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노 May 09. 2024

서영이 삼촌들

서영이 삼촌들

  “으아아앙 … 으앙 … 으앙!!!!!”     


  나는 또 길바닥에서 미친 듯이 울어버렸다. 


  술이 삼촌은 못 들은 척 계속 걸어가 버린다. 나는 더 큰 소리로 막 울어댔다.

  그때 갑자기 구야 삼촌이 나를 덥석 안아주었다.     


  “서영이 와 울리노?”

  “고집 센 가쓰나는 쓸모없는 기라!”     


  심술보. 욕심쟁이. 욕쟁이. 나도 화가 나서 막 씩씩거렸다.     


  “술이 삼촌은 심술보, 똥쟁이, 오줌보다!”     


  갑자기 술이 삼촌이 무서운 눈으로 돌아서서 나를 노려보았다.     


  “이 가쓰나가, 참말로!” 

  “어른이 쪼매난 아하고 싸우는 기가?”

  “큰 행님이 너무 오냐오냐 키우니까 가쓰나가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른다 아이가?”

  “그거를 와 행님이 가르칠라 카노? 어?”     


  구야 삼촌은 역시 잘생기고 말도 잘하고 너무너무 멋지다. 술이 삼촌은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서서 할머니 집으로 가 버렸다.      


  “서영이. 괜찮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쓱쓱 닦았다.     


  “씩씩하네! 술이 삼촌 마산 시내서 이길 사람이 없는데, 와! 우리 서영이가 마 이기삤다!”     


  괜히 신이 나서 구야 삼촌 어깨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할머니 집으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른 언덕이었다. 구야 삼촌은 그 높은 데를 나를 무등 태우고 가뿐하게 올라갔다.      


  할머니 집은 추산동이라고 어른들이 말했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전쟁이 끝나고 할머니와 삼촌들이 모두 시골집에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아버지가 그때는 지금보다 더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삼촌들도 시골보다는 도시에 일자리가 더 많다고 했다. 


  나는 삼촌이 다섯 명이다. 


  할머니 집은 굴 딱지처럼 닥지닥지 붙은 판자촌 사이에 제법 마당도 있고 방도 많은 집이다. 처음 마산에 왔을 때는 이 집에서 아버지 형제 여섯 명이 다 살았는데, 지금은 결혼도 하고 다 흩어졌다. 지금은 할머니랑 현이 삼촌만 같이 살고 있다.      


  우리 가족은 석전동에 살고, 큰삼촌인 영래 삼촌네는 바로 아래 MBC방송국 뒤에 산다. 영래 삼촌네는 어시장 뒤 대한통운에 다닌다는데 엄마 말로는 제일 돈이 많다고 그랬다. 아버지가 결혼이 늦어 영래 삼촌네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촌 언니와 오빠가 있다. 술이 삼촌은 예쁜 숙모와 시내 창동 근처에 산다. 영래 삼촌네보다 훨씬 나이 많은 언니 둘과 얼마 전에 태어난 남자아기와 산다. 그리고 현이 삼촌은 할머니와 같이 산다. 몸이 약하고 불편해서 그냥 죽- 할머니와 산다.      


  술이 삼촌네 아기가 태어나서 오늘 가족이 다 모이는 거다. 

  철이 삼촌은 추산동 할머니집 아래 교복거리에서 교복사를 한다. 재단사라고 어른들이 그랬다. 아버지 양복이며 우리 동생들 양복이며 외출복까지 삼촌이 몇 벌씩 맞춰 보내주었다. 그런데 여자 양장은 재단이 안 되나 보다. 엄마 옷이랑 내 옷은 한 번도 맞춰준 적이 없는 걸 보면. 어른들 귀동냥으로 들은 말로는 진짜 알짜 부자는 이 삼촌이란다.      


  구야 삼촌이 막내삼촌이다. 잘 생기고 멋지고! 우리 구야 삼촌은 세상에서 제일 멋지다. 가수나 연예인 될라고 하다가 아버지께 혼 줄이 나고는 지금은 여러 가지로 직장을 구하는 중이란다. 할머니 집에 같이 살고 있다.     


  “우리 서영이 왔나?”

  “할머니!”     


  나는 구야 삼촌 무등에서 얼른 뛰어내려 할머니에게 달려가 허리춤에 푹 안겼다. 할머니에게는 참 여러 가지 냄새가 난다. 생선비린내, 담배냄새, 술 냄새, 반찬냄새, 흙냄새까지. 술이 삼촌은 심술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을 하고 문간방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퇴근하고 오신대요!”

  “우리 이쁜 서영이!”     


  할머니는 고목껍질처럼 까끌까끌한 손바닥으로 내 뺨을 비비셨다. 조금 따가워도 따뜻해서 좋았다. 

     

  “맹랑한 계집애가, 뭐가 그래 이쁘요?”     


  문간방 문을 벌컥 열면서 술이 삼촌이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지랄한다! 나는 버럭 대는 아들놈들보다 이리 보들보들한 우리 손녀가 좋더라!”     


  할머니가 마루에 앉아 나를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는 몸배 바지를 벌럭 내리더니 안주머니에서 사탕 두 개를 꺼내 내 입에 쏙 넣어주었다.     


  “너 형님이 늦장가를 가서 내 속이 얼매나 탔는 줄 아나? 마흔 줄에 이리 이쁜 딸하고 아들 둘이나 낳을 줄 우째 알았겠노?”

  “피. 학교 선생도 세무서도 다 때려 치고, 꼴랑 양조장 소장이나 하는데 무슨!”

  “이놈이!”     


  갑자기 할머니 얼굴이 벌게지면서 술이 삼촌에게 화를 냈다. 구야 삼촌도 얼굴이 벌게졌다.     


  “행님! 그게 할 소리요? 다 형님들 사고 뒤치다꺼리 한다고 그런 거 아니요?”

  “욕심이 없어서 그래. 큰 행님은 욕심이 너무 없어!” 

  “들어가 잠이나 쳐 자거라! 실없는 소리 고만하고!”

  “서영이 저 계집애는 누굴 닮아 저리 욕심도 많고 악악대는지 ….”     


  나는 술이 삼촌을 향해 혀를 쏙 내밀며 메롱- 했다.      


  “저, 저! 버릇없는 가쓰나!”

  “서영이, 잘 - 했다!”     


  할머니가 웃어주었다. 술이 삼촌은 완전 심통이 났는지 문을 탁-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서영아! 삼촌 방에 가자!”     


  나는 구야 삼촌 방에 들어갔다. 벽면이 온통 책이었다. 한쪽 벽면에는 가수 사진들과 영화 포스터가 도배지처럼 빼곡하게 붙어있다. 삼촌은 내게 나무인형 장난감을 꺼내 주더니 기타를 꺼내 한쪽에 기대서 노래를 불렀다. 태어나서 내가 본 사람 중에 우리 막내 삼촌은 제일 멋지다.     


  “삼촌, 영화배우 같다!”     


  구야 삼촌은 한쪽 입을 살짝 올리며 그윽하게 미소를 지었다.      


  “난 크면 삼촌하고 결혼할 거다!”

  “허허, 요 녀석!”     


  삼촌은 이불장에 숨겨둔 미제 초콜릿을 한 통 꺼냈다.      


  “혼자 먹어라! 쉿!”     


  고개를 끄덕이며 비장한 얼굴로 양쪽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나는 정말로 구야 삼촌이 제일 좋다.    

 

  “서영아!”

  “아빠다!”      


  나는 문을 벌컥 열고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아버지는 양손에 애기 옷이랑 양과자랑 음식들을 가득 들고 작은 나무대문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러자 할머니부터 삼촌들까지 모두 다 마당으로 나왔다. 부엌에 있던 엄마랑 숙모들도 모두모두 나왔다. 우리 아버지가 제일 대장인가 보다. 구야 삼촌이 아버지 손에 든 것들을 얼른 받아 들었다. 아버지는 나를 덥석 안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는 술이 삼촌이 낳은 작은 사내아이가 누워있었다. 윗방에서 놀던 우리 동생들도 어머니 치맛자락 잡고 졸졸 따라왔다. 숙모들은 마루에 길게 상을 차렸다. 할머니가 어시장에서 떠 온 싱싱한 회랑 나물들, 전이랑 잡채, 아버지가 사 오신 편육도 있었다. 할머니가 부엌에서 떡시루를 들고 와서 마루에 턱 올려놓았다. 떡시루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진짜 맛나 보였다.


  영래 삼촌네 민욱이 오빠랑 주현이 언니가 떡시루에 손을 대니까 할머니가 탁- 손등을 쳤다. 할머니는 우리 아버지가 대장이니까, 그래도 나랑 내 동생들이 젤 이쁜가 보다. 민욱이 오빠랑 주현이 언니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기분이 참 좋다.      


  “다 모있는 갑네!”     


  철이 삼촌이 한 손에 커다란 물건을 하나 들고 대문을 열면서 들어왔다. 숙모도 뒤따라 들어왔다. 다른 숙모들은 다 먼저 와 있었는데 맨 날 철이 삼촌네 숙모만 꼴찌다.     


  “가게 일이 바빴제!”

  “아이구, 성님! 하루 종일 가위질 한다꼬, 손 아구가 아파서 손을 몬 피겠어예!

  “너거 성들은 아픈 데가 오데 없다더나? 엎어지모 코 닿을 데서, 쯔쯔쯧!”     


  할머니가 싫은 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숙모들도 아무 말을 못 했다. 우리 할머니는 최고다.      


  “와! 셋째 행님 아들 낳았다고 상다리가 휘청거리네! 이런 날에 술이 빠지모 되나!!”     


  철이 삼촌은 양주 한 병을 상자에서 꺼내서 상 위에 탁- 놓았다. 다들 와- 했다. 금색으로 반짝거리는 것이 멋진 유리병 안에 들어있었다. 이런 날에 꼭 해야 되는 건가 보았다.      


  “이거, 시바스--리가 맞제?”     


  구야 삼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리병을 막 살폈다.      


  “쳇, 딸라 장사 양 이모한테 샀제? 그거 가짜다, 가짜! 진짜배기가 얼마나 비싼데!”

  “행님은 속고만 살았나? 행님 아들내미 백일 축하주 산다꼬 양복 세 벌 값은 들었구마는!”

  “참말로, 진짜가?”     


  삼촌들이 그 유리병을 들고 떠들어대고 있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술이 삼촌 등을 푹 밀었다.     


  “비끼라! 동생이 귀한 술을 사 왔다는데, 뭐 그래 말이 많노? 가짜모 우떻고 진짜모 우때서?”

  “오메는, 맨날 내 보고만! 나도 인제 애 아빈데!”

  “쯔쯧, 그러니 철 좀 들라꼬!”     


  할머니는 떡시루를 상 한가운데 놓고 물 한 그릇을 앞에 놓고는 눈을 감으면서 진짜 정성스럽게 절을 하면서 빌었다. 모두 조용했다.     


  “삼신 할매요, 우리 영술이 자손 점지해 주신 삼신 할매요!!!”     


  할머니는 한참을 중얼중얼하시면서 떡에 대고 절을 몇 번이나 했다. 내가 태어나서도 할머니가 떡에 대고 저렇게 절을 했을까? 아니면 아들이 태어나면 저렇게 하시나? 할머니가 떡에 대고 몇 번이나 절을 하고 나서 떡시루에 김이 다 빠지고 나서 겨우 끝이 났다. 숙모들이 접시에 떡을 나눠 담았다. 엄마는 커다란 접시에 떡을 쌓아 올려서 우리 아이들을 다 데리고 윗방으로 갔다. 나랑 아이들은 모두 윗방에 따로 차려진 상에서 숙모들이랑 엄마랑 음식을 먹었다.      


  우리 아버지는 마루 기다란 상 한가운데 할머니 옆 자리에 앉았다. 우리 아버지가 최고 대장이 분명하다. 나는 보들보들한 생선 전을 한 손에 들고 맛나게 먹으면서 마루 쪽을 자꾸만 쳐다봤다. 철이 삼촌은 유리병뚜껑을 열더니 아버지에게 제일 먼저 두 손으로 컵에 따랐다. 다른 삼촌들에게도 다니면서 한 잔씩 따랐다. 할머니는 흐뭇하신지 웃고만 계셨다.      


  “자! 우리 영술이, 아들 백일 축하주다! 한 잔씩 쭉 마시자! 건배!!”

  “건배!”     


  아버지 육 형제는 모두 그것을 쭉 들이켜 마셨다. 보리차 같기도 하고. 나도 집에 가서 동생들이랑 한 번 꼭 해 봐야지! 건-배--.     


  “와! 이거 진짜 맛는 갑네! 짝짝 달라붙네!”

  “참 내! 속고만 살았나!”

  “그래, 우리 철이가 귀한 술을 가져 왔구나!”

  “큰 행님은 잘 나가던 시절에, 이런 거 방에 재 놓고 안 살았습니꺼?”     


  아버지는 그냥 웃었다. 저런 유리병을 우리 아버지가 재 놓고 살았다고? 그럼 완전 부자였겠다. 그런데 지금 우리 집은 그렇게 많이 부자는 아닌데. 뒷집 부자네 보다 더 부자도 아니다. 그냥 지금 우리 집에는 유리병보다 책이 더 많다. 방안 가득 책뿐이다.      


  “다, 니 때문 아이가?”     


  할머니가 아버지 앞에 앉은 구야 삼촌보고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러댔다.     


  “니가 월남서 사고만 안 칬어도, 큰 행님이 그 잘 나가던 세무서 때리 치나?”     


  세무서?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진짜로 돈을 많이 버는 데 같다.     


  “오데 그 뿐이가? 술이 니도 국수 공장 한다꼬, 행님 퇴직금 다 날리 묵었제?”

  “어머이, 좋은 자리에 또 와 그랍니꺼?”     


  아버지가 할머니를 말렸다.     


  “내가 니만 생각하모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죽으모 니 아부지한테 뭐라꼬 말해야 되노? 우리 군에서 젤로 공부 잘하고 마산상업핵교서 전교 1등 묶던 니를, 새벽마다 리어카에 실어서 기차역까지 델다 주던 양반인데! 논밭 다 팔아도 니는 꼭 대학 보낼끼라꼬!!!”


  “전쟁 터지고 막둥이 구야까지 벤 어머이랑 동생들, 때 꺼리도 없던 판에, 대학은 무슨 대학입니꺼? 어머이, 제 나이가 낼 모레 쉰 입니더! 인자 좀 그만 하이소!”

  “그래서 우리가 큰 행님한테 잘 한다 아인교?”

  “썩을 것들! 잘 하기는 무슨!”

  “허허허, 어머이! 철이하고 내는 행님 속 안 썩인다 아입니꺼!”     


  영래 삼촌이 할머니에게 두 손으로 술을 따랐다.     


  “자, 자! 어머이도 오늘은, 이래 고급 술 한 잔 하이소!”     


  할머니는 한 모금 마시더니 주름투성이 얼굴이 더 구겨져 버렸다. 완전 번데기 주름 같다.     


  “아이고, 이기 뭐꼬? 속에 불이 다 나네!”     


  아버지와 삼촌들은 큰 소리로 웃었다. 윗방에 있는 숙모들과 아이들도 따라서 막 웃었다.     


  “할매 얼굴에 불이 났다!”     


  민욱이 오빠가 할머니 얼굴을 보더니 막 큰 소리로 웃었다. 그 말에 또 다 따라 웃었다. 우리 동생들은 뭣도 모르고 따라 웃는다. 나도 웃니 하나가 빠진 채로 입을 막 벌리고 크게 웃어댔다. 온 집안이 시끌벅적했다. 오늘은 모두 모두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나도 참 행복하다. 

이전 24화 초록대문집 가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