대학교 법대생인데 장학금 받고 다닌다고. 그 사람이 이 사람인가 보았다. 잘 생긴 정도가 아니라 완전 텔레비전에 나오는 탤런트 같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여 대충 인사하고는 골목 안으로 내달렸다. 교복 치마가 바람에 펄럭거렸다. 한 손에 책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정신없이 뛰었다. 초록 대문 집. 휴- 그제야 숨을 고르고 섰다. 골목 안은 캄캄했다. 초록 대문 집 옆으로 길게 난 골목들 사이에 집이 몇 채 더 있었다. 더 지나면 빨래터고 더 지나면 밭이다.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했다. 바람이 불고 맞은편 무당집 대문 옆에 꽂힌 대나무가 스스스- 바람에 소리를 냈다. 아. 뒷목이 뻣뻣했다.     


  “고모, 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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