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전단지 한 장이 발목을 붙잡는다.
3개월 치 등록비가 단돈 7만 원이라는 헬스장 개업 홍보지나, 마트 할인 행사 품목을 나열한 종이 쪼가리였다면 꼿꼿이 갈 길 갔을 거다.
동그란 원 안에 달랑 한 글자 '퀵'. 마치 돋보기 렌즈로 들여다보듯 이목을 확실하게 사로잡는다. 짧고 날카로운 어감. 빠르고 급한 분위기에 별도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걸지도 모른다.
전단지의 측면을 따라 담벼락 밑으로 시선을 따라 내렸다. 검정 장화 한 짝과 거무튀튀한 우산 하나가 우뚝 솟아있고, 그 아래엔 이름을 붙이기 애매한 무언가들이 얽히고설켜 작은 섬을 이뤘다. 급변하는 세상의 속도에 쓸려 나온 불순물처럼, 그 모습은 마치 '퀵'이라는 말이 형용화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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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할 틈이 없는 세상이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또 등장한다. 태양은 고작 몇 초만 응시해도 옅은 빛의 잔상이 남는데, 세상은 그럴 새도 없이 빠르게 사라지고 생겨나길 반복한다. 자그마한 흔적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없어졌다. 분명 일주일 전만 해도 인적이 느껴졌던 공간이었지만,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휑 비어 있다. 어떤 방식의 이별이든 서운한 건 마찬가지다. 유리창에 당당하게 붙어있는 임대 현수막이, 꼭 급하게 전하는 작별 인사 같이 느껴진다.
솔직히 가게의 폐업 소식에 슬퍼할 자격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싱숭생숭한 마음이 민망할 정도로 그곳에 대해 도통 기억 나는 게 없다. 집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인데도 간판 색은 물론, 가게의 이름까지 어느 하나 선명한 구석이 없다. 그간 심드렁했던 속내가 이렇게 드러난다. 지금은 없는, 하지만 분명 존재했던 이름 모를 공간이 그저 많고 많은 가게 중 하나였으며, 고작 하나의 배경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기억하지 못하는 건 물리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뭘 보고 들었는지, 1분이 채 되지 않는 짤막한 영상의 내용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잠들기 직전, 보송한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에야 자유 시간이 허락된다. 이불속에 들어가 하염없이 휴대폰을 보는 것이야말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게 취미라는 진부한 말 뒤에 숨은 현실일지도 모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의 절반 가까이 일과 사람에 치이다 보니 생긴 현대인들의 은밀한 습관이리라. 아주 팔이 저리도록, 성실하고 묵묵하게 수행해 온 오랜 버릇이다.
단단히 고정된 팔뚝 위로 엄지손가락 또한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 라이터에 불을 붙이듯 손가락으로 휴대폰 화면을 연거푸 쓸어 넘긴다. 불씨 대신 타오르는 건, 새로운 걸 갈구하는 욕망. 더 자극적이고, 더 흥미로운 걸 찾아 무한 로딩의 굴레에 빠진다. 저기서 조금, 여기서 조금. 잠깐씩 스쳐 지나간 잔상들이 또렷이 기억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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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30대를 맞닥뜨렸다. 똑 부러지고 당당한 어른, 이것이 내가 어렴풋이 그린 30대의 모습이다. 하지만 현실은, 힘들 때 엄마아빠부터 떠올리는 다 큰 아이일 뿐. 다시 오지 않을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에 전전긍긍하다 보니, 저항 없이 차고 있는 나이를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 오직 눈가의 주름과 드문드문 빛나는 새치가 나이를 증명하고, 유행에 뒤처지기 시작한 언행이 가장 가시적인 증거가 아닐까 싶다. 빵 쪼가리조차 자르기 힘든 무딘 칼날처럼 시대의 흐름에 점점 둔해진다.
마시멜로가 가득한 '스모어 초콜릿'이 내가 알고 있는 최신 유행의 전부다. 이것도 간신히 따라간 거다. 실타래처럼 가느다란 카다이프와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를 섞은 '두바이 초콜릿'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아니란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게 바로 스모어 초콜릿이라고.
유행과 거리가 먼 어른이 된 건, 순전히 세월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어느 정도는 세상 탓도 있다. 발맞춰 걷기 버거울 정도로 세상이 빠르게 변해서, 그만 흐름을 놓쳐버린 거다.
고작 7평 남짓의 집에서 밥을 먹는 15분 동안에도 세상은 바쁘게 흘러간다. 아침에 먹는 사과만큼이나 영양가 있는 정보와, 심심풀이 땅콩 같은 가십거리가 뒤섞인 채 끊임없이 손 위로 쏟아진다.
이 많은 걸 전부 소화해 내려면 내 호흡도 덩달아 빨라질 수밖에. 재생 중인 영상 아래로 타인의 반응을 살피거나, 심지어는 이를 잘 요약한 또 다른 2차 콘텐츠를 찾아 헤맨다. 그러면서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한 여유 시간을 확보하는 거다.
결국 탈이 난다. 소화가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해서, 헛구역질 한 번에 그간 삼킨 걸 다 게워 낸다. 형태도 의미도 알 수 없는, 뒤죽박죽 섞인 잔해들. 중요함과 무의미함이 뒤엉킨 데이터 더미 앞에서 정신이 멍해진다. 이럴 바엔 그 무엇도 보지도 듣지도 않는 편이, 눈 딱 감고 양이나 세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빠져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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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이 고이면 썩듯, 우리의 삶 또한 끊임없이 흘러야 발전과 혁명이라는 게 일어날 테니까. 그에 따라 집안 곳곳을 메운 사소한 물건들과, 그간 진리라 여기던 생각의 기준들까지 몽땅 물갈이할 때가 분명 오고 만다.
옷, 신발, 가방, 그릇, 컵, 책, 카펫.
지난 30여 년 동안 쌓고 흘려보낸, 내 방에서 빠르게 등장하고 사라진 것들의 목록이다. 양심에 손을 얹고, 결코 적지 않은 양이기에 미처 다 읊지 못했을 거다. 기부라는 이름으로 혹은 대청소라는 명목하에 내 손을 떠난 것들. 운이 좋았다면 새로운 주인을 만나 쓰임을 다하고 있을 테고, 그게 아니라면 소각장 어딘가를 표류하고 있거나,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들이다.
이기적이게도, 문득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그것도 약간의 후회를 곁들여서.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이라면 미처 정 붙이지 못하고 떠나보낸 물건들에게 못다 준 애정을 건네고, 손때가 진득하게 묻을 만큼 오래도록 애용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세상이 조금만 느리게 흘러간다면, 기억의 범위는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나를 둘러싼 주변의 것들, 그 안에 스며든 사사로운 이야기들까지도 미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두바이 초콜릿을 드디어 먹어봤다. 오도독 씹히는 게 별미다. 품절 대란 전쟁통 속에서 갈구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한철 지난 인기의 맛'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맛있다.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빠르게 스쳐 지나간 것들에 애도를 표한다. 또렷이 기억하지 못했고, 제대로 누리지 못했음에 대하여. 역동적인 시대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최대한 느리게 걷는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느릿느릿, 폐의 가장자리까지 깊이 숨을 들이쉰다. 한 발짝에는 따스한 햇살을, 두 발자국엔 잔잔한 바람을 담아보면서.
-언제 사라질지 모를 지금을, 생생히 기억하고 싶은 2025년의 어느 신인류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