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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렌콩 Jan 30. 2019

예를 들면 치약이나 숟가락 따위

  이를 닦고, 치약을 만지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물건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만화책이나 TV, 누군가의 말에서 꺼내지던 물건 하나에 집착해서 온 종일 그 물건만 만져댔다. 예를 들면 치약이나 숟가락 따위. 6남매인지 9남매인지 자식이 많은 집안의 가족들이 나오는 드라마 중에서 자신의 집에 하숙하던 남자 선생이 이를 닦을 때 치약을 쓰는 걸 보고, 막내가 자신들은 굵은 소금으로 이를 닦는데 도시에서 온 선생님은 귀한 치약으로 이를 닦는다고 서럽게 울던 장면이었다. 그래서 결국 선생님이 자신의 치약을 소량 짜주니 아이는 칫솔도 없이 자신의 검지 손가락으로 치약을 묻혀 이를 닦았다. 

  드라마의 정황은 아주 옛날 보릿고개 시절에는 치약도 귀해서 소금으로 이를 닦았다는 것을 표현하려던 모양이었지만 당시 그 막내와 비슷한 동년배였던 나에겐 꽤나 충격이었다. 지금은 저렴하고 가장 필수품 중에 하나인 치약이 그렇게나 귀했다니, 못 믿겨하며 집에 있는 새 치약을 소중하게 들고 다니며 잘 때는 머리맡 배게 밑에 넣어 두기까지 했다. 나의 작은 손에 두툼하게 들어오던 튜브 볼록했던 새 치약, 그 감촉이 좋아서 열심히 만졌다. 한편,지금은 흔하다 못 해 필수적인 물건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 그토록 귀했다니까 그 물건이 도로 귀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숟가락, 짧고 뭉툭한 숟가락이었는데 특이한 점은 잡는 부위에 귀여운 갈색 테디베어가 그려진 숟가락이었다. 숟가락은 작았지만, 잡는 부분이 짧았을 뿐, 음식을 담는 부분은 성인 수저만큼 넓고 큼직했다. 그래서 더 귀여웠다. 작고 뚱뚱한 펭귄을 보는 느낌이었다. 일반적인 흔한 수저가 아니라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귀여워져서 그 수저로는 어떤 음식을 담아 먹지 않았다. 다만, 내 주머니에 가방에, 잠 들 때 머리맡에 넣어두고 소중하게 간직했다. 

  유년의 시절, 나는 그랬다. 어떤 물건에 한 번 꽂히면 주구장창 그 물건만 만지고 소중하게 대했다. 어떤 날은 그 물건이 동전이 되기도 했고, 성냥이나 지우개가 되기도 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소중한 물건은 많지만, 유년의 그 마음만큼은 아니다. 순수하게 물건에만 집중하던 유년의 기억이 가끔씩 떠오르는데 그게 어쩐 좀 생소하고 먼 기억의 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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