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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Dec 16. 2022

사라져 버린 메모장

문신(文神)의 강림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글쓰기에 필요한 영감은

언제든 어디서든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 순간 바로 적어놓지 않으면

얼마 안 가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 

뭐였지 

그게 뭐였지

나중에 떠올려 내지 못한다




지난 주말

새벽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신박한 게 떠올랐다

뭔가 머릿속에서 반짝 전등이 켜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이 순간을 놓치면 안된다

어떻게든 적어 두지 않으면

날아가 버리고 글로 태어나지 못한다


일어나서 메모를 하려니

눈이 떠지지 않는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5분만 더 자고 일어나자

10분만 더 자고 일어나자


사경을 헤매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죽을힘을 다해 연필을 집어 들고

찌그러진 눈으로 

아니 감긴 눈으로

노트에 삑삑 메모를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도로 잠이 들었다


해냈다

건졌다

이불속은 따뜻했고

베개는 폭신했다


도로롱 피유~

도로롱 피유~


점심때가 되어서야

다 자고 삘삘 일어나니

머리맡에 있어야 할 노트와 연필은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지고 간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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