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여보세요."
"배가본드님이죠?"
"네..."
"네, 선생님이 OO에서 하시는 강연에 대해 얘기 듣고 연락드려요. 저희는 사단법인 OO라고 하는데요. 작년에는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고...(중략). 이번에 저희가 ....를 대상으로 강연회를 열려고 하는데, 선생님께 재능 기부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런 면에서는 인터넷이 참 편한 것 같아요. 정작 저는 자기 홍보를 한 적이 없는데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가끔 과대포장될 때는요. 실제로는 저 한 몸 건사하지 못하면서 무늬만 어른인 뽀시래기고, 재능이 없으니 재능 기부도 못하는걸요. 인터넷이 우리로부터 빼앗아 간 것들에 대해 평소에는 아쉬움을 느끼며 살지만, 그런 저도 사실은 인터넷 시대의 수혜자인 거죠.
언제부터인지 '재능 기부'라는 말이 흔하네요. 부끄럽지만 저를 과대평가한 사람으로부터 저도 청을 받아 본 적이 몇 번 있어요. 그럴 때마다 사양을 해 왔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엔 야박하고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불편함이 있었어요. 저로 인해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분명 좋은 일일 텐데, 그 모습만 보면 마치 제가 대가를 바라서 그걸 하지 않은 것처럼 되어 버리니까요.
하지만 재능 기부라는 말은 기부자만 할 수 있는 말이죠. 기부를 해 달라고 청하는 시점부터 그건 이미 기부가 아니에요. 재능이 없어 재능 기부를 할 수조차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 사람이 가진 것을 공짜로 갖다 쓰겠다는 말밖엔 안 되고 흔히들 말하는 '열정 페이'하고도 맞닿아 있는 거니까요.
재능 가진 쪽에서 "거기 OO죠? 좋은 일 많이 하신다고 들었어요. 많이는 아니지만 이번에 혹시 제가 거들 것은 없을까요?" 이런 훈훈한 모습은 어느 때부턴지 자취를 감췄어요. 그리고 그 빈자리엔 무상으로 뭔가를 제공받아 자신들이 하는 일을 더욱 빛나게 하려는 쪽에서 '우리가 이런 좋은 의도로 이런 걸 기획했는데, 그중에서 요 부분에 당신의 재능 기부를 받고 싶습니다'만이 남았죠.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어떤 이는 말해요. 누군가가 기뻐하면 그걸로 된 거고, 베풀 때 그렇게 앞뒤 가리지 말라고. 맞아요. 분명 누군가는 기뻐하겠죠.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것일까요. 단지 그것만으로 그게 장기적으로도 옳은 일이 될까요. 그래서 기뻐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존재한다면 나는 정말 그걸로 된 걸까요.
어디선가, '목초지의 비극' 얘기를 읽었어요. 목초지의 풀은 공짜였고, 사람들은 목초지에 자기 소들을 최대한 풀어놓았죠.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기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한 거지만, 공동체 입장에서는 그 목초지의 풀은 모두 없어지고 멀쩡한 다른 목초지도 제공할 수 없게 되었어요. 결국에는 소 주인들도 피해를 본 셈이죠. 공짜라는 건 소유권이 없단 거예요. 아껴 쓸 이유가 없으니 '사회적으로 적정한' 수준보다 더 많이 사용되고, 결국 공급 자체가 없어져 버리죠. 저는 이게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이 가진 것에 어떤 식으로든 가치나 소유권을 부여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는 모두가 공멸하는 결과만 가져온다는 사실을요. 그게 선의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달리 볼 것은 아님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은 곧 가치죠. 아무리 좋은 것도 가격이 없다면 얼마 못 가서 가치를 잃어요.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지만, 실제로는 대중은 가치가 매겨지지 않은 것에는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아요. 그럼 그 재능은 사회적으로도 무의미해져요. 그걸로 먹고사는 수많은 이들의 밥그릇을 허공에 날려 버려요. 어떤 분야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 재능을 쉽게 기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아닐까요. 당장의 선의에 따라오는 뿌듯함에 매몰되어 이 하나를 가볍게 여겼다가 그걸 갖추려고 애쓴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까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그것까지도 의도하는 게 아니라면요.
메뉴판에 있는 메뉴를 서비스로 주는 밥집 사장님은 아마추어죠. 메뉴판에 없는 걸 주는 게 진짜 서비스예요. 나중에 저만의 것을 가지는 날이 온다면, 저는 그걸 절대로 아무 데서나 그냥 보여주지 않을 거예요. 누군가가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오랜 기간을 칼날같이 갈고닦아 만든 지식이나 기량은 그만의 상품이고, 기부를 하느냐 마느냐의 별개 문제와 치덕치덕 엉겨서 떡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니까요.
마이클 잭슨이 재능 기부랍시고 공짜로 공연했다면 누가 팝 공연이라는 것을 돈 내고 볼까요? 이미 떼돈을 벌어들인 그가 돈독 오른 야박한 사람이라서 그렇게 안 했던 걸까요? 아뇨, 실제로 그는 기부 천사였어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했을 뿐이고, 기부를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저는 그의 음악을 잘 이해하진 못해요. 그의 어느 노래의 후렴구에서 "띨해~♬ (띨해~♪) 띨해~♬ (띨해~♪)" 이러는데 그게 사실은 띨해가 아니라 'Beat it~ Beat it~'임을 알게 된 것도 아주 최근이니까요. 제가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가 대스타라서'가 아니라, '그가 대스타임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하는 많이 긴 문장이에요. 그가 우리만큼의 자비심도 없어서 한국식 재능 기부를 안 했던 걸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로 재능이 기부되려면 먼저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그 대가를 지불하고 그 사람이 그 대가를 기부하든 말든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이런 식으로 수요 측에서 곶감 빼먹듯 갖다 쓴다면, 저 멀리서 우리를 기다리는 건 목초지의 비극일 뿐이니까요.
재능 가진 사람들의 재능을 아껴 주세요. 오히려 저는 이날까지 애쓰고도 변변한 재능 하나가 없는 덕분에 이 하나는 확실히 알아요. 재능 재능 말은 쉽게들 하지만 그 재능 하나를 가진다는 게 실제로는 얼마나 어려운지를요. 주제넘는 얘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애쓰고도 제가 그게 없으니 이 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부란 참 좋은 거죠. 기부는 나눔과 친한 말이고, 나눔이란 제가 무척 좋아하는 말이니까요. 주는 사람은 줄 수 있어 좋고 받는 사람은 그게 필요해서 좋다면 함께 사는 세상에서 그만큼 즐거운 일이 얼마나 될까요. 노점 좌판대로 생계를 꾸리며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이 돈을 써 달라며 얼마를 쾌척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절로 고개가 숙여져요.
따뜻함과 흐뭇함이 넘쳐나는 세상을 꿈꿔요. 하지만 그전에 재능은 기부돼선 안 되는 것임을 저만이라도 잊지 않길 원해요. 기부를 한다면 재능을 기부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응당 따를 대가를 받은 후 그 대가를 기부하고 싶어요. 나눔은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그래야 나눔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은 말만으로 그치고 있지만 나중에 정말로 줄 수 있는 뭔가가 있게 될 때, 그땐 저에게도 기쁜 마음으로 기부를 할 수 있는 날이 허락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