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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31. 2024

열정과 냉정 사이

8화

동료 교사 가운데 정년퇴직을 칠 년 앞둔 여교사가 있다.


"이제는 정말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그분은 학년부장 칠 년을 했던 완전 베테랑 교사다.

학년부장교사는 보통 큰 학교에서는 담임을 하지 않는다. 물론 담임을 하기도 한다.

아무튼 학년부장이 되면 그 학년의 모든 학생에 대한 생활지도 및 출결이나 학년 내 행사 등을 총괄한다.


자나 깨나 수백 명 아이들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요즘 일선 학교에서는 학년부장과 인성부장은 기피 업무가 되어가고 있다.

그만큼 많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런 기피 업무를 7년 연달아했다는 것은 열정이 뿜뿜 했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승진에 목숨을 건 분도 아니다. 어쩌다 보니 그 업무를 7년 한 것이다. 

왜? 

잘하니까. 책임 있게 잘하니까 전출을 가도 그 꼬리표를 달고 다시 부장을 한 것이다.


그런데 올해 새로 부임한 이 학교에서는 담임업무만 하시고 어떠한 부장 직책도 맡지 않았다.

이제 정말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러다가 쓰러질 것 같았다고도 했다.


이 분은 지금 자신을 위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냉정해지기로 결심한 것이다.


보통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기간제 교사든 운 좋게 임용합격 후 신규 교사로 발령이 나든, 초심은 모두 같다.


잘 해내야지!

열정 뿜뿜이다. 

그토록 원했던 교사니까, 이 귀여운 아이들에게 늘 존중하고 살뜰히 살펴야지!


그러나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그들은 점점 지쳐간다.

열정은 상처를 주고 사랑은 자신을 무기력하게 한다. 

초임 때 자취방에서 밤마다 맥주 캔을 던져가며 울기도 많이 한다. 


"이런 게 교사라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


점점 자신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냉정해지지 않으면 자기가 다친다. 그리고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이들에게 마음의 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미간을 찌푸리고 다닌다.

냉정해지자, 냉정해지자!


다들 떠난 텅 빈 교실에 아이 하나가 남아 공부를 하고 있다.


"선생님, 이 문제 잘 안 풀려요! 도와주세요!"

"어? 그래, 그래!"


순간, 냉정이고 뭐고 그냥 다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퇴근 시간도 잊은 채 아이의 나머지공부를 도와주다가, 아이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다음부터 아이가 늦어지면 연락 좀 부탁드려요. 과외선생님이 30분이나 기다리셨는데...."


역시! 나는 과외선생님보다 헐값의 담임이었다.



<불량교사 지침서 8>

"어머니! 학교를 믿지 않으시군요! 그럼 이제 저도 어머니를 믿지 않겠습니다!"


이건, 좀.... 너무 냉혈안인가...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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