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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Jun 27. 2023

자기계발서와의 거리두기


때는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미국은 일본과의 태평양전쟁에서 작전에 투입되었던 전투기를 분석한다. 분석 결과 살아 돌아온 전투기들은 날개와 꼬리에 총탄을 많이 맞았고, 미국은 그 부분의 장갑을 강화하려 했다.


여기서 한 연구원의 다른 주장. 전투기의 모든 부분은 피격당할 확률이 동일하고, 살아서 돌아온 전투기의 조종석과 엔진 부분만 피탄 흔적이 없는 건 거기를 맞으면 아예 격추되어 생환하지 못했다는 얘기니, 날개와 꼬리 말고 역으로 조종석과 엔진 부분의 장갑을 강화해야 한다고.

당시 미국 해군의 분석 자료

데이터가 '팩트'라는 가면을 쓰고 사람을 속이는 흔한 방법이다. 정작 회사에 불만을 가지고 이미 나간 사람들이 빠진 직원 만족도 조사 결과로 '우리 회사 좋은 회사'라고 자뻑한다. 스마트 스토어 창업하고 유튜브 해서 대박 난 이야기, 누가 명문대 합격한 이야기, 비트코인으로 대박 난 얘기를 들으면 환상에 빠진다. 여기서 이런 성공사례들 속의 실패까지 아예 성공으로 가는 과정으로 인식해 버리면 그야말로 헤어날 수 없는 정신승리에 빠진다. 그런데 몇 명이 똑같은 시도를 했으며 그만큼(아니, 그보다) 열심히 노력했으며 몇 명이 실패했는지 우린 까맣게 모른다. 우리 눈에 보이는 건 나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뿐.


자기계발서를 보며, 생존자 편향을 떠올린다. 성공한 이들만 보고 공통점을 추려 성급하게 일반화하거나 '난 열씨미 노오력해서 이렇게 됐으니깐 너희들도 나처럼 노오력하면 성공할 수 있어' 이런 식의 주장을 접할 때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생존자 편향 때문에 거리를 두고 싶다. 누구도 이런 착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나만 예외일 이유가 없으니까. 타이슨 형님이 그랬지, "뒈지도록 뚜드려 맞기 전까진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이 형님 요즘 잘 지내시나 모르겠네...

그런 책들에 한동안 심취했던 적이 있다. 시중의 거의 모든 자기계발서를 나오는 족족 섭렵하던 때가 있었다. 현자들이 인생 성공의 비결을 이렇게 대방출해 주는데 도대체 이 맹꽁이는 그동안 뭘 하고 살아왔단 말인가? 한탄하고 자책하면서. 자기계발서는 바로 나처럼 이성적 사고에 취약한 사람들의 생존자 편향을 먹고 산다는 걸 한참 지나 깨닫기 전까지는.




나는 통찰 능력이 좋은 편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다행히 아예 없지는 않았나 보다. 읽고 읽고 또 읽다가, 어느 날 이 책들의 진짜 의도가 돌연 궁금해졌다. 저자들은 진짜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었을까. 캄캄한 세상에 내팽개쳐진 인생 후배들이 정말 안타까워서 한 줄기 빛이 되어 그들을 밝은 길로 인도하고 싶었을까.


정 그런 거면, 아예 무료로 풀어야 한다. 그러지 못할 거면 차라리 진솔하게 '난 책 써서 돈을 벌고 싶다'라거나, '내가 이런 사람이야 하고 자기PR을 하고 싶다'라고 밝히는 게 낫다. 하나같이 중생을 구제하고자 와룡공명이 출려하듯 나섰다는 듯한 스탠스를 취하는 모습이 한없이 불편하다. 정작 외치는 내용들을 보면 철저히 관리자의 입장에서 말할 뿐 독자가 잘되는 건 그다지 관심도 없어 보이는데.

그래서 행복하십니까. 종나리 행복하십니까. 그리고 무슨 공동묘지입니까, 뼈를 묻게?


자기계발서와 거리두기를 하고 싶은 또 하나의 이유는, '성공한 인생'을 너무 좁게 정해 버려서이다. 저마다 성공한 인생의 요건을 숨 막히게 늘어놓지만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책도 사람이 쓰는 거니 완벽함을 바라선 안됨을 안다. 그런데 그 빠진 뭔가가 누군가의 삶에서 정작 제일 중요한 거라면? 사랑하는 이를 좋아서 웃게 하고, 좋아서 울려 버리고, 시와 소설을 감상하며 내면을 돌보고, 글쓰기로 과거와 현재를 화해시키는 게 그 사람에게 가장 소중하다면?


하지만 자기계발서의 논리대로라면 이런 사람은 도태되어서 한 방에 뼈다귀도 없이 사라질 사람이고, 잠깐이라도 짬이 나면 그건 오직 더 큰 성공을 위해 쏟아부어야만 하는 시간이다. 모두들 나를 따르라, 새벽형 인간이 되라 한다. 여가 시간이나 주말에도 생산적인 것을 하라고 한다. 모두가 쉴 때 달려야 앞서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고 한다.


혹시 저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자기가 말하는 성공을 이루기만 하면 삶에서 다른 문제들은 알아서 해결된다고. 세상에 그런 성취도 있을까? 내가 알기론 없다. 모두에게 일반적으로 들어맞는 얘기를 하려다가 어느 누구에게도 들어맞지 않는 말이 되어 버리는 자기계발서의 역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싹튼다. 돈? 지위? 인기? 그 어느 것도 삶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주지 못한다. 오히려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 불균형적으로 망가진 삶만 무수히 보아 왔을 뿐이다.


그래, 거리를 두자고, 거리를.

어떤 책을 끝까지 읽고 아무런 울림도 받지 못한다면, 나에게 그건 단지 책값 몇 푼을 버리는 문제가 아니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허공에 날리는 일이고, 그게 아니었으면 했을 뭔가 다른 게 날아가 버리는 일이다. 시간을 화폐로 생각하면 많은 게 뚜렷해진다.  


어쩌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그 성공이 아니라 삶의 잃어버린 균형를 묻는 일 아닐까. 우리도 모르게 경시해 버린 많은 것들의 가치 회복은 아닐까. 언제부터인지 돈 되는 것 말고는 소중함을 잊어버린 우리들 아닌가. 우리가 얻은 것은 진정 무엇이며, 우리가 잃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너무 좁은 의미의 성공에서 잃어버린 균형을 묻는 목소리로 이제는 논의가 옮겨갈 때가 된 건 아닐까.


착한 자기계발서가 보고 싶다.

눈먼 폭주기관차가 되라는 게 아니라

자주 멈춰 서서 스스로를 돌보게 하는

제2세대 자기계발서가 이젠 보고 싶다.


병든 자와 노인들
한쪽 문으로 사라지고

또 다른 문으론
지금 태어난 자들 들어온다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시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달려간다

내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고 또 느껴야 하는가

내게 다가올 끝날이 오면
나는 무엇을 찾았다 말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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