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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09. 2024

말숙이 좋아하는 삼촌들

 오늘은 학교 마치고 바로 아버지 술도가에 가야 한다. 언니가 아버지 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머니 약을 꼭 사 오라고 했다. 자꾸 아버지가 술이 취해서 자전거 타고 오시다가 약봉지를 길에 떨어뜨리고 오신다. 오늘은 꼭 사야 된다. 어머니가 갈수록 더 많이 피를 토하고 더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서영이 아버지는 술도가 소장님이다. 우리 아버지는 술도가 배달부다. 매일 자전거에 커다란 막걸리 통을 양쪽에 달고 온 동네마다 배달을 다닌다. 골목 어귀에 아버지 배달 자전거 소리가 나면 언니와 나는 얼른 형춘이를 재우고 어머니 기침 소리가 가시게 물을 한 잔 떠다 마시게 한다. 아버지는 요사이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오신다. 술에 취해 있을 때 형춘이가 우는 소리나 어머니가 기침하는 소리가 나면 아버지는 화를 버럭 내시면서 방을 나가셔서 무당 할머니 안채 마루에서 코를 골면서 잔다. 그런 다음 날은 하루 종일 무당 할머니 욕지거리가 그치지 않는다. 어머니는 누워서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우신다. 언니가 그랬다. 그래서 아버지 자전거 끄는 소리가 무겁고 천천히 들리면서 골목 여기저기서 부딪히는 소리가 나면 언니와 나는 바로 형춘이를 재우고 어머니에게 물을 가져다 드린다.      


  수업 마치고 석전 삼거리 쪽으로 난 둑길을 따라갔다. 서영이랑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가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둑에 핀 민들레 홀씨를 하나 꺾어 후- 불었다. 홀씨들이 둑을 따라 춤을 춘다. 집에도 들어가기 싫고 아버지 보러도 가기 싫다. 언니 말이 아버지가 약봉지를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약을 살 돈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술도가까지 가면 아버지가 더 화 내실텐데. 그래도 언니는 형춘이를 봐야 해서 못 간다고 꼭 아버지에게 말해서 사 오라고 했다. 아. 어머니가 안 아플 때가 그립다.      


  “말숙이 아이가?”     


  김 군 아저씨다. 나는 코가 땅에 닿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오데 가노?”

  “술도가에 아부지 만나러요!”

  “타거라!”     


  아저씨는 빈 배달 자전거 짐칸에 나를 태웠다. 김 군 아저씨는 항상 군복을 입고 다닌다. 아버지 말로는 군대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다고 한다. 혼자 술 배달로 벌어서 동생들 공부시킨다고 아버지가 그랬다. 참 기특한 총각이라고. 나는 참 기특한 총각 아저씨 허리를 양팔로 꽉 잡았다. 둑에 떨어져 처박히기는 싫었다.      


  “어머이는 좀 어떠시노?”

  “그냥 그래예!”

  “아부지가 요새 술 많이 드시제?”

  “예!”

  “속이 상해서 안 그라나! 말숙이 니가 잘해 드리라!”

  “예!”     


  김 군 아저씨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길에 지나가던 아이들이 부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나는 괜히 우쭐해지고 기분이 좋았다. 우리 아버지도 작년에는 맨 날 이렇게 자전거도 많이 태워주고 번데기도 사주고 했는데.     

  술도가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달짝지근한 막걸리 냄새가 진동을 했다. 굴처럼 생긴 터널 같은 술도가 입구로 김 군 아저씨가 쑥- 들어갔다. 마술터널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입구 바로 옆 사무실 작은 창문으로 책상에 앉아 주판을 놓고 계시는 서영이 아버지가 보였다.      


  “김 군 왔습니더!”

  “고생했다, 말숙이도 왔구나!”     


  서영이 아버지는 검은 테 안경 너머로 인자하게 웃어주셨다. 김 군 아저씨는 술도가 안쪽에 자전거를 세우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회원동 양지식당, 일주일에 두 통씩 더 갖다 달라네요! 수금은 일주일마다 한다꼬!”

  “경기 좋은 가베!”

  “주인 아지매 음식 솜씨가 좋은가, 손님이 낮에도 바글바글 합디더!”     


  구겨진 지폐를 모아 잘 펴서는 책상 위에 정성스럽게 놓았다. 서영이 아버지는 주판으로 알을 이리저리 튕기더니 수금한 돈을 서랍에 넣었다.     


  “자장면 한 개 시키 주까?”     


  서영이 아버지가 나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중국집 그 자장면을 말하는 거 같았다.      


  “김 군 니도 밥 안 묵었제?”     


  김 군 아저씨가 한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다른 직원들 없을 때 퍼뜩 요기해라. 돈 아낀다꼬 점심도 맨날 굶고, 쯔쯧, 배달하다가 엎어지기라도 하모 우짤라꼬!”

  “아입니더!”

  “퍼뜩 시키거라!”     


  김 군 아저씨는 자장면 하나랑 볶음밥 하나를 주문했다. 사무실 커다란 시계가 오후 3시를 가리켰다. 아버지가 오시려면 아직 두어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단다. 지금 언니는 집에서 형춘이랑 어머니 수발하느라 점심도 굶고 있을 건데.      


  “자장면 배달이요!”     


  금방 왔다. 김 군 아저씨와 나는 술도가 한 구석 나무 의자에 앉았다. 책상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자장면과 노란 계란이 꽃처럼 박힌 볶음밥이 올려졌다. 와! 군침이 막 돌았다. 그런데 자꾸 목구멍이 따갑고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았다. 자꾸만 언니랑 형춘이가 생각났다. 김 군 아저씨가 자장면을 나무젓가락으로 막 비볐다.     

  “자! 묵어라!”

  “아저씨, 이거 싸 가모 안 되겠지요?”

  “와? 언니하고 형춘이 땜에?”     


  나는 고개만 처박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라모, 이거 싸 가거라!”     


  김 군 아저씨는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노란 계란을 떠서 놓고는 빈 도시락 통에 볶음밥을 소복하게 담고 다시 노란 계란을 그 위에 얹었다. 그리고는 내게 건네주었다.     


  “대신에 자장면, 아저씨 하고 나눠 묵자!”


  나는 사무실 쪽으로 쳐다보면서 서영이 아버지를 보았다. 여전히 뭔가를 열심히 적고 계셨다.      


  “소장님 눈치를 니가 와 보노?”

  “아저씨 배달해야 되는데, 뺏아 묵으모!”

  “쪼매난 아-가 무슨 걱정이 그래 많노? 얼른 묵어라, 면 뿐다!”     


  나는 김 군 아저씨하고 자장면을 맛나게 나눠 먹었다. 김 군 아저씨는 아버지 말처럼 진짜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서영이 아버지에게 틈틈이 공부를 배워서 검정고시 시험 준비도 한다고 했다. 착하고 성실하다고 서영이 아버지도 김 군 아저씨를 더 좋아한다고 아버지가 그랬다. 그래서 다른 배달 직원이 없을 때 이렇게 중국 요리도 시켜주시고 그러는가 보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사무실 의자에서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아늑하고 참 좋았다. 사무실 안 곤로에 물 끓이는 소리, 서영이 아버지가 주판알을 튕기는 소리, 종이에 글을 쓰는 사각사각 소리, 자전거 페달 소리, 문틈으로 막걸리 익어가는 달큼한 냄새까지. 형춘이 우는 소리도 어머니 기침 소리도 안 들려 좋았다. 모처럼 참 평화롭다. 나른하고 기분 좋은 오후였다.


  “교방동 돌고 왔습니더!”

  “석전동도 수금했습니더!”

  “회성동 배달 한 번 더 갑니더!”     


  갑자기 요란스러운 자전거 소리에 퍼뜩 잠이 깼다.      


  “말숙이 아이가?”     


  사무실 문을 열고 아버지가 놀란 표정으로 들어왔다. 나는 부스스한 얼굴로 자다가 깼다.     


  “학교 마치모 집에 안가고! 아버지 일하는데 오지 말라 캐도!”

  “어머이 약이 떨어져서예! 언니가 …….”     


  아버지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다. 술도 안 마셨는데 얼굴이 정말 빨개졌다.      


  “얼른 나가자!”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     


  “이씨, 잠깐 보지!”     


  서영이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를 불렀다. 나는 겁이 나서 사무실 밖 작은 들창문으로 귀를 대고 들었다. 잘 들리지 않았다.     


  “이걸로 오늘은 약을 꼭 사게! 그라고 술 끊고! 정신 바짝 차리고!”     


  아버지는 서영이 아버지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절을 했다. 우리 아버지도 공부 많이 하고 많이 배워서 술도가 소장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 말로는 서영이 아버지는 이런 데보다 더 큰 데 있을 사람이라고는 했다. 우리 보고 맨 날 공부해야 된다고 하면서 아버지는 술만 먹는다. 그래도 서영이 아버지가 술 끊으라고 말해주니까 참 좋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 말은 안 들어도 서영이 아버지 말을 듣는다. 그래서 술도 끊었으면 참 좋겠다. 아버지는 누런 봉투를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아버지 얼굴이 조금 밝아 보였다.     


  “이 씨요, 쌍둥이 김 씨가 돼지비계 좀 끊어왔네! 한 잔 하고 가소!”

  “봐라! 말숙이 와서 안 되겠구마는. 말숙아, 요 와서 고기 쪼매 가져가거라!”     


  주춤거리고 서 있는 아버지 바짓가랑이 사이로 얼른 뛰어가서 누런 종이에 싼 돼지비계 한 덩이를 받아 쥐었다. 오늘 꼭 잔칫날 같다. 나도 아버지처럼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절을 했다. 몇 번이나.     


  “고마 해라!”     


  김 군 아저씨가 뒤에서 내 어깨를 잡았다.      


  “인사는 한 번만 하는 기다!”     


  그리고는 내 주머니에 지폐 두어 장을 아버지 몰래 넣어주었다.     


  “급할 때 써라! 아버지한테는 비밀이다!”     


  김 군 아저씨는 살짝 윙크를 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해 지겄다. 얼른 온나!”     


  아버지는 벌써 자전거를 타고 굴 속 같은 술도가 입구에 서 있었다. 밖은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등 뒤로 돼지고기 굽는 냄새, 아저씨들이 웃으면서 떠들어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오랜만에 배달자전거 짐칸에 타서 시큼한 땀 냄새와 술 찌끼미 냄새가 섞인 아버지 등을 양 팔로 꼭 안은 채 거리를 달렸다. 아버지 등에 타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나는 우리 아버지 등이 세상에서 젤 따뜻하고 좋았다.      


  “쪼매 기다리거라!”     


  삼거리 약국 앞에서 자전거를 멈추었다. 아버지는 한참 후에야 약을 가득 들고 나왔다.      


  “한 보름치는 되것다!”     


  나를 태운 아버지 자전거는 거리를 돌아 집으로 향했다. 키 낮은 은행나무들이 길 양 옆으로 지지대를 기댄 채 서 있었다. 초저녁 공기가 상쾌하게 코끝을 간질거렸다. 아! 매일이 오늘만 같다면!!!      


  나는 양 팔로 아버지 허리를 꼭 껴안았다.      


  “저 푸른 초원 위에 ~~~ 그림 같은 집을 짓고 ~~ 사랑하는 우리 님과 ~~ 한 평생 살고 싶어!!!”     


  아버지는 술도 안 마셨는데 노래를 불렀다. 많이 기분 좋으신가 보았다. 구름 위를 나는 기분이다.     


  나무 대문 입구에 자전거가 섰다. 아버지는 대문 안으로 자전거를 넣었다. 그런데 집안이 조용했다. 무당집할머니 방문도 형식이네 방문도 다 열어재껴 졌다. 아버지와 나는 순간 마당 한가운데 우뚝 섰다. 머리끝이 쭈뼛거리고 섬찟했다. 


  갑자기 아버지가 뒤채 우리 집 쪽으로 미친 사람처럼 달려갔다. 나는 다리가 떨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엄마!!!”     


  언니 비명소리가 온 집을 울렸다. 우리 집으로 들어가기가 무섭다. 나는 그냥 마당에 서 있었다. 두 번 다시 집으로 들어가기 싫었다. 무섭다.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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