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바꾸는 것이 더는 불가능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워킹맘은 늘 죄인이지. 회사에서도 죄인, 어른들께도 죄인, 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 계속 할거면 결혼하지마, 영이씨. 그게 속 편해."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일도 가정도 완벽한 그녀가 신입 여사원에게 해 준 의외의 충고에 우리는 큰 공감을 하였다. 이것은 단지 드라마 속 허구가 아니라, 이 시대의 아픈 속살이기 때문이다.
IMF 기준 2018년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3만2775달러로 세계 195개국 중 29위다. 통일이 되면 세계 몇 대 경제 대국이 될 것이란 전망도 서슴지 않고 이야기하는 요즘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겉모습이나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이다.
OECD 지표 중, 여성이 일과 가정에 충실할 수 있게 배려하는 제도와 사회적 관심 수준을 나타내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사회자본’ 최하위(2014), '일·가정양립지수 Work-Life Balance' 최하위(2017),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매년 최고치를 기록하는 데 반해 근무 환경은 최악인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여성의 역할은 차치하고 인구의 반인 여성이 불행하니, 행복지수 최하위 국가, 자살률 1위 국가라는 타이틀은 당연하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못사는’ 나라가 맞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한 서양에서는 개인의 업무와 사생활 간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과 능력은 있으나 성·인종·장애 등의 차별로 고위직을 맡지 못하는 유리 천장 glass ceiling과 같은 논의가 이미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최근에야 이슈가 되어 모성보호 제도, 보육교사 신규 양성,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 가족친화인증기업 등 다양한 정책이 시도되고 있다. 실상은 실질적인 변화 없이 ‘취미 생활’ 정도의 소비 트렌드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말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일·가정양립이라는 해답 없는 문제에 닥쳐, 성평등·직장문화·사회제도의 탓이나 하며 여유롭게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는 시점에 왔다고 본다. 가난한 싱글맘에서 미국 최고의 여성CEO가 된 미국의 발명가이자 기업가인 조이 망가노 Joy Mangano의 실화 영화 <조이>(Joy, 2015,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에서 일·가정양립의 답을 구해보자.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던 '조이'(제니퍼 로렌스 분). 그녀에게는, 이혼 한 엄마와 아빠, 이복언니, 할머니,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 재키가 있다. 행복한 삶을 꿈꿨지만, 부모덕에 대학도 포기하고, 가수 하겠다고 노래만 불러대는 남편 덕에 이혼까지 얻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지옥같이 일상 속에, 어느 날 조이는 아주 멋진 것을 만들어 세상에 보여주겠다는 어릴 적 꿈을 이루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직접 걸레를 만지지 않고 물을 짜낼 수 있는 대걸레, 미라클 몹 Miracle Mop을 만들었다. 아빠의 부자
애인에게 투자도 얻었다. 그러나 사업 초짜에겐 모든 것이 난관이다. 거기에 싱글맘이 돌보기엔 죽고 싶을 정도의 하루하루가 지속된다. 포기 직전, 전남편의 소개로 미국 최대 홈쇼핑 채널인 QVC에 방송할 기회를 얻은 조이. 기적처럼 대박 행진을 시작하지만, '호사다마'다. 언제나 위로를 주던 할머니의 죽음, 가족의 비협조, 거기에 계약 분쟁까지. 하지만, 주도적인 삶을 다짐한 그녀는 다시 일어나 성공을 이어간다.
정말, 영화 같은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인 조이 망가노는 100여 개에 달하는 특허와 빅히트 제품으로 대박을 치며, 현재 개인자산 500억 원이 넘는 부호로 ‘여성 자수성가’의 대명사가 되었다. 러셀 감독은 “역사적으로 많은 여성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좌절했고 스스로 기회를 헤쳐 나가야만 했다”며, “대부분 실제 여성들은 꿈을 잊은 채 자연스럽게 집과 가족을 돌보는 역할을 맡지만, 조이는 온갖 시련에도 꿈을 좇아 엄청난 끈기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 그녀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이유라 하였다.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은, “지금 시대에, 대한민국 현실에, '아메리칸 드림'이 웬 말이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싱글맘의 가장으로서의 삶, 사회에 만연한 유리천장을 온몸으로 부딪혀 극복한 한 여성의 이야기는 단순히 ‘희망고문’이 아니다. 조이는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영화 밖 현실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의 여성들은 일·가정양립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3040 워킹맘에게 물어보았다. “개인의 선택인데, 둘 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만 없다면 가능하다”, “마음만 먹는다면 할 수 있다”, “양립은 불가하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며 사회 분위기나 남편의 마인드 변화가 중요하지만 결국 ‘선택의 문제’라는 의견이 많았다.
영화 속 조이처럼 대한민국의 여성도 ‘역할갈등’을 겪고 스스로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으로 여러 지위를 갖고 거기에 따라 각각 역할을 요구받는데, 그 역할 간에는 모순과 충돌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이 갈등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해 중요한 일부터 한다든지, “남들도 이렇게 한다”며 ‘자기합리화’를 한다든지, 각각의 역할을 분리하여 선택과 몰입을 하는 ‘역할격리’를 하기도 한다.
산업사회에서 ‘분업’은 더 세밀화·고도화되고, 각자 맡은 바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래서 ‘역할론’이라는 것이 사회를 지배하는 중요한 가치였다. 이제 우리는 그 역할론에서 조금씩 벗어나며 일·가정양립을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일·가정양립을 가능하게 하는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요인이 조이에게 있다.
"넌 나중에 커서, 강하고 똑똑한 여성이 될 거다", "이게 네가 꿈꿨던 삶은 아니지만, 그래도 꿈꿀 수 있는 나이잖니", "넌 틀림없이 성공한 가장이 될 거야"라며, 언제나 힘을 주던 할머니가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할머니의 이야기들은 조이에게 긍정적인 자기암시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넌 뭐든 해낼 수 있어"라는 암시 어린 말을 듣고 자란 조이가 긍정적인 힘을 갖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또한, 가장 친한 친구 재키의 응원, 이혼은 했지만, 삶의 파트너인 전남편, 말썽꾸러기지만 기댈 수 있는 부모와 이복 언니의 존재는 조이에 대한 지지가 된다.
결국, 역할갈등의 해소, 긍정적 자기암시, 그리고 가까운 사람의 지지는 조이의 회복탄력성 resilience을 높여 주고 결국 자존감을 세워, 최악의 환경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보면, 보수는 ‘개인 탓’, 진보는 ‘사회 탓’을 한다. 그리고 일·가정양립 같은 문제들은 온라인상의 여론과 만나 성 평등, 정권, 금수저와 같은 틀 안에서 이야기되며, 문제가 그것들의 탓으로 돌려지며, 그것들부터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 하고 있다.
물론, 개인의 문제를 온전히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자신이 아닌 사회나 타인의 탓만 하다가 스스로 문제를 극복할 힘이 없어진 것은 아닐까? ‘너 때문이야’라며 불만을 가지고, 그 불만을 누군가에게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탓하면서 자기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고 위안하며 자신의 인생을 방치하고 있지 않았는가?
대게 그렇지만 정책은 정치적 마스터베이션에 그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바야흐로 맞이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전통적인 개념의 일자리도 가족도 점점 소멸시킬 것이므로, 지금과 같은 ‘기승전헬조선’과 같은 논의는 그야말로 비생산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렇게 사회나 남 탓을 하고 있는 동안, 우리의 아이와 가정, 그리고 사회가 더 불행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이 망가노 처럼, 선택하고 집중해 보자. 내 가족과 함께. 끝.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리 #인식 #철학 #인문 #소비 #캐릭터심리학 ##영화 #조이 #JOY #일·가정양립 #워라밸 #WorkLifeBalance #워킹맘 #미생 #조이망가노 #JoyMangano #제니퍼로렌스 #역할갈등 #자존감 #역할론 #선택 #자기암시 #회복탄력성 #일상 ##사보 #칼럼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심리 #작가 #칼럼니스트 #정호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