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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Jun 06. 2024

신데렐라의 호박

10화

얼마 전부터 우리 엄마는 텃밭을 가꾸신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호기심 천국인 내 성격은, 아마도 엄마를 닮은 것 같다.

아마 내가 말을 하고 평범했다면, 엄마랑 세계일주라도 했을 것이다.


10평 남짓한 텃밭을 분양받아, 상추며 고추며 가지들을 심으셨다.

며칠 후면 호박을 심을 거라고 들떠 있는 우리 엄마.

내 아침 식사용 단호박, 누런 호박, 애호박 이렇게 모종을 주문하셨다.


그래서 오후에 엄마는 나를 차에 싣고 밭으로 향했다.

나를 차에 앉혀놓고 한참을 삽질이며 괭이질을 하시더니 구덩이에 뭔가를 잔뜩 넣으신다.


그리고는 풀도 뽑고 비어있는 밭에 뭘 심을지도 고민하시고 물도 흠뻑 주신다.


"지민아! 호박이 누렇게 익으면 우리 신데렐라 호박마차 만들까? 하하하!"


우리 엄마는 성격이 아주 호탕하다. 

이런 성격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오래전에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로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외할머니가 그러셨다.

아니면 보호본능이 강하게 작용하여 엄마의 성격을 이렇게 바꿔놓은 걸까.


늦봄의 논밭은 뭔가 간질간질하다.

논에는 물이 찰랑찰랑하고 부지런한 농부는 모내기를 끝냈다.

밭에는 오이며 가지며 고추가 자라기 시작한다.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앗!"


작업을 마치고 트렁크에 신발이며 작업물을 싣던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차 열쇠를 트렁크에 넣고 닫아버린 것이다.

우리 엄마는 좀 많이 덜렁이다.


문제는 내가 여기 차 안에 갇혀있다는 거다.

다행히 창문은 활짝 다 열려있었다.


엄마는 너무 당황해서 출동서비스를 부르더니 열쇠집도 불렀다.

엄마차는 오래되어서 트렁크가 잠기면 키 리모컨이 없으면 열리지가 않는다.


40분이나 기다려야 열쇠집에서 온다고 했다.

엄마는 차 옆 바닥에 주저앉아서 창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진짜 미안해, 지민아!"


나는 차에서 졸았다. 누런 호박이 마차로 변신하는 꿈을 꾸었다.

밭에 있는 호박들이 나를 향해 막 날아오기도 했다.


놀라서 벌떡 눈을 뜨자, 엄마가 차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휴- 다행이다.


엄마는 알까?

엄마의 덜렁거림 덕분에 나는 잠시 신데렐라가 되어 호박마차를 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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