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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렌콩 Aug 20. 2018

영화 동주, 투명한 물처럼 맑은 영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야."

  N과 오랜만에 영화를 관람했다. 최근 주말, 비가 아주 많이 내리던 압구정에서, 영화 '동주'를. 친한 지인은 이미 그 영화를 혼자 봤더랬다. 근래, 시에 취한 나로써는, 시를 읽고 써봤던 나로써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동주는 슬프지 않았다. 흑백 영화의 고루함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동주는 슬프지 않았는데... 엔딩컷에서 흘러나오는 동주 OST 자화상을 들었을 때는 마음이 찌리찌릿했다.  눈은 울지않는데, 마음이 울어주는 느낌이었다. 몇개월만에 느껴보는 익숙한 마음이었다. 그때 흘리지 못한 눈물이 뒤늦게  올라왔다. 그리고 지금 자화상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쓰는 나는, 아기처럼 글썽이고 만다. 근래 울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마음이 쓸쓸해져서 그 얕은 여운에 찬 빗방울이 스치는 것만 같았다. N은 우산을 피면서 내게 말했다.


"나는 윤동주, 너무 서정적이어서 별로 안 좋아했어, 시."


  N이 내게 영화속 동주의 마지막 장면처럼 '시'하고 외쳤다. 그래, 나도 그랬던 것 같아. 나도 그랬다고 공감했다. 고등학생 때는 교과서를 통해서 시를 읽었지. 그때 읽었던 교과서 속 윤동주의 시는 서정적이지만 공감되지는 않았어. 이미 예민한 감수성 넘치는 여자 고등학생들에게 '서정'이라는 단어는 지나친 사치라고만 생각했다. 너무...빤하다고만 생각했다.


  친한 친구의 신춘문예 등단 소식. 동주의 시선으로 바라본 몽규는 아주 올곧았고 당찼다. 사실, 송몽규의 인물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협력자가 있었다는 막연한 정보였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윤동주를 기억했고, 그가 지었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어주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동주의 시선으로 바라본 몽규와, 그런 몽규가 바라본 동주를 오롯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속 실존 인물 몽규는 행동했던 인물이었다. 행동이라는 액션을 취한 인물이었다.동주처럼 시를 썼고, 등단했던 가장 액션적인 인물.


  그에 반에, 동주는 행동하지 않았다. 정정, 뒤늦은 행동이었지만, 소시민적인 인물이었다. 시를 좋아하고 시를 사랑하는 시밖에 모르는 순수한 청년. 시가 쉽게 쓰여서 창피하다고 말했던 그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야."라는 대사처럼 동주에게도 몽규와 같은 자아는 있었다. 그 섬세한 자아는 여과없이 부딪치며 따스한 위로를 풀어낸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위로 받았다. '자화상'을 들으며 멍청하게 눈물 짓는다. 여운이 울컥, 혹은 왈칵.


  이렇게 좋은 영화를 왜 이제서야 만들었을까. 고등학교때, 밋밋하고 무거운  교과서 대신에 이 영화를 보여주었다면, 윤동주의 시들이 더욱 가슴 깊이 와 닿았을텐데. 그래도 이준익 감독님 감사해요, 이제서라도 동주를 더 절실하게, 영상으로 빛내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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