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얼마 전 내 생일이었다.
25번째 생일이다.
그날 엄마는 내게 생활한복을 입혀 주간보호센터에 보냈다.
선생님들이 모두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셨다.
내 또래 긴 머리 여자애가 자꾸 다가와서 한복 치마를 만지작거렸다.
짜증이 났다.
그래서 몸을 확 돌려버렸다.
그 아이는 소리를 질렀다. 표정으로 봐서는 질투와 시샘과 화가 뒤섞여 보였다.
그냥, 조용히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봤다.
휴-
"지민 씨, 뭐 해요?"
선생님이 불렀다.
나는 모른 척했다. 하기야 어차피 말을 못 하니 다들 못 알아듣는 걸로 생각한다.
편리하다. 가끔은.
25번째 생일.
나는 여기 지구에서 25년을 살아냈다.
휴-
내 25년은 엄마의 한숨과 눈물과 분노와 인내와 사랑의 혼합 결과물이다.
나는 생후 24개월에 급성패혈증으로 죽기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그때까지도 나는 앉지도 일어서지도 못하고 기어만 다녔다.
엄마는 열이 40도가 넘는 나를 업고 병원 로비에서 엉엉 울었다.
그때 우리 엄마 나이는 겨우 서른 살이었다.
바로 아래 동생이 태어난 지 백일밖에 안 될 무렵이었다.
온몸에 세균이 번져 가망이 없다는 말에 젊은 엄마와 아빠는 눈물을 쏟았다.
작고 연악한 내 몸에, 심장으로 바로 통하는 관을 삽입하고 항생제와 영양제를 투입했다.
지금도 목 아래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때 나는 아픔을 모를 정도로 혼수상태였다고 한다.
엄마는 가끔
"우리 지민이, 정말 용감하지. 그 아픈 걸 다 참아내고!"
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정말 용감한가?
병원에서 한 달 넘게 미음 한 숟가락 못 먹고 영양제로만 버티며 겨우 살아났다고 한다.
그 한 달. 우리 엄마는 영유아 중환자실 작은 침상에서 매일 새우잠을 잤다.
처음 내가 혼수상태였을 때 엄마는, 거의 2주일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음식도 못 먹었다고 한다.
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먹어도 모래알 씹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런 내가 한 달 뒤 회복되면서, 침상 난간을 잡고 앉았다고 했다. 그전에는 혼자 앉는 것조차 어려웠단다. 엄마와 병실 사람들은 기적이라며 기뻐했단다.
나는 이렇게 엄마의 애간장을 태우며 25년을 살아냈다.
동생들은 모두 학업으로 타 지역에 있어서 조촐하게 엄마와 아빠와 나만 생일파티를 했다.
엄마는 아주 오랜만에 내 생일케이크를 직접 만들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자주 만들어주셨는데....
엄마는 생크림을 넣은 볼을 30분째 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맞나?"
자동거품기가 없어서 수동거품기로 하신다. 흐흐흐. 우리 엄마는 좀 많이 아날로그다.
시트 안에는 엄마가 작년에 만들어둔 산딸기잼을 넣고 겉은 생크림으로 덮어서 하얀 케이크가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내 생일 케이크다.
엄마가 동생들에게 케이크 사진을 문자로 보내신다.
"와! 이거 뭐예요?"
"우아! 내 생일 때도 해 줘요!"
역시 동생들은 동생이다!
나는 세상에서 울 엄마가 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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