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는 괴로워》, 가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영화다. 전신 성형이라는 파격적인 소재에 이끌려 흥미롭게 보다가 끝내 울고 마는 영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다 고쳐 스타가 된 주인공 제니의 진심 어린 고백 때문이다.
"저는 제니가 아니에요. 저는 한나예요. 강한나."
제니의 본명은 강한나. 영화의 대사를 빌리자면, 강한나는 되게 못생기고 뚱뚱한 사람이다. 끝내주게 노래를 잘 부르지만, 무대에 발끝조차 들일 수 없을 만큼 미의 기준에서 한참 벗어난 불운의 캐릭터다. 그녀의 자리는 늘 무대의 밖. 예쁘고 늘씬한 립싱크 가수 뒤에서 얼굴을 숨긴 채 그저 목소리를 빌려줄 뿐이다.
한나가 얻지 못한 건 무대에 설 기회뿐만이 아니었다. 온기를 주고받는, 사람 냄새나는 관계라고는 한나의 세상엔 없었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만큼 어려운 게 또 없다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속고 이용당하는 건 너무 잔혹하다. 그래서 한나는 목숨을 담보로 한 전신 성형을 감행했는지도 모른다.
오뚝한 코와 똘망거리는 눈. 그녀가 모든 행적을 감춘 지 얼마가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태어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나가 아닌 제니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그녀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됐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넋 놓고 쳐다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토록 꿈꾸던 무대에 올라 단번에 대스타로 떠오른 것도 그녀의 수술이 성공적이라는 걸 증명한다. 하지만 그녀를 선망하는 수많은 관중은 모를 거다. 완벽한 제니 안에, 못생기고 뚱뚱한 강한나가 발버둥 치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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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무거워진 사람들이 있다. 그 무게의 주범은 목구멍 깊숙이 삼킨, 차마 세상 밖으로 내뱉지 못한 이야기들이다. 전혀 보고 들은 게 없다는 듯, 육하원칙을 깡그리 뭉개며 어물쩍 대화를 넘기는 것이 그들의 고질적인 습관이다. 타인에 대한 건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한 것까지도 철저히 비밀로 한다.
오른쪽 어깨와 왼쪽 어깨가 짝짝일 수도 있다는 걸 거울 너머로 처음 알게 됐다. 짝궁뎅이도 아니고 짝어깨라니. 이렇게 알게 된 이상 그냥 넘길 수 없다. 밥 먹을 때나 걸을 때도, 온신경이 양 어깨로 쏠린다. 등껍질에 쏙 들어간 거북이처럼 얼굴과 어깨의 경계가 사라진 모습을 발견한다. 시도 때도 없이 짧아지는 목이 영 못마땅하다. 반복되는 수축과 이완. 쉼 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긴장과 부담으로 단단하게 뭉친 근육이 울퉁불퉁 솟아오른 걸지도 모른다.
어깨에 실린 힘은 유동적이다. 어깨선을 따라 목으로, 다시 입 주위로 흘러간다. 타고 올라온 압박감은 입술과 입술 사이를 단단하게 조여 오고, 결국 말을 목구멍에 뭉개버린다. 단 한마디도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아마 당신도 느꼈겠지. 나와 당신 사이에 무언의 벽이 있다는 것을. 입이 무거워질수록 비밀의 무게는 더해져 가고, 마음과 마음 사이의 벽은 점점 두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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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썼다 지우길 반복한 지 꼬박 한 달. 비밀을 주제로 쓰려니 머리가 울렁거린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써야 할까, 너무 과하지는 않나 싶어 그간 써온 글을 과감하게 지워버렸다. 그러니 속도가 더딜 수밖에.
글뿐 아니라 말과 표정마저 고장 나 버린다. 얼굴과 얼굴이 마주 볼 때 고스란히 그 티가 난다. 눈은 웃지 않지만 입꼬리는 살짝 올라간 기괴한 미소를 날린다거나, 맞장구를 칠 타이밍에 묵음 버튼을 꾹 눌러버리기도 한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부엌에서 풍기는 구수한 냄새와 그릇끼리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의도치 않게 일찍 깨버렸다. 평소 같았다면 반쯤 감긴 눈으로 간신히 자리에 앉아 무작정 글을 썼을 거다.
일어나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반년이 넘었다. 규칙은 간단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세 페이지에 떠오르는 대로 글을 마구 써 내려간다. 이걸 모닝 페이지라 부르는 모양이다. 우연히 들린 카페에서 사장님의 권유로 시작한 일종의 오기였는데, 이제는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진작부터 하루를 시작한 엄마와 아빠의 분주한 움직임이 문틈 사이로 살짝 보인다. 이젠 일상이 아니게 된, 내가 이곳에 와야만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다. 익숙한데도 왠지 낯선 하루가 아침의 시작을 망설이게 한다. 쓸까 말까, 그렇게 몇 분을 매트리스에 파묻혀 있었다.
침대에서 기어 나와 책상이든 탁자든, 어디든 꼿꼿이 앉아 멀쩡하게 글을 쓰면 될 것을, 굳이 이불속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글을 쓴다. 내가 무엇을 하든 환영해 줄 그들이지만, 이상하게도 이불을 뒤집어쓰고서라도 행적을 감추고 싶어진다. 어릴 땐 크고 작은 잘못을 감추기에 바빴다면, 이제는 나라는 사람을 부지런히 비밀로 한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알리기 싫다기보다는, 감히 알려도 될지 망설이게 된다.
아무리 납작 엎드렸다 한들, 부자연스러울 만큼 우뚝 솟은 이불은 적잖이 수상해 보였을 거다. 혹여나 누가 보면 어쩌나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이 몸의 부피를 아슬아슬한 풍선처럼 부풀려 놓았을 테니까.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기 딱 좋은 수상한 모양새다. 불길한 예감은 늘 틀리지 않는다.
"컴컴한 데서 뭐 하고 있어"
빛과 어둠의 경계에 선 문턱 너머로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아빠. 아무것도 아니라고 넘기기엔 분명히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었고,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민망함과 싸워 이겨야 한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서 쳐낸 시간은 고작 10초 안짝.
"일기 비슷한 걸 쓰고 있었어"
일단 멋쩍게 웃는 게 첫 번째다. 그다음엔 가장 무난한 답을 내뱉는다. 웬 일기냐는 공습을 대비해 나름의 방어책도 마련해 뒀으니 안심이다.
빛과 어둠의 경계가 무너졌다. 아빠의 흰머리와 이마의 주름이 또렷이 보일 만큼, 아주 환하게. 불을 켜고 편히 앉아서 쓰라는 아빠의 한마디에 팽팽하던 긴장감이 펑- 하고 터져버렸다.
*
내유외강. 사사로운 비밀이 나약한 사람을 겉멋만 들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처참히 무너질 듯한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는 성벽을 높고 견고하게 쌓는다. 까치발로도 닿지 못할 만큼, 아무나 접근할 수 없도록. 빈틈없이 완벽한 사람으로 기억되려는 강박이 매사에 애를 쓰는 사람으로 만든다.
이런 필사적인 몸부림마저 무력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 대부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경계심이 만든 너울을 아무렇지 않게 헤엄치고, 비난과 꾸짖음이 아닌, 격려와 따뜻함으로 채워주는 사람들. 염치없게도, 그래서 그들을 깊이 애정한다.
입이 근질거릴 때가 있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말을 아끼라며 붙잡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아픈 곳을 움켜쥐듯, 성대를 있는 힘껏 조여버린다. 그저 힘을 풀면 해결될 것을, 얼굴이 새 빨게 질정도로 꾹 참는다.
모두에게 솔직할 필요는 없을 거다. 딱, 사랑하는 몇몇에게만이라도 솔직하면 된다. 그간 짊어온 비밀의 무게를 덜어내고, 서로의 맨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보도록. 눈가와 입가의 주름이 자연스레 어우러진, 무해한 미소를 서슴없이 공유하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나는 나다. 허점이 많고 사랑이 필요한 나. 외로운 완벽주의자가 아닌, 행복한 허점투성이로 살아가길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