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시작하고 한 달쯤. 글 하나에 댓글을 달았다. 브런치 메인화면에 걸린 글이었고, 그 작가님의 첫 글이었다. 많은 분들은 그분의 브런치 입성을 환영해 주시면서 글 내용에 대해서도 저마다의 사유에서 나오는 댓글을 정성스럽게 달아주고 계셨고,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글 쓰신 분은 그 많은 댓글들에 대댓글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네 감사합니다'... 로봇처럼 똑같은 말을 복사해서 붙여 넣듯 변주하고 있었다. 숨이 턱 막히는 듯했고 앞으로 그 작가님이 어떤 글을 쓸지가 궁금하지 않아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그분은 그 후로도 많은 글을 올리셨지만 첫 글에 다녀가셨던 분들의 흔적은 더 이상 없었고, 이후 모든 글의 댓글은 '0'이었다. 이걸 본 뒤로는 내 글을 조금 덜 쓰더라도 대댓글에는 시간을 아끼지 않으려고 했다. 글 잘 쓰는 작가는 되지 못하더라도 다시 찾고 싶지 않은 작가만은 되지 않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밤새 달린 댓글들에 대댓글을 달던 아침. 다른 분들이 달고 가신 댓글 하나하나를 보니 그건 모두 사유였다. 글은 오랜 시간 고민해서 쓰지만 댓글은 다른 이의 글에 그때그때 반응해서 쓰는 것이다 보니 나 자신도 댓글을 달 때 사유를 하고 있는 줄 몰랐다. 그런데 댓글 받는 입장에서 대댓글을 달다 보니 그제야 그게 보였다. 그건 글쓴이에게는 새로운 사유가 시작되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어떤 글에 30명이 댓글을 달았다면, 글쓴이에게는 30개의 사유 꼭지가 날아오는 셈이다.
글을 충분히 이해했고, 읽는 사람의 안에서 뭔가가 생겨났고, 글쓴이에게 뭔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이 셋이 다 될 때 댓글 하나가 탄생한다. 50% 이해해도 라이킷은 가능하지만, 50% 이해하고 댓글은 달 수 없다. 생각이 거기에 닿으니 댓글이 더욱 고마웠고, 대댓글에 소홀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사유를 넘겨받아 대댓글로 하나하나 이어 보며 사유가 확장되는 걸 느꼈다. 타인의 사유를 내 것으로 포섭하는 효과는 컸다. 마이웨이로 내 글만 썼더라면? 나는 혼자만의 힘으로 뭔가를 떠올리고 깨닫는 데에 취약하고, 그런 내 단점을 감안하면 생각하던 대로만 생각하고 얻던 것만 얻었을 게 뻔했다.
곳곳에 글쓰기 기술 코칭 수업이 많다. 비싸면 수백만 원, 아예 천만 원이 넘는 것도 있다. 하지만 효과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다른 사람이 알려주는 기술로는 나도 남들도 원하지 않는 글만 쓰게 될 것 같았다. 좋은 글은 글쓰기 기술 이전에 좋은 사유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럴 시간에 차라리 돈도 안 드는 사유 훈련을 하고 싶다. 나에게 사유 훈련이란 나의 불완전한 글을 댓글로 완성해 주는 다른 작가님들이 남기고 가신 사유를 대댓글로 이어나가며 그분의 시선에서 내 글을 바라보기다.
이젠 100% 완성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어차피 어떻게 써도 완전한 글은 되지 못하는데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실제 글 실력을 너무 앞서 나가 버려서 읽는 이의 사유를 가둬 버리면 그거야말로 정말 못 쓴 글이다. 부족한 부분은 다른 작가님들의 댓글로 채워지며 완성되어 간다는 기분으로 쓴다. 힘 빼고 쓸 수 있게 된 것도 이걸 처음 알게 되던 무렵이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진부해져 버린 '힘 빼라' 이런 조언. 그것도 뭔가를 먼저 깨닫고서나 가능해지지 아무런 깨달음도 없는 상태에서 암만 '힘 빼라, 힘 빼라' 외쳐 봤자 소용없다.
브런치 작가님들은 저마다 특화된 주제로 글을 쓰신다. 해외생활 이야기를 쓰는 작가, 반려동물 이야기를 쓰는 작가, 육아 글을 쓰는 작가, 도서나 영화를 비평하는 작가... 각자 자기만이 가진 이야기를 풀고 있는 상황에서는 글만 보면 접점이 많지 않아 보인다. 이 상황에서 누가 나를 계속 일부러 찾아와 주고 글쓰기를 지속하는 힘이 되어 줄까? 그전부터 이미 유명인이면 모를까, 암만 글솜씨 좋아도 그렇게는 되기 어렵다. 브런치는 다수에게 글이 노출되기 좋은 구조가 아니고 모르는 사람에게 피드백을 받기 쉽지 않은데, 나를 닮은 마음을 스스로 찾지 않고 내 글 쓰기에만 꽂혀 있다간 파리나 앵앵 날리고 "에잇 더러운 브런치 퉤퉤~!!" 결국 이게 되기 딱 좋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이 말하는 글벗이 내게도 하나둘씩 생겼고, 글벗의 존재는 글에 지속적으로 정성을 다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글벗 없이 오랜 시간 정성일 수 있을까. 애초에 자기가 갖고 시작한 에너지가 떨어지면 딱 거기까지 아닐까. 글을 쓰며 에너지를 소진하는 동안 다른 데서 생겨나는 에너지도 있어야 할 텐데, 글벗 없이 그 에너지가 어디서 올까.
다른 작가님들의 글마당에 댓글을 달기나 나를 찾은 작가님을 대댓글로 모시는 건 내게는 단순히 친목질이나 영업이 아니다. 내게 그건 글쓰기를 오래 이어나가면서 다른 분들의 사유를 받아 성장하기이다. 성공보다 성장이 좋은 건 성공은 위로 높아지는 기분이지만 성장은 옆으로 넓어지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위로 높아져서 많은 것을 내려다보는 것보다는 옆으로 넓어져서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는 게 난 더 편하다. 그 성장이 대부분 글보다 댓글로 이루어지니, 내겐 댓글이야말로 브런치의 꽃이다.
그렇게 댓글과 대댓글을 주고받다가 '아,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이런 글감이 있지' 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내가 스스로 떠올릴 수 있는 기억보다 뭔가가 나를 살랑 건드리고 지나갈 때 떠오르는 기억이 더 많다. 그냥 댓글 읽고 끝이면 남는 게 없고, 댓글에 담긴 사유를 대댓글로 이으면서 나의 언어로 정리하다 보면 '아하!' 하는 지점이 생긴다.
그렇게 댓글은 글이 된다
혼자서 떠올리는 글감에만 의존하면 글감을 소진하는 속도에 비해 새로운 글감이 떠오르는 속도는 아무래도 느리니 글쓰기도 갈수록 힘들어지지 않을까. 그건 나 혼자만의 힘으로 떠올려 낼 수 있는 기억에만 의존해서 글을 쓰고 있는 상태니까. 그렇게 뇌의 상당 부분을 썩히자니 그것도 참 아깝다.
브런치 작가 지원하던 그때 활동 계획을 뭐라고 썼는지 모르지만, 분명 나는 그때 써냈던 계획대로 활동하고 있지 않다(기억도 안 날 정도니 뭐). 그런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의 내가 알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작가님들과 댓글과 대댓글을 주고받으며 넓어지고 싶어요. 저는 위로 크는 기분보다 옆으로 넓어지는 기분을 좋아해요. 그러면서 좋은 글을 계속해서 끝없이 뽑아낼 수 있음을 난 알아요.'라고 썼다가 어째 상태가 살짝 안 좋아 보이는 이놈은 대체 어디서 뭘 잘못 먹었나 하고 빛의 속도로 광탈했겠지?
지금 아는 걸 그때는 몰라서 다행이다. 분명 좋은 건데도 너무 일찍 알면 좋지 않은 것도 있다. 글쓰기로 얻는 깨달음은 어디까지일까.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알지 못한다.
< 글 : 배가본드 / 대문사진 : pixab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