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온다. 온몸에 경련이 일어난다. 머릿속에 흰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오래전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말로 '아햏햏'하다. 그런데 이것의 발음을 아직도 모른다. '아해해'인가, '아행행'인가, '아햇햇'인가? 당시 백방으로 물어보고 다녔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고 요즘은 더 없을 테지. "당신, 혹시 일제강점기 사람 아니오?" 이런 말이나 안 돌아오면 다행이지. 그러니 궁금증 해결은 포기하는 걸로.
아, 무슨 말을 하고 있었지? 맞다 전화. 흠흠. 난 전화가 싫다. 대출, 보험 권유, 설문 요청 등 스팸 전화임을 확인하는 순간 짜릿한 희열을 느낄 정도다. 콜센터 영업 직원님들 고맙습니다.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지만 실은 좋아해요(아, 오해하진 마세요. 전화를 안 받는 것까지 부끄러워서 그런 건 아니니까요. 그냥 받기 싫어서 그래요. :P).
어떤 기사에선 전화 공포증은 MZ세대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라 한다. 개인적인 성향이 있는 이들이 팬데믹 이후 비대면 소통에 더욱 익숙해져서 나타난 신종병이라 한다. 그런데 전화 기피증을 가진 사람은 분명 예전에도 많았는데 그걸 특정 세대의 결핍인 양 다루는 게 옳은 걸까. 나도 휴대폰은커녕 삐삐조차 없던 시절 아버지가 닭 한 마리 배달시키라고 하셨는데 그걸 못 해서 치킨집에 삘삘 뛰어가서 사들고 온 적이 있다(※요즘은 배달앱이 있어서 좋다. 3천 원 정도 배달비가 붙는데 "하루종일 땅 파면 3천 원 나오냐?"라는 말도 많이 들어 봤지만 내겐 그야말로 구세주이다. 무슨 dog baby냐, 땅을 파게? 그리고 3만 원이라면 모를까, 3천 원은 나올 수도 있는뎁쇼?).
전화를 받기도 걸기도 싫어하는 건 그 후로도 여전했고 한동안 나는 내가 내향적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모든 상황에서 내향적이진 않은데 대체 나의 이 기이한 증상은 뭘까 싶어 검색을 해 보니 '폰포비아(전화공포증)'라는 말이 나온다.
상반된 감정이 묘하게 교차했다. 이런 말까지 있다는 건 나만 그런 게 아니란 거니까 무슨 합리적 해명 논리라도 생긴 듯한 안도감이 들었지만, 수백 명 앞에서 스피치하고 강의하는 건 전혀 긴장하지 않고 코미디언처럼 곧잘 웃기기도 하면서 정작 한 명 상대하는 전화에 공포를 느끼는 나는 대체 어찌 된 놈인가? 이런 미네랄...
내 휴대전화 기본설정은 무음이다. 진동도 아니고 아예 무음이다. 전화가 울리면 내 신경에 물결이 이는 게 싫고, 좀 더 근본적으로는 내 삶을 내 속도로 살고 싶어서이다.
보통은 연락 온 번호들을 확인하고 내가 선택적으로 전화를 하는 식이다. 하지만 그 역시 마지못해서 할 때가 대부분이다.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때의 어색한 침묵이 두렵다. 생각을 정리할 틈이 없이 상대의 말에 실시간으로 즉답을 해야 하는 것도 내겐 쉽지 않다. 혹시라도 상대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까도 걱정이다. 내 생각을 풀어 설명하는 것도 전화로는 이상하게 쉽지 않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가족이나 친척도 예외가 아니다.
받기, 걸기뿐 아니라 끊기도 어렵다. 통화가 끝나고도 자꾸 대화를 곱씹고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되새긴다. 많은 사람들은 전화를 하기 전에 미리 대본을 만들라고 말하지만 그건 할 말을 잊어버리지 않는 데에는 도움이 되어도 전화 기피증 자체는 그대로였다.
카카오톡 등 대체 연락 수단이 많아진 지금은 전화 통화가 이루어지려면 여러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내가 전화가 가능할 때 상대도 가능해야 한다. 둘째, 양쪽 다 소란스럽지 않은 곳에 있어야 한다. 셋째, 대화가 길어질 것까지 감안해서 양쪽 다 넉넉한 시간을 확보한 상태라야 한다. 넷째, 받는 쪽은 거는 쪽에게 그런 시간을 기꺼이 내어줄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 넷 중 하나라도 들어맞지 않으면 통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만약 '언제든, 별로 할 말이 없어도' 통화를 할 수 있으려면 더 까다로운 조건들이 추가된다. 일단 그 사람의 목소리를 장시간 듣고 있어도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 서로 말이 없어도 그 조용함이 어색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 사람한테서 전화가 온 것을 인지하는 순간 내 안에 꽃이 방긋 피어야 한다. 벌써 여기까지만 해도 조건이 몇 개인가.
이런 사이는 내 기준에서는 아주 특별한 사이다. 그건 곧 말없이 이어지는 침묵을 견뎌 줄 사이며, 투정을 들어줄 수 있는 사이며, 별 내용 없는 말도 기꺼이 끝까지 들어주려는 사이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할까 두근거리고, 듣고 보니 별 거 없어도 목소리만으로 좋고, 침묵 속에 가늘게 전해지는 숨소리도 더 가까이 끌어당기고 싶은 사이. '전화하는 사이'라는 말이 주는 애틋함은 내겐 결코 가볍지 않다.
있잖아... 우리 무슨 사이야?
응, 전화하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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