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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09. 2024

안나의 결혼식 피로연

“서영아! 동생들 쪼매 봐라!”     


  어머니는 나한테 동생들을 맡기고 로사 언니네 이모랑 부엌방에서 뭔가 심각한 얘기를 했다. 예단이니 사주단자니 그런 말들이 오갔다.     


  “신랑 집이 그래 잘 산다면서요, 성님?”

  “고마, 아이다! 오동동에 땅 쪼매하고 집이 몇 채 있다카더마는.”

  “하이고, 성님도! 그라모 부자지예!”

  “우리 안나, 인자 고생 걷힐 낀 갑다!”

  “시어무이 자리는예, 우떻던가예?”

  “그기 쪼매 걸린다. 홀 시어무이 외아들 아이가?”

  “시어무이가 여장분갑네예!”

  “시아부지 자리가 재산이 많았다카네. 아들 교육시킨다꼬 집을 몇 채 팔았는 갑      대!”

  “하이고, 참말로 부잔갑다!”

  “동상아! 결혼식은 성당에서 하모 되는데 손님들 잔치를 요- 서 쪼매 해야 되겄      다.”

  “당연하지예!”

  “고맙다, 동상!”

  “성님요, 그런 말씀 마이소!”     


  안나 언니가 결혼을 한단다. 나는 쪼르르 로사 언니네 방으로 달려갔다. 동생들 보라는 어머니 말을 벌써 잊은 지 오래였다.      


  “언니야, 시집가냐?”     


  윗방에서 옷을 입고 있던 안나 언니랑 둘러싸고 서 있던 마리아, 로사 언니도 다 놀라서 쳐다보았다.      


  “응?”

  “시집가냐고?”

  “그래, 우리 언니 시집간다, 와?”

  “싫다! 우리 초록대문집 사람들 전부 다 내랑 죽을 때까지 같이 있어야지! 안된다!”     


  안방에 앉아 있던 중대장 아저씨가 갑자기 소리 내서 막 웃었다.      


  “우리 서영이, 이리 온?”     


  나는 중대장 아저씨 무르팍에 앉았다. 안방 벽에 걸린 예수라는 사람처럼 아저씨 다리도 삐쩍 말라 있었다.      

  “서영이는 여기 사람들이랑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록 대문 집 우리 집이랑 아저씨 집이랑 우리 언니들이랑 대영이네랑 이 동네 사람들 전-부 다 하고 오래오래 살 낀데요!”

  “가스나, 천 년 만 년 일곱 살인 줄 아나?”     


  로사 언니가 입을 삐죽 대면서 놀렸다. 아저씨는 그래도 내가 이쁜 지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그러자! 우리 서영이네랑 우리 집이랑 여기 주변에 사람들 전부랑 다 같이 오래오래!”

  “그러니까 안나 언니 시집보내지 마요, 아저씨!”     


  그때 안나 언니가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고 나왔다. 나는 그렇게 예쁜 안나 언니를 본 적이 없었다. 와! 아저씨도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양장점 대영이 이모가 한 달 넘게 만든 웨딩드레스라고 했다. 보석 같은 구슬이 반짝거리고 백 개도 넘게 달려있었다. 아저씨랑 안나 언니는 신부 입장 연습을 했다. 나는 좋아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저씨도 좋아서 입을 못 다물었다.     


  “서영아! 안나 언니 진짜로 시집보내지 말까?”     


  아저씨가 넋을 놓고 보고 있는 나한테 웃으면서 말했다.     


  “예!”     


  갑자기 다들 막 웃었다. 왜 내가 말하면 다 웃는 걸까. 정말로 저렇게 천사 같은 안나 언니를 초록 대문 집에서 보내려고 하는 걸까. 왜? 


  죽을 때까지 다 같이 살면 왜 안 되는 걸까?     

  안나 언니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얼굴로 화장을 하고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아버지 손을 잡고 성당에 갔다. 기분이 참 좋았다. 그리고 초록 대문 집 우리 집은 그날 하루 종일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희덕이 언니 방, 우리 안방, 로사 언니네 방들, 대문간 영자 이모네 방까지 모두 손님들로 가득했고, 마당에도 평상 위에 돗자리를 깔고 상을 차렸다. 방마다 웃고 떠들고 난리였다. 기분이 좋았다. 부엌에서는 기름 냄새가 구수하게 퍼지고 가오리 회 무침이 커다란 대야에 가득 쌓여 있고 들깨 찜도 한 광주리다. 나는 엄마가 쥐어주신 튀김 바구니를 들고 동네 애들이랑 옥상에 올라갔다. 그날은 부자네 연자도 내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형식이, 영민이까지 따라왔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런데 옥상에 놓인 평상에 앉아서 무당집 할머니 마당이 보였다. 말숙이네는, 어디로 갔을까? 말숙이네 이모가 돌아가시고 온 가족이 이사를 갔는데. 아버지 말로는 말숙이 아버지는 술 배달도 그만두셨다고 했다. 말숙이가 갑자기 많이 보고 싶다. 용숙이 언니도. 이런 날 같이 있으면 맛난 것도 많이 먹고 내가 형춘이도 많이 많이 업어줄 건데 ….     


  “서영아! 서영아! 오데 있노?”     


  아버지 목소리다. 옥상에서 고개를 쏙 내미니까 아버지가 손짓을 하셨다.     


  “다들 내려오너라. 사진 찍자!”     


  초록 대문 집 식구들이 모두 계단에 모여 섰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로사 언니네 식구들, 희덕이 언니네, 양장점 식구들, 뒷집 부자네, 앞집 영주네, 형식이네, 포항집 영민이네 모두 모두. 형식이 아빠가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하나, 둘, 셋, 했다.     


  하나, 둘, 셋! 찰칵!     

  그날 우리는 채송화처럼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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