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다리는 걸 싫어한다.
음식을 배달시켜 놓고 늦게 오면 신경이 곤두선다. 밥을 안치고 기다리지 못해서 반찬만 먹고 배불러 버려서 나중에 다 된 밥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 일쑤다. 영화를 보기 전에 스토리가 궁금해서 미리 찾아보다가 우연을 가장하여 스포일러를 보아 버린다.
나는 기다리는 걸 싫어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기다린다. 한참 됐는데 내 번호가 불리지 않는다. 슬그머니 약이 오른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달랑 한 잔인데 앞에 단체 손님이 있어서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거면 그냥 한 잔인 나 먼저 해 주면 안되나? 어차피 여기 온종일 있을 거긴 하지만 오래 걸릴 것 같으면 미리 말이라도 해 주지.
인간은 기다리는 동물이다. 우린 우리 자신도 모르게 삶의 대부분을 뭔가를 기다리는 상태로 살아간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린다. 맛집 웨이팅을 걸어놓고 기다린다. 불판 위에 올려놓은 고기가 익기를 기다린다.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린다. 퇴근 시간을 기다린다. 저녁 약속 시간을 기다린다. 어디 여행 갈지 찍어 놓고 주말을 기다린다. 세상에, 내 삶에 기다림 아닌 게 없구나.
학생은 방학을 기다리고, 군인은 제대를 기다린다. 헤어진 연인은 그리운 사람을 기다린다. 오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 기다린다. 희망과 따스함으로 가득한 세상을 기다린다.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없는 세상을 기다린다. 소외되는 사람 없는 세상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저마다 약간의 아픔을 머금고 있다. 마음이 아프든 다리가 아프든 조금은 아프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다림이 없다면 그 삶은 얼마나 삭막한가.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무슨 생각을 해?
그 일이 끝나고 할 즐거운 일을 생각해.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기다림은 힘들지만 그 끝점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에 기다림을 견딜 수 있음을. 그 기다림을 위해서는 작은 몸짓이 필요함을. 마음만 있고 몸짓 없는 기다림은 없음을.
봄이 오면 기다리는 게 있다. 피어난 모란꽃을 보는 것.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다른 꽃들은 흔해서 굳이 작정하고 기다리지 않아도 보게 된다. 봄엔 어딜 가도 벚꽃이다. 여름엔 어딜 가도 능소화다. 가을은 어딜 가도 코스모스다. 하지만 모란은 드물다. 어디서 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절에 가면 있다는데 있긴 뭐가 있냐? 흥.
개화 기간도 길어야 3일. 조금만 잊고 있으면 이미 피었다 지고 없다. 모란은 늘 그렇게 나 몰래 피었다가 나 몰래 진다. 오랜 기다림을 비웃듯 눈 깜짝할 사이에 스쳐 지나가는. 우리가 늘 기다리는 무언가도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간절하게 기다리다 한눈파는 사이에 올 봄은 오지 않고, 피는 꽃도 보지 못하고, 그게 지나간 줄도 모르는.
우리 삶도 늘 활짝 피어있을 수 없다. 우린 모두가 꽃이라지만, 피지 않았다고 꽃이 아닌 게 아니라지만, 실제로는 꽃 아닌 나무로 있는 시간이 훨씬 길다. 활짝 핀 날만 찬란한 날이 아니라 묵묵히 견디고 기다리는 시간도 삶의 소중한 시간이다. 김영랑 시인은 모란이 지면 한 해가 다 가고 말아서 하냥 섭섭해서 운다고 말한다. 울면서 내년의 모란을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나도 그처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있을까. 나에는 무엇이 내년의 모란일까. 나는 그걸 기다리며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기억한다. 어릴 때 어머니가 참외보다 큰(진짜로 참외보다 컸다)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밥을 가득 넣고 뚜껑을 덮어 아랫목에 두고 이불을 덮어 놓던 모습을. 아버지가 금방이라도 집에 들어서면 바로 꺼내어 앞에 놓으려고 하셨겠지. 그땐 몰랐는데, 이젠 안다. 마냥 마음으로만 기다릴 순 없음을. 기다림을 위해서는 우린 작은 물결이라도 되어야 함을.
차를 운전한다. 사거리의 빨간 신호에 멈춘다. 무슨 신호 간격이 이렇게 길까.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옆에 있는 사람을 꼭 끌어안는다. 나는 눈을 감는다. 그도 눈을 감았을까. 눈 뜨고 확인해 볼까. 아니지, 혹시 그도 나와 같은 게 궁금해서 눈을 뜬다면... 시간이 멈춘다. 바람이 멈춘다. 새들도 나무들도 숨을 죽인다. 뒤의 차가 경적을 울린다. 나도 알아요. 기다려요. 하긴, 소리도 물결은 물결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