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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렌콩 Sep 08. 2022

‘헤엄’이 내 삶의 ‘일부’가 되기까지

‘수영’과 ‘수양’의 심신 단련을 상기하며 오늘도 여전히 헤엄을 친다.

내 사주 명식을 살펴보면 화와 수의 기운이 발달해 있단다. 음양오행을 기준으로 사람의 기운과 운명을 분석한다는 사주에 뜨거운 불과 차가운 물이 같이 있다니. 과연, 사주에 불과 물이 많아서인지 분명 내 성격엔 불처럼 화끈한 면이 존재했다. 한편, 물처럼 싱겁거나 투명한 면도 가끔씩 고개를 내밀곤 했다.


“사주에 불이 많으면, 그 불을 꺼트리기 위해서 수영하면 더 좋대~”


내 사주엔 불이 많은 만큼, 물도 그 불만큼의 비율로 동일하게 존재한다고 일컬어 주니, 임기응변에 능하신 철학관 아주머니는 도리어 맞받아쳤다.


“물불이 같이 있으니까 오히려 물을 더 좋아하고 가까이 하겠네~”

그러나 과연 그 말은 꽤 사실적인 진단이었다. 언젠가 내가 사주를 알아차리기 훨씬 이전부터 나는 그토록 물을 좋아하고, 물을 사랑하곤 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물이 나를 이끈다고 해야 하는 게 맞을 정도로 물을 가까이 하는 편이었다.


바다나 물가 근처를 거닐거나 구경하는 것도 하루 종일 해낼 수 있었다.

얼마 전 관람한 영화, 탕웨이 박해일 주연의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이란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지자요수 인자요산,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이 사물을 통달해서 두루 막힘없이 많은 이들을 이롭게 하는 모습이 흐르는 물처럼 세상을 이롭게 하면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물과 같다 하여 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란다. 그 핑계로 나는 물을, 수영을 더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내 핸드폰과 컴퓨터 배경화면은 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잔물결인 윤슬이 돋보이는 감성적인 물 사진이다. 시원하고 청량한 물이 너무 좋아 자주 볼 수 있는 기기에 설정까지 해 두었다. 물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 안에 자리했던 어지러운 감정의 결들이 온화하게 가라앉는 느낌이다. 즉, 나는 마음의 정신수양을 물로써 풀어내는 것이다. 그토록 물을 좋아함에도, 초등학교 시절 아주 잠깐 배운 수영을 빼고는 제대로 된 수영 강습을 받아 본적도 없었다.



물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도리어 물을 사랑하는 내가 물과 친숙하고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수영이란 운동도 배운 적도 없으니, 모순적이라면 모순적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수영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지만, 먹고 사느라 바빠 어느덧 20대 후반에 이르렀다. 코로나가 첫 기승을 부리던 그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시간이 많아진 나는 드디어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20년도 5월에 처음 시작한 수영 강습을 시작으로 22년도인 올해까지도 햇수로 3년째 꾸준히 헤엄을 치고 있다.


모든 영법을 마스터하며, 상급반은 물론 50m수영장을 찾아다니며 수영 기록과 심박수를 체크할 수 있는 웨어러블 시계와 수영 전용 골전도 이어폰을 착용하며 그 외에도 강습에 필요한 오리발과 스노클링 장비를 마련하는 등 그야말로 ‘수영 덕후’ 완벽한 ‘수영인’으로 거듭났다.


앞에 모든 영법을 완수 했다고는 적었지만, 아직 나의 영법은 완벽하지는 않다. 모든 배움이 그렇듯이, 배움엔 끝이 없다. 수영도 배우면 배울수록 아주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 교정과 연습이 필요하다. 자유형에 필요한 꾸준하고 힘 있는 발차기와 부력을 이겨내며 물을 끝까지 밀어내는 팔의 힘과 동시에 노련한 팔꺽기, 그 다음으로 정확하게 앞으로 푹 찍어내는 손동작이다. 더불어 얼굴 오른쪽 사선방향으로 입과 코로 공기를 흡수하는 호흡법도 필수다.


이 모든 정교한 동작들을 리듬과 타이밍에 맞춰서 해 내야만 좀 더 빠르고 편안한 헤엄을 칠 수 있다. 초보 시절에는 그저 숨쉬기 바빠 헤엄치면 칠수록 팔과 다리가 엉망이 되었지만, 오랜 연수와 교정으로 내 팔다리와 얼굴이 물에 적응하여 이제는 더 빠르고 이상적인 숨쉬기로 여유로운 헤엄이 가능해 졌다. 그래서 수영 선수도 아닌 내가, 점점 스피드와 속도를 고려하는 등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수영은 배우면 배울수록,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먼저 수영장의 레인은 곧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도로와 똑같다.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약속과 규범과 순서, 차례처럼 레인에서 수영하며 도로의 자동차를 운전하듯 내 몸을 운전해야 한다.


도로의 흐름을 깨지 않고, 간격에 맞춰 운전하듯 헤엄쳐야 하며 적당한 리듬과 앞뒤 동료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수영장 입성 전, 몸을 깨끗이 헹궈내고 자꾸만 젖은 몸에 찰싹 달라붙는 수영복을 요령껏 열심히 입는 등 그렇게 부지런히 일련의 행동을 해 내고, 준비운동을 마치고 수영을 시작하면, 역시나 인생은 이렇게 홀로 이뤄내고 혼자 부지런히 살아가야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수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숨을 쉬는 리듬과 타이밍인데, 우리네 인생사에도 리듬과 타이밍이 수영처럼 너무도 핵심적이지 않는가.


물속에 잠수한 채, 물속의 호흡법을 익혀내며 규칙적인 리듬으로 수면 위 공기를 최대한 머금으며 숨을 쉬곤 한다. 물속은 고요하나 내가 내쉬는 음-소리와 보글보글 물소리로 가득하다. 수면 위로 얼굴을 빼꼼 내민 채 입을 힘껏 벌려 최대한 많은 공기를 빨아들여 내 숨을 비축하며 레인 끝을 향해 열렬히 헤엄친다.


레인 끝에서 숨을 몰아쉬며,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한다. 조금 진정하며 물 에 서 있으면, 방금 전 나처럼 맞은편에서 끝까지 헤엄친 이가 숨을 몰아쉬며 휴식한다. 그러면 꼭 그 사람이 쉬는 따뜻한 숨 냄새가 물큰물큰 느껴지곤 한다. 타인의 이산화탄소 냄새를 맡으며 나 또한 이 냄새를 풍겼으리라고 생각한다.


수영에 우리네 인생사를 접목하며, 다시금 되짚어 나가며 수양을 다스리곤 한다. 그러니까‘수영’은 곧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품성을 이끌어내는‘수양’인 셈이다. 수영과 수양이 한 음절 한 끗 차이라니 꽤 절묘하다. 물속에서 내 몸을 온전히 느끼고, 물의 부력을 이겨내며 홀로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꼭 인생과 삶과 닮아 있다.


수영을 배우고 좋은 점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수영장 시간에 맞춰서 세면도구와 수영복을 챙겨 수영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뉴욕의 프로 발레리나들이 언제든지 길 근처의 댄스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본인의 토슈즈를 신고 프리 댄스를 추는 것처럼,


수영도 마찬가지로 본인의 수영복을 입고 자유 수영을 할 수 있다. 수영도 춤처럼 몸으로 일궈 내는 운동이며 동작을 한번 익혀내면 수영장에서나 바다에서나 물속에서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으니까.


수영으로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이제는 내 삶에‘헤엄’이 없다는 건 상상도 어려울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중독자가 되어버린 것처럼, 수영이란 운동은 유독 많은 추종자와 중독자,‘덕후’, ‘고인물’들을 양산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 예로, 수영장의 상급 레인이나 빠른 레인에 꼭 수영장 고인물로 지칭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계신다. 그들은 날쌔고 다부진 몸으로 수준급의 헤엄을 치며 인간 돌고래 수준으로 빠르고 정확한 헤엄으로 옆에서 구경하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이다. 이렇듯 수영은 타 운동보다 비교적 더 오래,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이 틀림없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의 저자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님이 스트레스에 대한 심신단련을 위해 매주 수영장에 가서‘접영’을 한다는 인터뷰를 접한 적이 있다.

접영은 영법 중 가장 어렵기에 제일 마지막에 배운다. 그만큼 기술력과 힘이 많이 들어가는 영법이다. 두 손을 동시에 앞으로 뻗쳐 물을 아래로 끌어 내리고 양다리를 모아 상하로 움직이며 발등으로 물을 치면서 나아가는 수영법으로 엄청나게 많은 힘을 소비해야 한다.


접영은 굉장히 멋있는 영법이지만, 그만큼 어렵고 정교한 기술력으로 이뤄져 있다. 잘 못 하면,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 살려라’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유성호 교수님이 그렇게 힘든 접영으로 심신단련을 한다는 사실이 꽤 반가웠다.


나 또한 컨디션이 좋은 날이나, 너무도 큰 스트레스를 받은 날에는 접영으로 한 레인을 꽉 채우며 내 몸을 괴롭히곤 한다. 그러면 몸은 그만큼 힘들지만, 정신은 한 결 더 가볍고 상쾌해지기 때문이다.


내 일상의 여러 목차에 따라 영법들을 달리하며 헤엄치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햇수 3년째이며 내 수영은, 나의 헤엄은 내 삶에 빠질 수 없는 일부가 되고 말았다.


나의 ‘헤엄’이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온전한 나를 이루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헤엄을 쳐야 할까, ‘수영’과 ‘수양’의 심신 단련을 상기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물길이 설레고 또 감사하며 오늘도 여전히 헤엄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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