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그리고, 아무....
한 달쯤 있으면 학생들은 1학기 2차 고사를 친다.
나는 주요 과목은 아니어서 큰 부담이 없다.
그러나 성적에 아주 예민한 학군이나 지역에 가면 교사들은 시험 스트레스로 힘들어한다.
특히 국영수 같은 중요과목은 가장 심하다. 물론 고등학교는 더욱 심하다.
내가 근무하는 이 지역도 몇 남지 않은 비평준화 중학교여서 시험 기간만 되면 다들 예민하다.
왜냐하면, 시험이 끝나고 점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민원전화가 많이 오기 때문이다.
겉에서 보면, 교재 연구 잘해서 시험을 잘 내면 되지 않느냐고도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일 년에 4번이나 출제를 해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오는 모순도 만만치 않다.
일반인들이 아는 문제집 출판사나 모의고사나 수능문제들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어 오랜 시간 밤낮없이 연구해서 출제하기 때문에 사실 아주 완벽해야 한다. 그러나 매년 그렇지만은 않다.
하물며 연간 4회를 출제해야 하는 교사들은, 잡무에 시달리고 담임 업무까지 하면서 틈틈이 문제를 출제한다. 사실 교재 연구를 느긋하게 할 여유도 별로 없다. 그런 완벽한 교사가 되려면 퇴근 후 항상 책상 앞에서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 또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교사들은 시간 많잖아? 중학교는 4시 30분에 퇴근하면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주변 많은 교사들이 그 시간에 퇴근을 하면 집에 가자마자 소파에 드러눕는다고 한다.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온몸은 파김치가 되어 들어가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 과연 우리는 가정을 지키지 말고 교재 연구하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시험을 치고 나면 가장 많이 오는 전화가 이런 종류이다.
"OO이모인데요, 수학 7번 문항 정답에 오류가 있어서 전화드립니다. 확인해 주세요!"
"PP고모인데요, 네이버 검색해 보니 이 단어 뜻이 다양하고 우리 아이가 쓴 답안도 해당되는 것 아닌가요?"
이 고모와 이모들은 대부분 사설 학원 강사들이다.
교사들은 이 지점에서 항상 분노한다.
그리고 무슨 죄인이라도 된 듯 당황해해야 하고 맞서 싸워야 하고 지켜내야 한다. 왜? 무엇을 위해서?
우리를 왜 존중하지 않느냐고?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대한민국 학원가는 벌써 학교를 오래전에 앞질렀다!
<불량교사 지침서 10>
- 이모님, 학교로 오셔서 말씀하시지요. 정식으로 민원 신청하시고요. 오시면 제가 정확하게 오답인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