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
꼬끼오!
산 5번지. 구포 댁네 수탉이 새벽 네 시에 내는 울음소리다. 아직 동도 트기 전인데 이놈은 벌써 아침이란다. 신기한 것은 이 소리를 듣고 함흥 김가 네도, 옥천 최가 네에도 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벽 네 시 닭 우는 소리에 산 번지 사람들은 잠을 깬다. 그렇다고 딱히 누구 하나 닭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는다. 이 동네 사람 태반이 늙은이들이고 새벽잠은 벌써 달아난 지 오래되었다. 오히려 얼마 전부터 이미 깨서는 이부자리만 들썩이고 있던 참에 닭이 일어날 좋은 명분을 딱 맞춰 내어 준 꼴이다.
산 20번지에 사는 김 노인은 예외였다. 밤새 작업을 하느라 겨우 잠을 청한 게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부스스 일어나 옆에 놓인 긴 지팡이로 창호지문을 열어재꼈다. 동네가 훤히 내다보였다. 아직 어둑어둑하다.
“저 놈은 닭 모가지를 확- 비틀어서 복날 삼계탕을 해 먹든지 해야지!!!”
김 노인은 다시 능숙한 솜씨로 문고리에 지팡이 끝을 걸어 문을 탁 닫았다. 동그랗게 구멍처럼 파헤쳐진 이부자리에 다시 몸을 쑤셔 넣으며 끙끙 앓는 소리를 한다. 오늘따라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다. 더 자고 싶은데 저 놈의 닭 때문에 잠을 설친 것이다.
“한 번 만 더 울면, 진짜로 삼계탕을 해 먹을 거야!!”
앓는 신음 소리 사이로 구시렁댄다. 김 노인은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닭이 계속 울어댔다.
꼬-끼-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더니, 지팡이로 문짝이 찢어져라 탁 밀어젖혔다.
“이 놈으 여편네야! 어디서 저런 걸 주워 와서 온 동네 시끄럽게 해?”
동네가 하도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방문만 열어도 온 동네가 훤히 내다보인다. 언제 일어났는지 벌써 마당을 쓸고 있던 건너편 집 구포 댁이 허리를 들고 김 노인을 쳐다본다.
“닭 새끼, 모가지를 탁 비틀어 버릴까!”
“아따! 동도 안 텄는데 숭측 하기는!”
“잠 좀 자자, 이 여편네야!”
“하따! 노인이 새벽 잠 길모 저승길이 가찹다더만!”
“아침부터 말하는 꼬락서니가!”
“그라니까, 넘으 집 닭 보고 흉한 소리 그만 하라꼬!”
“에잇!”
말로는 못 이기는지 김 노인이 다시 문을 탁 닫아버렸다. 구포 댁은 피식 웃으면서 뒷마당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울어대는 수탉에게 꼬챙이로 마구 위협을 준다.
“조용히 안 하나? 온 동네가 다 깨겄다!”
김화백은 이불을 있는 대로 꺼내 둘러쓰고는 남은 잠을 청했다.
2.
동이 트고 해가 곱게 피어올랐다. 구포 댁이 찌개 냄비를 들고 김 노인네 손바닥만 한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당 한가운데 평상 위에는 마르다만 그림들이 정신없이 널려있고 창고 안에도 작업한 그림이 수북하다. 목공소처럼 나무 자르는 기계며 여러 목공 도구들이 한쪽 구석을 자리 잡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노인은 캔버스를 직접 제작했다.
구포 댁은 평상 옆에 놓인 자기 초상화를 흐뭇하게 쳐다본다.
“성질은 지랄 맞아도 손재주 하나는 최곤 기라!”
영정사진 초상화다.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도 김 노인에게는 눈이 찢어졌느니 코가 너무 크느니 하면서 일부러 잔소리를 하며 한 달 넘게 괴롭혔다. 어쩐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초상화를 금방 끝내버리면 너무 성의 없어 보였다. 인생에 대한 죄책감마저 들었다. 별반 내세울 것도 없는 인생이었지만 마지막 초상화만은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랐다. 김 노인도 그 마음을 아는지 구포 댁이 수 십 번 잔소리를 해도 입술을 꽉 다물고 대꾸하지 않고 고쳐주었다. 사실 고치나 마나였다. 그만큼 김 노인은 완벽했다. 그래도 붓을 들고 뭐라도 끄적거려 주면 마음이 훨씬 놓였다.
구포 댁은 김 노인네 방문을 자기 집 안방 문처럼 훌쩍 열어젖혔다. 김 노인은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져 있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영혼이 이탈된 것 같은. 찌개 냄비를 툇마루에 살짝 올려놓고 다시 초상화를 쳐다보며 또 한 번 흐뭇한 표정을 짓더니 뒷짐을 진 채 천천히 나갔다.
3.
해가 하늘 한가운데 걸렸을 때 즈음, 발 디딜 틈도 없이 다닥다닥 들어붙은 집들 사이 좁은 골목으로 김 노인이 터벅터벅 걸어 내려간다. 무거운 나무 화구통을 들고 나무 이젤을 들고 누가 봐도 아주 무겁고 힘겨워보였다. 그래도 내려갈 때는 좀 낫다. 올라올 때가 더 문제였다. 마을 입구 영아 옷 수선 마루 위에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 노인은 몇 년 전부터 동네 사람들의 영정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그 사이 벌써 두 명이 죽었고 김 노인이 그려준 초상화 앞에 향이 피워졌다. 동네 사람들은 수 십 년 같이 살아온 김 노인이 자기 얼굴을 그려주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누구보다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이 그린 초상화에는 남다른 느낌이 있었다. 그림에는 다들 문외한이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은 누구나 매 한 가지였다. 자신에 대해 지나온 거친 인생을 이해한다는 듯 토닥거리는 위로, 알 수 없는 그 느낌. 덕분에 김 노인은 하루도 쉬지 못했고 작업은 밀리기 시작했다. 돈은 받지 않았다. 처음부터 받을 생각조차 없었다. 대신 김 노인은 다른 것을 받았다. 초상화 주인이 가장 아끼는 것 중 한 가지. 옥천 최가는 수 십 년 전 피난 행렬에서 할아버지가 주신 회중시계를 꺼냈고, 남포 댁은 전쟁 통에 죽은 남편이 마지막으로 사다 준 옥가락지를 꺼냈다. 구포 댁은 처녀 시절 수놓았던 이불보를 꺼냈다. 그것은 마치 꽃밭에 온 것 같이 곱고 예뻤다. 꽃들이 만발했고 나비가 곱게 수 놓여 있었다. 영천으로 시집간 딸에게 그걸 내놓았더니 단번에 싫은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런 구닥다리 누가 해?”
김 노인은 그 이불보를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한쪽 벽에 펼쳐 두고 아침저녁으로 기분이 울적할 때마다 쳐다보곤 했다. 그걸 보고 있으면 집 안에 우렁각시라도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김 노인이 잃어버린 그 찬란해야만 했을 청춘과 인생을, 꽃들과 나비들이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내 고향은 충북 제천이야! 일제강점기에 그 많던 땅 다 뺏기고 할아버지는 화병으로 맨날 골골하셨지!”
김 노인은 부지런히 붓을 놀리면서 둘러싼 동네 사람들에게 또 자기 얘기를 넋두리처럼 노랫가락처럼 중얼댔다. 그래도 아무도 싫어하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자기 얘기를 하며 들으며 하루를 버티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태극도에 빠져 있다가 전쟁이 터지면서 식구들을 다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을 온 거지. 할아버지는 태극도를 반대한 터라 고향에서 죽겠다면서 할머니와 단 둘이 남으셨지.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가 고향에 갔더니 집터는 이미 불에 타 흔적도 없고 부모님 시신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어. 아버지는 어린 나하고 어머니를 데리고 피난길에 오다가 어머니는 포탄을 맞고 돌아가셨어. 참, 우리 다들 힘들었지. 그때 일곱 살이었는데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 감천에 도착하니 어두운 밤이었어. 어머니를 잃고 눈물범벅이 된 나를 동네 사람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었지. 감천 판자촌에 피난 보따리를 풀기가 무섭게 아버지는 태극도에 더 깊이 빠졌어. 전쟁이 끝나고 우리 다들 남포동 극장 앞에서 구두닦이 했잖아? 허허!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내가 극장 간판 조수가 되고 얼마 안 있어서 태극도 교주가 죽었잖아? 교주가 죽자 아버지는 집을 나가 버렸어. 그리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지. 소식도 알 수 없고. 간판 조수로 일하다가 극장 매점에서 일하던 우리 숙경이를 알게 되었지. 처음에 이 함흥 김 씨가 눈독 들이는 걸 내가 먼저 꿰차 버렸지! 허허허. 사진관에서 사진 한 장 박고 바로 살림을 차리고는 몇 달 뒤 임신을 했잖아. 우리 재석이가 태어나고 옆 극장에서 간판 전임으로 발탁되어 승진도 되고. 그때는 정말 좋았지. 우리 재석이가 복덩이라 생각했지. 그날만 아니었으면!”
갑자기 붓을 멈추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들 아는 사연이었다. 그래도 동네 사람들은 들어주고 듣고 한다. 수 십 년 비좁은 동네에서 살 비비며 살았는데 모르는 사연이 어디 있겠나. 그래도 들어주는 것이다. 고개 끄덕여주고 수 십 번 다시 같은 장면에서 울어주고 다시 같은 대목에서 탄복해 주며. 그렇게 이 동네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위로를 하며 하루하루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김 노인은 밤낮 간판을 그려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내 숙경은 하루 두 번 더운밥을 해서 집에서 남포동까지 걸어 다니며 도시락을 날랐다.
부마항쟁이 치열하던 어느 날, 따뜻한 밥을 지어 거리를 걸어가던 숙경은 최루탄에 눈물범벅으로 비틀대다가 누군가 휘두른 곤봉에 머리를 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김 노인 아들 재석이 딱 열일곱 살 되던 해였다. 아들은 그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했다. 잘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우고 건달들과 어울렸다. 김 노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몇 년 방황 끝에 아들은 돈을 벌겠다고 사우디로 떠났다. 다달이 적지 않은 돈이 송금되어 왔다. 김 노인은 송금되는 돈의 액수를 보고 처음에 깜짝 놀랐다. 아들이 그 먼 더운 나라에 가서 번 돈이라 한 푼도 쓸 수가 없었다. 송금된 돈은 그대로 삼 년 동안 통장 속에 보관되었다.
삼 년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이 배가 불룩한 여자를 데리고 돌아왔다. 여자만 두고 아들은 다시 사우디로 떠났다. 김 노인은 난감했다. 여자가 해산하는 날, 구포 댁이 손자를 받았다. 그리고 백일 지난 어느 날, 여자는 궤짝 속에 든 통장과 도장을 들고 사라졌다. 김 노인은 침침한 눈을 비비며 손자 우유 값을 열심히 벌어대야 했다. 손자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봄 무렵, 아들 사망 소식이 날아왔다. 건설현장에서 폭파 사고로 죽었단다. 김 노인은 이제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하도 많은 죽음을 목격한 터라 모두 다 데려가는구나, 싶었다.
하기야, 살아 있은 들 뭐 그리 호위호식을 한다고. 험한 세상 일찍 가는 것도 이 꼴 저 꼴 안 보고 나을지도 모른다, 싶었다.
그런데, 손자는 달랐다. 조부모도 부모도 아들도 하늘이 다 데려간다면 탄식하고 순응하며 받아들이지만 손자는 달랐다. 손자는 김 노인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이고 심장을 파서 꺼내줘도 아깝지 않을 존재였다.
4.
만수였다. 분명히 틀림없는 손자 만수였다. 김 노인은 모퉁이를 허겁지겁 돌아 달려가 보았다. 아무도 없다. 분명히 손자였는데. 김 노인은 좁은 골목 어귀에서 주름진 눈이 충혈되도록 허공에 불러댔다.
“만 - 수 - - 야!”
1989년 늦가을.
김 노인이 손자 만수를 부르는 소리다. 그 구성진 가락 같은 소리가 감천동 골목마다 울린다. 김 노인은 늦은 저녁이면 온 동네를 다니며 만수를 찾는다. 이웃 사람들이 데려다 밥을 먹일 때도 있고 또래 친구 집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일 많이 있는 곳이 공부방 입구다. 그래서 김 노인은 습관처럼 온 동네 만수 부르는 소리를 흘리며 발걸음은 항상 먼저 공부방으로 향한다. 공중 화장실에서 찌른 내가 코를 찌른다.
좁은 골목마다 연탄 화로가 길을 차지하고 있다. 저녁 무렵이라 집집마다 아궁이에 밥을 짓거나 찌개를 끓인다. 밥 짓는 냄새와 찌개 냄새가 골목을 가득 메운다. 그리고 후끈거리는 열기가 좁은 골목에 가득 피어오른다. 어떤 집은 골목에 내놓은 연탄 화로 위에서 국을 끓인다. 김 노인은 능숙한 몸놀림으로 뜨거운 연탄 화로들을 잘도 피해 간다. 김 노인은 골목을 돌아 공중 화장실 쪽으로 향한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 나갈 즈음, 멀리 공중 화장실 옆 계단에 앉아 졸고 있는 만수가 보인다. 김 노인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검고 주름투성이 얼굴이 코 주변을 돌며 원을 그린다. 만수는 계단 옆 벽에 머리를 대고 곤하게 잠들어있다. 이층 공부방은 벌써 문이 잠겨 있다. 티셔츠는 온통 얼룩이 져 있다. 팔 길이가 댕강하다. 바지는 어디서 넘어졌는지 무르팍에 구멍이 나서 그 안에 살이 벗겨져 피가 비친다. 바지 끝자락이 종아리께 까지 댕강하게 올라와 있다. 김 노인은 얼굴의 모든 주름을 다 모아 찡그리며 자는 만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울었는지 온 얼굴에 얼룩이 져 있다. 오른쪽 볼에도 피멍 든 상처 자국에서 피가 비친다. 김 노인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래로 떨어뜨려진 만수의 양 손등도 터져서 피가 삐죽거린다.
김 노인 눈가에 촉촉하게 이슬이 맺힌다. 김 노인은 구부정한 허리를 돌려 만수를 등에 업었다. 만수는 자는 듯 안 자는 듯 그대로 등에 업힌다. 힘들게 한 발을 내딛는 김 노인. 한 번 휘청거리더니 천천히 한 발씩 때기 시작한다. 허리가 더욱 고꾸라진다. 김 노인 등에 업힌 만수의 자는 얼굴 입 꼬리에 미소가 머문다. 공중화장실 옆 낮은 가로등 불빛이 깜박 거린다. 김 노인은 어두운 골목을 천천히 기어 올라갔다. 멀리 만수의 엉덩이가 김 노인 걸음에 맞춰 위아래로 춤을 추고 있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캄캄한 골목 모퉁이를 돌아 김 노인은 집으로 향한다. 만수를 찾으러 나가는 길에 불을 꺼 두어서 그런 지 집이 깜깜하다. 벌써 해가 길어지는가 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 즈음 불을 끄고 만수를 찾아 온 동네를 뒤지고 와도 밝았는데. 김 노인은 한줄기 끼쳐 드는 찬바람에 몸서리를 치며 얼른 나무문을 잡아당긴다. 삐걱 소리가 난다. 그 바람에 등에 업힌 만수가 고개를 돌린다. 김 노인은 구부정한 허리를 그대로 한 채 가만히 서 있다. 만수는 고개를 돌리고 다시 잠이 든 모양이었다. 김 노인은 땅을 기다시피 조심스럽게 만수가 깨지 않도록 툇마루로 올라가 방에 들어가서 전구를 켠다. 대낮 같다. 밝은 조명 아래 만수가 등에 업힌 채 다시 고개를 돌리며 뒤척인다. 초저녁에 밥을 짓느라 아궁이를 데워서 그런지 방바닥이 따끈하다. 아랫목 쪽 요를 깔아 둔 그 위에 김 노인은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엎드린다. 그리고 더 조심스럽게 양팔을 뒤로해서 만수를 꼭 잡고는 천천히 옆으로 눕는다. 그 바람에 만수도 같이 옆으로 누운 듯 돌더니 바로 바닥에 널브러져 버린다.
사지를 좍 펴고 대자로 뻗어 잠들어 있는 일곱 살배기 만수. 김 노인은 그대로 모로 누운 채 숨을 고른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천천히 일어난다. 불빛 아래 보니 만수의 얼굴은 더 엉망이다. 김 노인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에서 관절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났다.
부엌으로 난 쪽문을 열고 천천히 기어들어간다. 김 노인은 아궁이 옆에 놓인 행주를 아래 플라스틱 물통 속에 넣어 손으로 주물럭거리더니 꼭 짰다. 손등이 등 거북 같이 갈라져 있다. 다시 다리에 힘을 주며 방으로 올라가더니 자는 만수의 얼굴을 젖은 행주로 닦아준다. 행주가 상처 부위를 지날 때마다 만수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내친김에 양 손등과 손바닥도 골고루 닦아낸다. 바지를 천천히 벗긴다. 팬티에 오줌이 베어 짠 내가 나고 누렇다. 무릎이 까여 피가 비쳤다. 김 노인은 상처 부위를 행주로 지그시 누르며 닦는다.
“이런 상처는 톱 풀이 최곤데….”
만수의 발바닥도 시커멓다. 김 노인은 다시 일어나 아궁이께로 가서 물통 속에 손을 넣고 행주를 빨았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만수의 시커먼 발바닥을 닦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김 노인은 자는 만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닦여 놓으니 불빛에서 유난히 얼굴이 빛난다. 맑고 환한 만수 얼굴.
“고놈. 날 닮아 인물 하나는 훤 ~ 하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김 노인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자는 만수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 본다. 눈가가 촉촉해진다.
“만수야!”
구포 댁이다. 손에 든 접시 위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김 노인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흉내를 낸다. 영천 댁도 덩달아 살금살금 부엌으로 들어와 접시를 올려놓는다.
“김치 찌지미 쪼매 해 봤네. 만수 깨모 같이 잡사!”
“매번, 신세만 지네. 고마워!”
“씰-데 없는 소리는 됐소!”
구포 댁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데 검버섯이 군데군데 핀 얼굴에 가득 함박웃음을 지으며 바쁜 걸음으로 마당을 나갔다. 김 노인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전을 보며 군침을 삼킨다. 찬장에서 접시 하나를 꺼내 전 세 장을 담았다. 그 위에 신문지를 덮어 찬장 위에 올려둔다. 그 옆 작은 찬장을 열어 김치와 먹다 남은 소주병을 꺼내 양철 밥상 위에 놓는다. 그리고 남은 김치전이 든 접시를 올려놓았다. 김 노인은 밥상을 들고 자는 만수 발치로 가서 앉았다. 한쪽에 놓인 오래된 브라운관 텔레비전 앞으로 또 엉덩이를 밀며 다가간다.
전원 버튼을 눌렀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드라마가 나오자 그대로 놓아둔 채 다시 엉덩이를 뒤로 밀어간다. 김 노인은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소주를 부어 한 잔 마신다. 젓가락으로 전을 떼서 입에 넣으면서도 눈을 떼지 못한다. 드라마를 보다가 큰 소리로 웃어대기도 한다. 또 연방 눈물이 글썽이기도 한다. 어느 틈에 잠에서 깬 만수는 반쯤 졸린 눈으로 김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할아버지, 뭐 먹어?”
텔레비전 소리에 만수 목소리가 묻혔다. 만수는 텔레비전에 넋을 놓고 들여다보고 있는 김 노인을 신기한 듯 보더니,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앉는다. 밥상 쪽으로 다가갔다. 젓가락으로 전을 짚다가 떨어져 잠시 눈을 돌리다가 옆에 붙어 앉은 만수를 그제야 발견한다. 김 노인은 만수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톡톡 친다.
“우리 강아지, 할아버지 땜에 깼구나!”
“배고파!”
“아이쿠, 그래, 그래! 우리 강아지 배 곯리면 안 되지!”
김 노인은 얼른 부엌으로 간다. 밥그릇과 국그릇을 꺼내 옆에 놓인 전기밥솥에서 밥을 푸고 냄비에 담긴 국을 떴다. 찬장을 열어 남겨두었던 전이 담긴 접시를 꺼내고 수저통에서 작은 수저를 한 벌 꺼내 온다. 그 사이 만수는 밥상 위에 놓인 전을 손으로 뜯어먹고 있다. 비운 전 접시 대신 새 전 접시를 놓아준다. 밥상 위에 그릇들을 하나씩 올려놓으며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는다.
“체할라. 천천히 많이 먹어라.”
고개만 끄덕인 채 숟가락으로 밥을 가득 푸는 어린 만수. 김 노인은 소주를 잔에 부어 마시면서 다시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다. 방 안에는 텔레비전 드라마 소리와 만수가 국을 후루룩 마시는 소리와 가끔 김 노인 기침 소리가 섞여 늦은 밤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멀리서 동네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5.
“김 씨. 내년에 여기를 철거하고 아파트 짓는다는 대.”
“무슨 소리야? 그럼 우리는 다 어디로 가고?”
“쫓기 나는 기지!”
귀 옆으로 희끗한 머리카락만 남은 옥천 최가와 김 노인이 서울상회 느티나무 아래 나무 의자에 앉아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소주 한 병과 김치 한 접시가 놓여 있다. 가게 안에서 영천 댁이 깻잎 장아찌를 한 접시 들고 나온다.
한가한 일요일 오후다. 만수는 아이들과 구멍가게 옆 우물가 공터에서 칼싸움을 하느라 한창이다. 옥천 최가와 김 노인은 소주를 서로 부어주며 한 잔 들이켠다. 구포 댁은 그 앞에 작은 나무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김치를 손으로 찢어준다.
“우리 겉은 사람들이 갈 때가 오데 있다꼬.”
구포 댁은 볼멘소리를 한다.
“아파트 분양 딱지 주- 봤자 돈이 있어야 입주 할 거 아이가!”
“그림에 떡이지 뭐.”
옥천 최가와 김 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연거푸 소주잔을 비운다. 영천 댁은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만수를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다.
“박 씨는 만수만 보고 있으모 밥 안 묵어도 배 부르겠수.”
“흐흐.”
김 노인의 입이 귀에까지 가 걸린다. 그때 만수는 아이들과 작은 플라스틱 칼을 들고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다.
“우리 만수 커서 장가가는 것도 보고 손자 낳는 것도 봐야지!”
“허허. 그 사람 욕심도 많다!”
그 소리에 다들 한바탕 웃어 댄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아이들의 맑은 소리들이 감천동네 골목을 퍼져 나가고 있다.
6.
“쿵 - 쿵 - 쿵”
늦은 오후, 김 노인은 어린 만수를 품에 꼭 안고 양 팔로 만수의 양 귀를 감싸 안는다. 김 노인의 품 안에서 만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그때 구포 댁이 달려 들어온다.
“하이고마! 옥천 최가가, 철거꾼들하고 몸싸움하다가 길바닥에 쓰러짔소!”
김 노인은 놀라서 구포 댁을 쳐다본다.
“우리 만수 좀 봐줘!”
구포 댁은 고개만 끄덕이며 허리를 구부리며 방 안으로 올라온다. 김 노인은 작은 새처럼 떨고 있는 어린 만수를 구포 댁의 품 안으로 밀어 넣고는 벽에 걸린 외투를 걸치고 나갔다. 쿵쿵 거리는 소리에 미닫이 문 쇠 소리는 묻혀 버린다. 만수는 구포 댁의 품에 안긴 채 밖만 쳐다본다.
“우리 집 부수러 오는 거야?”
“아이다! 설마, 사람이 나가지도 안 했는데 허물 것나?”
공중 화장실 입구에 동네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다. 포크 레인 몇 대가 골목 입구에 서 있고 철거반 인부들이 서 있다. 화장실 앞 골목 안으로 옥천 최가가 다른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머리에 피가 난 채 기다시피 온다. 이층 공부방 임 간사가 급하게 구급약 통을 들고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계단과 이층 공부방에 모여 있던 주민들이 서로 쳐다보며 긴장된 표정이다. 김 노인이 그때 골목에서 허겁지겁 내려온다.
“어찌 된 일이야?”
백만당 빵집 이 씨가 주방용 앞치마를 두른 채 화가 난 표정으로 서 있다.
“저 새끼들. 밤 안으로 다 까부술 기세요!”
“우리가 지켜 내야지!”
김 노인은 힘을 주어 말한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백만당 이 씨와 김 노인을 둘러싼 주민들이 우르르 골목을 벗어나 걸어갔다. 그들은 포크 레인과 철거반이 모인 곳을 둘러싸고 길거리에 그대로 주저앉는다. 철거반원들은 당황한 표정이다. 주민들의 눈빛에 간절함과 단호함이 깃든다.
“참-내. 일 쪼매 어렵게 하지 마시고 들, 오늘 해 안으로 다 철거해야 우리도 돈을 받지.”
“여기는 내 반평생 살아온 고향이다! 내 집을 누가 감히 부순단 말이야?”
김 노인은 목청껏 외쳤다. 다른 사람들도 둘러앉은 채 소리를 질러댄다.
“우리는 한 발짝도 못 나간다.”
“우리 밀고 가라!”
“그래! 내 집을 누구 마음대로 부수노?”
온 동네에 울려대는 소리.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도 원을 이탈하지 않았다. 늦은 밤, 포크 레인 기사들과 철거반원들은 인근 중국집으로 들어가 술을 마시며 앉아 있다. 주민들은 모두 그대로 부동자세다. 간간이 아낙들이 와서 물을 한 잔씩 주거나 주먹밥을 나눠 준다. 그들은 그대로 밤을 새우며 앉아 있었다.
자정 즈음, 철거반원들은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비틀거리며 고개를 숙인 채 돌아갔다.
“우리 너무 원망 마소. 시키는 대로 하고 돈이나 받는 기 우리 아이요!”
“몸 상하요. 고마 들어들 가고, 집들이나 알아보소.”
주민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밤바람을 맞은 채 그대로 앉아있다. 멀리 골목 입구에서 만수를 업은 구포 댁이 걸어온다. 김 노인은 양팔을 벌려 만수를 안으려 한다.
“잠들었수. 오늘 밤은 고마 우리 집에서 데꼬 잘라네.”
“고맙소.”
만수를 업은 구포 댁이 다리를 벌려 어기적거리며 골목을 기다시피 걸어 올라간다. 만수의 작은 엉덩이가 이리저리 움직인다. 어느새 김 노인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게 비친다.
7.
어린 만수는 구포 댁과 골목을 내달려 뛰어간다. 주민들이 전투 경찰들의 방망이에 두들겨 맞고 있다. 김 노인이 뒷머리를 잡은 채 끌려가고 있다. 경찰차에 짐승처럼 끌려 들어가는 마을 주민들.
구포 댁은 벌벌 떨면서 만수를 꼭 안고 골목에 숨었다. 만수가 김 노인을 부르려고 한다. 그때 구포 댁이 얼른 입을 틀어막는다.
끌려가는 사람들. 눈물이 가득한 채 바라만 보는 어린 만수.
“할 --- 배!”
어른 만수가 구포 댁의 굵은 팔 사이에서 버둥거리며 울부짖는다. 구포 댁, 있는 힘을 다해 만수를 끌어안은 채 눈물만 뚝 뚝 흘린다. 그때 만수가 구포 댁 팔을 떠나 울면서 달려왔다. 끌려가다 놀란 김 노인은 오지 말라고 울부짖는다. 그때 최루탄이 터졌다. 안갯속에 갇혔다. 기침을 하면서도 어린 만수는 김 노인에게 울면서 달려가면서 경찰들 다리를 잡아당긴다.
“우리 할배야! 안 돼!”
연기 속에서 갑자기 다리가 잡히자 놀란 전투 경찰이 미친 사람처럼 곤봉을 휘둘렀다. 뿌연 연기 속에서 무작정 휘둘러댄다.
순간. 만수가 땅 위로 툭- 떨어졌다. 바닥이 피로 물들었다. 연기가 조금씩 걷히고 그런 어린 만수 앞에 곤봉을 든 전투 경찰이 벌벌 떨며 서 있다.
8.
김 노인은 오후 햇살 가득한 마당 평상에 앉아 깊이 파인 주름 사이로 눈을 그윽하게 빛내며 하염없이 멀리 하늘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우리 만수였는데!”
김 노인은 갑자기 생각난 듯 급하게 창고로 달려간다. 구석 오래된 궤짝에서 방패연과 끊어진 얼레를 가지고 나왔다. 얼레에 쌓인 먼지를 입으로 후후 불었다. 빛바랜 연을 손질하고 실을 다시 이어 보았다. 그래도 쓸 만해 보였다. 천천히 얼레를 풀기 시작했다.
“어? 내 연이다!”
그때였다. 울타리 입구에서 만수 목소리가 들렸다. 김 노인은 반사적으로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진짜 만수다.
“만수야!”
김 노인은 얼레를 내던지고 달려가 만수를 끌어안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고 내 강아지! 어디 갔다 이제 왔어?”
김 노인은 어린 만수를 안아 평상에 조심스럽게 앉혔다.
“만수야, 우리 강아지!”
김 노인은 만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며 어루만졌다. 눈물이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러더니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만수야! 할배가 우리 만수 좋아하는 백숙 해 줄게! 다시는 어디 가지 마! 알았지?”
어린 만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김 노인은 결심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마당을 나섰다. 건너편 집 대문을 열고 안을 기웃대더니 구포 댁이 아래 마실 간 틈에 닭장에서 수탉을 그대로 집어 끌고 나왔다. 아직 살이 많이 오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여편네가 설마 내가 닭 한 마리 잡아 이십 년 만에 돌아온 우리 손자 먹인다고 난리 피우진 않겠지. 김 노인은 자기 맘대로 생각했다. 아니 단 한 번이라도 그렇게 자기 맘대로 하고 싶었다. 설사 닭 도둑이 될지언정. 손자를 위해.
해가 한 풀 꺾이고 있었다. 김 노인은 낡은 부엌 아궁이에 모처럼 불을 지피고 커다란 솥을 걸었다. 식칼을 들고 닭 모가지를 탁 비틀어 피를 뺐다. 파닥대던 닭이 순간 꼬꾸라져 축 늘어진다. 김 노인은 평상에 앉은 만수가 못 보도록 등을 돌렸다. 아이가 여리고 착해서 이런 걸 보면 아마 울고불고할 것이다.
펄펄 끓는 솥에 물을 떠서 커다란 양푼에 담았다. 닭털을 하나하나 뽑았다. 참 오랜만에 잡아본다. 만수 아비는 어릴 때 마당 구석에서 김 노인이 닭을 잡을 때면 징그럽다고 불쌍하다고 울고불고하다가 결국 뽀얀 백숙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넣어주면 눈물을 닦고 맛나게 오물오물 먹었다. 그러고 보니 만수가 태어나고 한 번도 옳게 닭 한 마리 잡아주지 못했다. 늘 그게 마음에 걸렸다. 이놈의 수탉이 아침부터 울어대더니 우리 만수가 오려고 그랬나 보다. 김 노인은 땀을 뻘뻘 흘리며 털을 다 뽑았다. 그리고 뽀얗게 생살을 드러낸 닭을 한 번 헹궈서 끓는 솥에 풍덩 집어넣었다. 구포 댁이 주고 간 말라비틀어진 마늘 몇 조각을 찬장에서 찾아 같이 넣었다. 딱히 넣을 게 없었다. 솥뚜껑을 덮고 그제야 허리를 펴고 마당을 쳐다보았다. 만수가 없었다. 김 노인은 놀라서 달려 나갔다. 구석 창고 안에서 그림들을 보고 있는 만수가 보였다.
“할배, 나 없는 사이 그림 진짜 많이 그렸네!”
김 노인은 그저 헐헐 웃었다.
“가만있어보자! 우리 만수 좋아하는 사이다 사와야 것다!”
“아이, 좋아!”
만수가 뛰어나와서 마당을 막 뛰어다닌다. 김 노인은 부엌에 끓기 시작하는 솥에 불을 조금 줄이고 아래로 내려갔다. 서울 상회 앞 평상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느티나무를 쳐다보며 김 노인은 빙긋이 웃었다. 만수가 이 느티나무에서 얼마나 많이 타고 놀았던지. 국제시장 극장을 돌며 간판 일을 할 때 이 느티나무에서 만수 아비도 늘 나를 기다렸지.
한참 느티나무를 물끄러미 올라다보고 있었다.
“김 씨요, 뭐 사러 왔능교?”
김 노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사이다 두어 병을 사서 들고 나왔다.
“손님 왔능교?”
가게 주인 서울 댁이 따라 나오며 묻는다.
“우리 만수가 왔어!”
“야? 뭐라꼬요?”
평상에 모인 사람들도 그 말에 놀라서 김 노인을 쳐다본다. 이 십 년 전에 죽은 아이가 어떻게 돌아올까. 사이다 든 봉투를 품에 끼고 다시 골목을 따라 올라갔다. 김 노인의 구부정한 등을 쳐다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쯔쯧, 우짜노! 노망이 왔는 갑네!”
김 노인은 숨을 가쁘게 내 몰아쉬면서 한 걸음이라도 빨리 걸으려고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돌아온 손자와 몇 분도 떨어지기 싫었다. 급하게 마당으로 들어오니 만수는 그대로 평상에 앉아 연을 날리고 있었다. 휴- 다행이다. 솥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뚜껑을 열어 재치니 뽀얀 국물이 군침을 돌게 했다.
김 노인은 평상에 상을 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백숙을 쟁반에 가져 나왔다. 만수는 작은 손으로 박수를 막 쳐댔다. 김 노인은 맨 손으로 백숙을 먹기 좋게 찢어 만수 입에 넣어주었다. 오물오물 잘도 먹었다. 김 노인은 뼈에 발린 살을 뜯었다. 만수는 닭고기를 오물거리며 씹다가 김 노인 입에 한 점 넣어준다.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 김 노인은 그저 만수에게 고기를 다 찢어주고 남은 닭 뼈만 씹어 먹었다. 그리고 국물을 한 사발 마셨다. 시원하다.
“할배, 나 그려줘!”
김 노인은 닭 뼈를 들고 줄줄 빨면서 허렁허렁 웃어댔다.
“암, 암. 우리 손자 얼굴 내가 그려줘야지!”
백숙을 맛있게 뜯어먹고 대충 손을 옷에 문지르고는 창고에서 화구상자와 그림 도구를 가지고 나왔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김 노인은 마당에 전구를 켰다. 야간작업이 많아 마당 군데군데 전구가 달려있었다. 만수는 닭다리를 뜯으며 앉아있었다. 김 노인은 만수 얼굴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아랫배가 살살 아팠다. 오랜만에 기름이 들어가 배가 놀랬나 보다.
늦은 밤까지 김 노인은 만수를 그렸다. 자정이 다 돼서야 겨우 완성했다. 만수는 닭다리를 입에 물고 잠이 들었다. 김 노인은 손에 묻은 물감을 문지르고는 자는 만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아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두 번 다시 손자를 놓치지 않을 거다!
새벽 네 시. 닭은 울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 습관은 무섭다. 감천 사람들 하나 둘 깨어났다. 구포 댁도 일어났다. 모처럼 영도에 사는 딸네 집에 갔다가 늦게 돌아와서 닭장을 쳐다볼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닭이 울지 않았다. 구포 댁은 이상하게 생각해서 뒤뜰 닭장 문을 열었다. 그제야 닭이 사라진 것을 알고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이 놈으 영감탱이! 내 없는 새 닭 잡아 묵었구나!”
화가 나서 대문을 박차고 김 노인네 쓰러져가는 나무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갔다. 평상 위에 백숙 솥이 떡 하니 놓여있었다. 그런데 뽀얀 살만 수북하게 상 위에 올려져 있고 뼈들은 죄다 살점 하나 없이 반들반들하다. 닭 뼈를 씹어 채 못 삼키고 뱉어 놓은 것들도 수북하다. 그리고 어린 만수 얼굴이 그려진 그림 하나가 놓여 있었다. 구포 댁은 만수 얼굴을 보더니 놀라서 한 걸음 주춤 물러난다.
“이 뭐시고?”
순간 섬뜩해서 방으로 뛰어가 문을 열어재꼈다. 베개를 꼭 끌어안고 김 노인이 잠들어있었다. 아니 머리를 하늘로 치올리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죽어있었다. 구포 댁이 놀라서 뒷걸음질 치며 소리를 질러댔다.
“아이고, 아이고, 이 무슨 일이고?”
멀리 동이 트려는지 감천 앞바다가 핏빛으로 벌겋게 물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