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집 뒤채에서 초상이 났다. 아버지 어머니와 서영이네 모두 무당집에 가셨다. 이 동네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하기야 우리 집도 이제는 가난해서 서영이네 옆방에 세 들어 살기는 하지만 그래도 …. 어머니는 늘 어려운 사람들끼리 돕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신다. 그래도 나는 좀 근사하게 살고 싶다.
서영이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얼굴만 빼꼼히 들여다본다. 윗방 책상에 앉아 영어공부를 하던 나는 문 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로사 언니야!”
“들어와!”
서영이가 한숨을 푹 내쉬며 걸어 들어왔다. 그러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쪼매난 기 와 한숨이고?”
“죽으모 오데로 가노?”
“뭐어?”
나는 기가 막혀서 서영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이 아이는 아주 진지하다.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여덟 살짜리, 아니 한국 나이로도 아직 일곱 살 밖에 안 된 아이가 죽음이란다.
“니, 뭔데?”
“나는 엄마 없이 못 사는데! 말숙이는 우짜지?”
“말숙이는 여덟 살 아자나! 걱정 마!”
나는 다시 영어 노트로 눈을 돌렸다. 영어 과제를 안 해 가면 내일 또 손바닥 불나게 맞을 거다. 정말 싫다. 죽음이고 뭐고 지금은 영어 과제가 내게는 죽음 그 이상이다.
“언니야!”
“또 뭐?”
“죽으모 오데로 가노?”
“천국 아니면 지옥!”
노트에 영어 필기체를 쓰면서 근성으로 답했다.
“성당 안 가모 지옥 가나?”
“당연하지!”
잠시 조용했다. 나는 신경도 안 쓰고 영어를 쓰느라 바빴다. 그런데 갑자기 통곡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렸다.
“으아--앙! 으앙!!!”
아! 정말 못 말리는 서영이. 우리 집 안방에 퍼질러져 앉아서 대성통곡을 해 댄다. 애가 소리는 또 어찌나 큰지. 어른들이 오시면 또 내가 울린 줄 알 거다. 아, 바빠 죽겠는데. 정말 얄미운 서영이.
“고만 울어라!”
“나는 지옥 가기 싫다! 무섭다!”
“그라모 성당 다니면 되잖아!”
갑자기 뚝 그친다. 울음 범벅인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귀엽다. 이래서 어른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서영이, 서영이 하나보다. 일곱 살짜리가 죽음이 무섭다고 운다. 영리하고 반응 빠르고 잘 웃고 잘 운다. 서영이는 숨기는 게 없다.
무섭고 두려우면 어른들 옷 뒤로 숨어버리고 맛있으면 고맙다고 말하고 좋은 사람 앞에서는 앞니 빠진 채로 환하게 웃고 무서운 사람 앞에서는 소리 내서 통곡을 한다. 서영이는 정말로 숨기는 게 하나도 없다. 서영이가 천국을 안 가면 누가 갈까.
“이번 주 일요일부터 언니랑 같이 성당 가자!”
“참말?”
“그러니까 걱정 말고, 이제 나가 줘!”
갑자기 또 신이 나서 문 쾅 닫고 달려 나간다. 연필을 다시 잡는 순간, 또 문이 열렸다.
“그라모, 우리 동생들하고 아빠 엄마는 다 지옥 가나? 성당 안 댕기모?”
아! 정말 짜증이 난다.
“몰라! 나도 몰라! 일요일에 신부님께 가서 여쭤 봐!”
다시 문이 닫혔다. 서영이는 가끔 내 인내심에 한계를 측정하는 아이다, 정말.
그 뒤로 서영이는 나만 보면 일요일이 언제냐, 몇 시에 가냐, 엄마에게 말 좀 해 달라, 아무튼 더 귀찮게 쫓아다녔다. 말을 잘못 꺼내가지고. 나는 마리아 언니에게 살짝 짐을 넘겼다.
“언니, 서영이가 성당 가고 싶대.”
“응?”
“지옥 무섭다고 성당 간대.”
“무슨 소리야?”
“아이, 나도 몰라! 아무튼 서영이 이모한테 언니가 말 좀 해 봐!”
마리아 언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행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어시장에 어머니를 마중 갈 거다. 일찍 마치고 언니들이랑 모두 어시장에서 모이기로 했다. 회 거리랑 반찬 사서 아버지 좋아하시는 거도 사고 요한 오빠가 주말에 온다니까 먹을거리도 사기로 했다.
“로사야, 곰보빵 먹으러 가자!”
미영이가 갑자기 내 목덜미를 잡아챘다.
“오늘은 안 돼!”
“와?? 마고 오빠들 보러 가자! 어?”
나는 미영의 팔에서 살짝 빠져나와 내리막길로 내달렸다.
“월욜에 수학노트 좀 빌려 줘! 잘 가!”
“가쓰나! 월욜에는 꼭 곰보빵 묵으러 가야 된다!”
“그래!”
뒷걸음질은 치고 있지만 입 안에서 살 살 녹는 곰보빵이 먹고 싶다. 휴- 할 수 없다.
어시장 입구에 들어서니까 바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버스정류장 매표소 앞에서 언니들을 기다렸다. 혼자 어머니에게 가기는 싫었다. 그리고 혼자 어시장 근처를 서성대기도 싫었다. 지나가면 자꾸 이모들이 사라고 나를 불러댄다. 부끄럽다.
“로사야!”
언니 둘이 다정하게 팔짱 끼고 걸어오고 있었다. 어시장에서 한참 위로 창동 거리를 지나 더 올라가면 안나 언니가 일하는 전화국이고 창동 사거리 입구에 마리아 언니가 일하는 금고 사무실이다. 걸어오다가 둘이 만난 모양이다. 나는 팔을 들어 흔들어댔다. 내게는 언제나 멋지고 예쁜 언니들이다. 언니들도 팔을 들어 막 흔들었다.
“행님요, 딸들 옵니더!”
바닷가 입구 골목으로 들어서니까 석전 댁 아줌마의 컬컬한 목소리가 울렸다. 벌써 우리 냄새를 맡았는지. 어머니는 그제야 구부정한 허리를 펴며 환하게 웃었다. 바닷바람에 그을리고 소금에 절인 갈색 생선에 바람을 넣은 것 같이 퉁퉁 부은 어머니 얼굴. 어머니는 어시장 바닷가 입구 가오리 골목에서 하루 종일 가오리 껍데기를 벗긴다. 오늘도 손이 퉁퉁 부어올라 있을 것이다. 가오리 껍데기처럼.
어머니는 생선 비린내 진동을 하는 전대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안나 언니에게 주었다. 돈에서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언니는 모른 척한다.
“어머니는 잡숫고 싶은 거 없어요?”
“그런 게 오데 있노? 요한이 좋아하는 갈치 큰 거 한 마리하고, 아버지 좋아하시는 단팥죽도 한 그릇 사거라. 진동 골목 옆에 가모 있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순대도 살까요?”
마리아 언니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어머니가 순대를 좋아하시나.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신다.
“그라던가!”
나는 아직까지 우리 어머니가 순대를 좋아하시는지 몰랐다. 돼지내장에 잡채 쑤셔 넣은 그걸 좋아하시는지는 몰랐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커다란 플라스틱 장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진동 골목 쪽으로 걸으면서 안나 언니가 물었다.
“어머니 순대 좋아하시는 거 어떻게 알았노?”
“응? 저번에 금고에서 퇴근하고 반찬 사러 왔다가 어머니가 다른 아줌마들이랑 순대를 하도 맛나게 드시길래!”
언니들은 역시 나보다 부모님에 대해 아는 게 더 많다. 갈치랑 단팥죽이랑 순대랑 과일도 사고 이것저것 가득 샀다. 무거웠다. 그런데 기분은 좋았다. 우리가 도착하자 어머니는 좌판을 접었다. 가오리 회를 가득 썰어서 종이에 싸 두었다. 언니들은 어머니 짐을 나눠 들고 나는 어머니 팔짱을 끼었다.
“치아라! 비린내 교복에 묻을라!”
“우때서요?”
나는 더 꼭 팔을 끼웠다. 어머니 몸배 바지랑 헐렁한 옷에서 나는 비린내는 아무리 손으로 비벼대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젠 우리 어머니 냄새가 되어버린 이 비린내가 좋기만 하다. 안나 언니는 고목 껍질 같은 어머니 손을 꼭 잡았다. 이대로도 참 행복한 우리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