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by 가담


엄마의 아침은 요란하다.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향하시는 곳은 다름 아닌 거실. 전날 밤 아무렇게나 둔 리모컨을 찾아 티브이를 틀어 집안 곳곳에 은은한 소음을 퍼트리는 일로 아침을 시작하신다. 오락을 즐기기 위함이라기보단, 본격적으로 새로운 하루를 나기 위한 첫걸음인 셈이다. 아무렇게나 떠들어대는 티브이로부터 대략 30cm 정도 떨어진 곳에 두 발을 가지런히 놓고, 양팔을 어깨높이만큼 천천히 들어 올리는 이 순간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그다음으로는 부엌. 물 한 바가지 받은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려 점화 버튼을 딸깍 돌리고, 널찍한 국그릇에 달걀을 살살 풀어 랩을 씌운 뒤 전자레인지에 넣는다. 물이 보글보글 끓기까지, 그리고 빙그르르 돌아가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달걀찜이 완성되기까지 못다 한 의식을 마저 치르신다.

두 발은 가지런히, 양팔을 어깨높이만큼 천천히.



엄마는 춤꾼이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무용가. 늦은 나이에 시작한 만큼 바지런하시다. 하루 동안 학생과 선생님 그리고 프로 무용가의 신분을 넘나든다. 한참이나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공부하랴, 동네 어르신들을 가르치랴, 대회에서 선보일 안무를 연구하랴. 하루를 쪼개고 쪼개어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꿈을 차차 이뤄 나가는 중이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춤을 추고 싶어 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사람이다.



그나마 엄마에게 여유로운 시간은 일요일 오전일 거다. 그래봤자 커피와 샌드위치로 간단하게나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정도가 전부일 테지만. 그럼에도 보통의 날과는 확연히 다른 넉넉함이다. 식탁을 중심으로 그녀와 마주 앉아 커피를 즐길 때야말로 주말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사람은 뭐든 몰두할 게 필요해. 취미를 갖고, 또 도전해 봐야 멋진 인생 아니겠어?"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며 툭 던진 그녀의 말이 마음을 울렁인다. 몰두와 취미 그리고 도전, 머그잔을 움켜잡은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삐죽 튀어나온 것만큼이나 독보적이고도 자극적인 단어들의 나열이다. 이 세 가지 단어가 지닌 무언의 위력에 대해 음미하다 보니, 손바닥만 하던 샌드위치는 어느새 한 입 거리가 되었다.




마음이 답답할 때 자연스레 찾게 되는 무엇이 있다. 누구는 매콤한 음식을 먹고, 또 다른 누군가는 푹신한 침대에 몸을 맡기겠지만, 나는 카페에 간다. 간단하게 지갑과 얇은 책 한 권을 챙겨 카페에 온몸을 파묻는다.

아무 카페에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크고 웅장한 카페도, 특이한 메뉴가 있는 곳도 아닌, 주택가 사이에 꼭꼭 숨어있는 바로 그 카페. 이제 막 세탁기에서 꺼낸 이불만큼이나 축 처진 마음을 넓게 펼칠 수 있는, 주름진 마음을 쭉 펴줄 수 있는 온기가 있는 바로 그곳이어야만 한다.

단골손님이 되기로 마음먹게 된 이유는 아주 많다. 문을 열자마자 코로 훅 들어오는 고소한 향기도 좋고, 주황빛을 띠는 조명도 마음에 들고, 또 이에 잘 어울리는 배경음을 듣다 보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뭐, 커피와 디저트가 맛있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그래도 단골손님이 되기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건 다름 아닌 이 공간의 주인장이지 않을까 싶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카운터가 시야에 들어온다. 카운터와 그 옆에 놓인 선반이 이어져서 만든 아늑한 모퉁이, 바로 이곳이 사장님의 지정석이다. 손님이 들어오는 타이밍에 맞춰 얼굴을 빼꼼 내밀기 좋은 자리다.

어서 오세요가 아닌 안녕하세요. 거기에 미소도 잊지 않고 꼭 보내주신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안다. 가깝고도 먼, 이름 모를 익숙한 단골손님에게 보내는 일종의 예의와 반가움의 표시일 거다. 꿍하고 울적한 마음까지 뚫는 기분 좋은 신호. 덩달아 웃을 수밖에 없는 이상한 에너지다.

웃음에도 종류가 있다면, 마냥 가깝지만은 않은 사이에서 피어난 웃음은 짤막한 스파크 같은 걸까. 서로의 안녕을 싱싱하게 나누고 난 뒤엔, '아'나 '어' 같이 매가리 없는 호응으로 대화를 흐지부지 일단락 짓고 만다. 그리고 불가항력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정적의 순간, 이때가 바로 주문하기 좋은 타이밍이다.



따뜻한 차 한 잔과 사과잼이 가득 올라간 휘낭시에가 식어버린 대화를 기어코 살려낸다. 컵이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당부와 함께, 사과를 너무 오래 졸여 알맹이의 식감이 죽어버렸다는 소소한 비밀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맛있는 냄새는 어색한 공기를 부드럽게 풀어주고, 뜨끈한 온기와 달콤한 맛은 마음속 깊이 있던 말을 내뱉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을 빌려, 나도 내 비밀 패 하나를 깐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계신 당신이 부럽고 멋져 보인다고. 나도 당신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추운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발걸음을 이끌어낸 장본인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거다.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상대의 역질문에 답답함 너머에 있는 본심까지 와르르 쏟아졌다.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요.

이거야말로 내가 진짜 하고 싶던 말이다.



사장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는 내 애인 다음으로 나의 고민을 들어버린 첫 번째 사람이 됐다.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역시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답게 노련하게 대화를 이끌어간다. 경청과 공감, 거기에 적절한 조언까지 아끼지 않는다.

"놓지만 않으면 되죠. 글 한 편 써본 사람이 나중에 두 편을 쓰는 법이니까요."

다리 떠는 게 습관이 된 나머지 다리를 떨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듯, 몸에 글 쓰는 일이 배어버릴 정도로 계속하라는 것이 그가 내린 처방이다.

사장님의 똑 부러진 목소리는 분명 나를 향하고 있지만, 그의 시선은 곱게 갈린 원두를 향해 그리고 손은 최적의 온도로 달궈진 커피 머신 위에 머물러있다.

커피를 향한 마음이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이 해준 조언이라 그런지 더 믿음직스럽다. 어쩌면 그런 사람이 내려준 커피라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걸지도.

진하고도 고소한 맛, 이곳에 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의 아침은 요란스럽다. 티브이를 틀고, 요리를 하고, 또 틈틈이 춤을 춘다. 생활 잡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짓 하나하나에 진심을 더한다.

그날 그녀가 수줍게 건넨 초대장엔 그러한 진심이 숱하게 묻어있을 거다.

엄마로부터 엄마의 마음을 알아간다. 어린 시절의 나를 볼 때 분명 이런 마음이었겠지 하고. 크고 작은 시험을 앞뒀던 나를 보며 이런 긴장감을 여러 번 돌파했을 그녀를 생각해 본다. 어련히 잘하겠지만, 혹여나 긴장한 탓에 저지른 의도치 않은 실수로 스스로에게 실망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또 더욱이 잘 해냈으면 하는 바람에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있는 힘껏 응원하던 젊은 시절의 그녀.

피붙이는 못 속인다. 엄마에게 배운 사랑의 방식을, 어느새 훌쩍 환갑이 되어가는 그녀에게 되돌려준다.



장미와 카네이션 그리고 이름 모를 보라색 꽃으로 어우러진 꽃다발과 함께 초대장에 적혀있는 장소로 향했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색, 보랏빛으로 물든 이 꽃이 그녀에게 힘을 더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의 차례다. 무대의 캄캄함을 뚫는 익숙한 실루엣이다. 아침밥은 꼭 먹고 다녀야 한다며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던 바로 그 뒷모습이다.

서서히 밝아지는 조명 아래, 그녀라는 사람을 똑똑히 응시한다. 한복 치맛단으로 살짝 보이는 버선과 어깨높이만큼 서서히 수평을 맞춰가는 소매 끝. 늘 연습했던 그 동작. 아니, 그 이상의 춤이다.

엄마의 눈빛이 나를 안심시킨다. 반짝반짝 빛나는, 끊임없이 춤에 몰두하고 도전하며 갈고닦은 열정이 서려 있는 그 눈빛.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일은 그저 흩트림 없는 그녀의 강인함을 지켜보는 것뿐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남은 샌드위치 덩어리와 함께 삼킨 단어가 금방 소화됐다. 그만큼 정답이 명확하다는 뜻이겠지. 그저 그런 하루를 모음과 자음이라는 도구로 영원히 붙잡는 것. 내가 본 세상의 아름다움을 나의 언어로 형태를 부여하는 것. 몰두하고 도전해 보고 싶은 취미, 이제껏 나에겐 글을 쓰는 행위가 그래왔다.



늦은 나이에 시작해 홀로 텅 빈 무대를 가득 채우고, 가지각색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커피를 내리기까지 부단히 노력했을 그들로부터 힌트를 얻는다.

쓰고, 쓰고, 또 쓰고. 호흡하고 눈을 깜빡이듯, 습관적으로 다가가야겠지. 글을 쓰는 데 필요한 건 종이와 연필뿐이니 변명의 여지는 없는 듯하다.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글을 쓰는 날에는 좌절하기보단 연필을 뒤집어 보자. 연필의 맞은편 끝에 지우개가 괜히 달린 게 아닐 테니까.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언제가 됐든, 결국 마침표를 찍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빛나는 이들은 또다시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간다. 한국 무용에 자신만의 것을 접목하고 싶다는 엄마와, 살아있는 카페를 만들고 싶다는 카페 사장님의 여정은 평소와 그리 다르지 않을 거다. 늘 그래왔듯, 자신의 일을 열렬히 사랑하기. 이것이 바로 그들이 꿈을 이뤄 나가는 방식이니까.

하고 싶은 일을 손에서 놓지 않다 보면, 어쩌면 엄마가 말한 그 멋진 인생이라는 걸 살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애정을 가득 담아 이 글의 마침표를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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