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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Oct 22. 2023

닮았다는 말은 너무너무 흔해

누굴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그 닮았다는 게 그때그때 다르다. A는 날 보고 P를 닮았다, B는 날 보고 Q를 닮았다, C는 날 보고 R을 닮았다, D는 날 보고 S를... 늘 이런 식이다.


대상 자체도 다양하지만 직업군도 퍽이나 다양해서 무슨 운동선수일 때도 있고, 방송인일 때도 있고, 코미디언일 때도 있고, 기업인일 때도 있고, 나는 모르는 자기 지인일 때도 있다(“나 아는 누구 닮은 것 같아”). E.T.나 에일리언 이런 것까지 가진 않은 걸로 위안을 삼자니 처량하기 그지없다. 머릿속에 뭉게뭉게 흰구름이 피어오르고 내가 아주 그냥 환장해서 꽥 돌아가시겠다. 그래서 난 도대체 누굴 닮은 건가?


가장 좋지 않을 때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가 그럴 때다. 날 가리키며 사람들에게 "누구랑 닮지 않았어요?" 이러면서 동의를 구하기. 그럴 때는 단순히 기분이 별로인 걸 넘어서 뭔가 억울한 느낌마저 든다. 억울하게 닮음을 당하는 느낌.


언제부터 이런 말을 들었더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꼬마일 때도 그랬다. '엄마 닮았다' '아니, 아빠 닮았다' '아냐 엄마를...' 보는 사람마다 이런다(아주 그냥 패싸움이라도 날 판이다). 그렇게 수백 가지 특징들 중 한 가지만 비슷해 보이면 대뜸 닮았다고 해 버리는 게 싫었다. 하루는 누군가가 엄마 아빠 중 누굴 닮았냐고 묻는다. 양쪽 모두 안 닮았다고 하니 그럼 누구 닮았냐고 묻는다. 이런 미네랄, 누군가 한 명은 반드시 닮아야 하는 거구나. "옆집 아저씨요~" 했다가 뒈지도록 혼꾸녕이 났다.




'○○랑 닮았네요'라는 말에 이유도 모른 채 기분부터 나빠지는 건 그 말이 암묵적으로 품고 있는 과잉 일반화 때문이다. 여기 ○○에 아무리 잘생긴 사람을 집어넣어도 별로이긴 마찬가지다. 무수한 특징들 중 한두 가지가 조금 비슷할 순 있겠지만 그걸로 마치 도플갱어처럼 말하는 건 그 ○○가 무엇일지라도 즐겁지 않다(단 하나의 예외는 그 ○○가 나와 연인 관계인 사람일 때뿐). 인기 많고 돈도 잘 버는 유명 연예인을 닮았다 할지라도 난 짝퉁일 뿐이다. 잘생긴 사람의 짝퉁보단 썩 잘생기지 않아도 남들 앞에서 단일하고 고유한 나 자신이기를 더 원하는 건 나만 그런 걸까?

닮았나? 전혀 아닌데. 둘 다 베이글이고, 둘 다 작다는 것 말곤.

어쩌면 누군가를 가장 존중하는 건 그 사람의 고유성에 주목하는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 한 선생님은 나를 아예 이름을 부르는 대신에 1년 내내 한 방송인의 이름으로 불렀고 그때 그 선생님이 이유도 모른 채 그렇게 싫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실제로 그 선생님은 나중에는 내 진짜 이름조차 까맣게 잊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도 '누구랑 닮은 누구'가 아니라 '그냥 나'이길 원한 건 아니었을까? '누군가와 닮은 나'가 아니라 '이러이러한 이유로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나'로 기억되길 원한 건 아니었을까?


알고 있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쁜 의도가 있지 않다는 걸. 오히려 호감 표현이나 칭찬의 의도일 때도 많다는 걸. 아니, 칭찬까진 아닐지라도 최소한 비난의 의도로 그러는 사람은 드물다는 걸. "어찌나 못생겼는지 메주인 줄 알고 된장을 담그려 했지 뭐야." 이런 식의 말과 견줄 말은 최소한 아니라는 걸.


그들의 악의 없음을 잘 아는 이로서 하나만 부탁하고 싶다. 굳이 누군가의 특성을 꼭 말하려거든 이왕이면 남과 비슷해 보이는 걸 말할 게 아니라 남과 다른 그 사람만의 것을 말하면 어떨까. 정말 누군가를 귀히 여긴다면 오히려 그쪽이 그 마음에 훨씬 가까운 말이 되지 않을까.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 같진 않다. 닮았다는 말 자체가 대상을 자기의 판단 아래에 두는 행위로 느껴져서 별로인 나와 같은 케이스도 있지만, 누구를 닮았다고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 사람들 말로는 자기가 봐도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이면 기분이 좋고 그게 아니면 별로라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를 닮았다고 할 때 듣는 사람 기분이 좋아질지 나빠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때 보통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지만 그 웃는 게 실제로는 웃는 게 아닐 수도 있다. 하나 분명한 건, "누구 닮으셨어요"라고 했을 때 상대방이 진심으로 기뻐할 확률은 말하는 사람이 어림잡는 것보다는 많이 낮고, 불확실하다.


그런 말들이 있다. 당연히 좋아할 줄 알고 말해도 듣는 쪽이 좋아한다는 보장이 없는 말. 특별한 의도 없이 그저 느끼는 대로 말했는데도 듣는 쪽이 높은 확률로 싫어하는 말. 이런 말들을 더 찾아보고 싶다. 좋은 말을 배워서 많이 알기보단 그리 좋지 않은 말을 더 많이 알아 두고 싶다.


그리고 그런 말을 안 쓰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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