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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Nov 20. 2023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

유튜브에 알고리즘이 뜬다. 글쓰기 코칭 광고, 주제는 차별화된 글쓰기. 전엔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랍시고 성 관련 콘텐츠 온통 시뻘거무루죽죽하게 도배해서 사람 야마돌게 만들더니 이젠 글쓰기인가? AI는 뭘 근거로 내가 이걸 좋아할 거라 생각했을까? 내가 몽유병이라도 걸려서 비몽과 사몽의 경계에서 차별화된 글쓰기를 검색하기라도 했나?


뭐 어쨌든 상 차려 줬으니 눌러 보자. 삑. '차별화된 글쓰기는 어떻게 하는 건데?' 그게 궁금해서라기보단 'AI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모습인데?' 이게 궁금하다. 내용을 보니 강의 수강자들 중에 90% 이상이 1년 이내로 출간 계약을 했고 그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베스트셀러 작가도 있다는 거다.


수강료를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천만 원. 잘못 읽었나,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천만 원이 맞다. 맙소사, 차별화된 글쓰기 배워서 출간하겠다고 천만 원을 투자하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자비 출간은 어떨까. 내가 글쓰기에 관심 많은 건 맞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냐. 어이구 잉간아, 언제나 나를 제대로 한 번 봐 줄래? 사람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거라고. 이번에도 번지수 잘못 찾았어 잉간아. 아 참 너는 잉간이 아니군.




오래전 리바이스 청바지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때 리바이스 광고의 표어는 '난 나야'였다. 나는 세상 누구와도 다르고, 과거의 나 자신과도 다르다. 다만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었을 때. 어쩌면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었을 때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원래 달랐던 건 아닐까도 싶지만 남들과 다르고 고유하기를 원하는 본능을 자극한 이 문구는 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던 걸로 기억한다.

추억의 그 광고

그렇게 우리는 누구나 남다르고 싶어한다. 명품이나 외제차를 사는 것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국 나를 차별화하려는 몸짓이다. 누구랑 비슷하다, 닮았다는 말이 크게 반갑지 않은 것도 고유성에 대한 본능이다.


그런데 남다르게 글쓰기는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는 걸까. 천만 원 하는 그 수업을 들어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어쩌면 강의를 통해 그걸 가르치고 배운다는 생각부터 애초에 남다른 글쓰기를 고작 문체나 필력의 문제로 오인하는 건 아닐까. 우리는 학생 때부터 뭐든 남에게 배우면 내 것이 될 것만 같은 고질적 강의 판타지를 갖고 있다가 어른이 되어서도 그 잘못을 고스란히 되풀이하는 건 아닐까. 차별성 있는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곤 작법이 어떻고, 글의 분량은 어떠해야 하며, 시작은 어떠해야 하며, 마무리는 어떠해야 한다는 베스트셀러의 황금법칙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그렇게 너도나도 남다르려 애쓰니 결국은 본전이다. 우린 그렇게 차별화되기를 원하면서 점점 더 같아진다. 욕망의 유사성, 그리고 그 욕망의 추구 방법의 유사성이 합작하는 이 패러독스를 어떻게 이름하면 좋을까.

난 실제로 다른 사람들과 엄청 다르다. 그걸 나만 모를 뿐.

어차피 우린 모두 다르게 태어난다. 태어날 때부터 다르고, 살아온 인생도 다르다.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다지만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듯 이 말에도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그건 어쩌면 사람은 원래 누구와도 같지 않다는 그 하나의 사실은 아닐까.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37페이지에서 "우리가 버린 계란 껍데기, 시금치 이파리, 원두커피 찌꺼기, 낡은 마음의 힘줄들이 삭아서 뜨거운 열량을 가진 비옥한 토양으로 변한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저마다 땅이 다르니 거기서 피어나는 글도 당연히 다르다. 한국의 땅과 필리핀의 땅에서 자라는 과일은 원래 같지 않고, 한국 안에서도 봉화에서 나는 고추와 청양에서 나는 고추의 맛은 원래 같지 않다. 그 맛을 같게 하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실제로 그게 가능한지조차 모르겠다.


내 주변의 남다른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 그들 중 누구도 "나는 남들과 달라질 거야" 하고 노력하고 있지 않다. 그저 자기 삶을 자기 방식으로 살다 쓰니 남다른 글쓰기가 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자연스레 남들과 달라져 있는 자신을 억지로 깎아내고 다듬어서 남들과 같게 만들려 하지 않을 뿐이다.


내 경우는 남다르다는 말보단 기이하고 별나다는 말을 주로 듣는 편이지만 나는 이것도 나쁘지 않고, 나 역시 남과 다르려는 노력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남다름은 분명 좋은 것이지만 이미 모두가 남다른 존재이고 그걸 자신만 모르는 상태에서 남다름을 강조하다 그 자체가 하나의 엉뚱한 강박이 되길 바라지 않을 뿐이다. 마치 일만 시간의 법칙처럼 생각의 누적량이 일정량을 넘으면 남다른 사고는 알아서 흘러나올 텐데 그렇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다름에 대한 강박만 갖고 있을 때 생겨나는 이런저런 문제를 원치 않을 뿐이다.


남다름이라는 게 자그마치 노력씩이나 필요한 일일까. 남다르고 싶다면 남다르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일부러 남들과 같아지려고 애쓰지 않으면 될 일이다. 우린 처음부터 남다르게 태어났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각자의 방식으로 생각하며 점점 남들과 달라져 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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