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꽤 괜찮은 할머니가 될지도 모르겠다
부끄러운 순간이
부쩍 많아진 요즘
가끔 멍 때리면서
양치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하.하.하."
듣기 민망할 정도로
정직한 웃음소리인지라
누군가 들었다면
소름이 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혼자 있을 때만
이런 웃음이
나온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1년 전이든 10년 전이든
언제 적 일인지 상관없이,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쳤던 부끄러운 순간들이
제멋대로 머릿속에 상영될 때
이상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가장 오래도록
상영된 수치심 단편극은
키가 120cm
언저리 일 때의 일이다.
이제 막 포크보다 젓가락을
자주 사용했을 무렵,
사실 '사용하다'라기보다는
'잡는다'의 수준이었다.
갓난 아이가
엄마의 손가락을 감싸듯
오른손으로 젓가락 한 쌍을
주먹 쥐듯이 잡고서는,
젓가락 사이에 생긴
미세한 틈 사이에
음식을 겨우 걸치고서
곧장 입안으로 가져왔다.
포크를 갓 졸업한
나 자신이 기특해서인지,
누구에게라도 좋으니
그 못난 젓가락질을
마구마구 뽐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친하게 지냈던
동네 어른과의 식사 자리에서
다시 포크를 사용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서툴지만 당당했던
나의 젓가락질에 대해
부모님도 뭐라 하시지 않았는데,
동네 어른은
나의 그런 허점을
아주 정확하게
콕 집어서 이야기해 주셨다.
그때가 아마
7년 정도의 인생살이가
느낄 수 있었던
최고의 수치심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 언제 올지 모르는
동네 어른과의
식사 자리를 상상해 보며,
콩자반 옮기기 대회에
나갈 기세로
젓가락질 연습을 했다.
어느 날은 평소처럼
세발자전거를 타며
집 앞을 누비고 있었는데,
같은 아파트 1층에 살던
동갑내기 친구가
두발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트랙으로 삼아
빙글빙글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세발자전거가
따라잡지 못하는 격차에
점점 멀어져 가는
그 애의 뒷모습을 보니
묘하게 감정이 일그러졌다.
같이 세발자전거를
타던 사이인데
배신 당한 느낌이기도 하고,
어느샌가 그 애만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그 애가 보조 바퀴를
다시 달리는 없으니,
일그러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내 보조바퀴를
떼어버리는 수밖에.
다시 그 애와
동일한 선에서
달리고 싶은 마음에,
엄마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경비 아저씨의 도움을 받으며
두 바퀴 세계에
천천히 입문했다.
더 이상 누군가 뒤에서
잡아주지 않아도
두 바퀴로 세상의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아이와의 격차가
좁혀지는 것을 상상하며
내가 밟을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페달을 밟아보았다.
어릴 때는
어리숙했던 행동의 잔상이
머릿속에 가득하더니,
조금은 어른이 되어보니
툭 내뱉었던 말이
누군가 귓속말로 속삭이듯
머릿속에 이리저리 뒹굴어 다닌다.
본심과 달리
약간의 고집이 들어갔거나,
내 본모습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약간의 '척'이 들어간
그런 말들이 유독 그렇다.
'조금 더 다정하게 말할걸'
'조금 더 꾸밈없이 말할걸'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 먹고 싶은 마음에,
상상으로나마 과거로 돌아가
하고 싶었던 말을
차근차근 내뱉어 본다.
간혹 운이 좋게 데자뷔처럼
똑같은 상황이 오면,
이때다 싶어
상상 속의 대사를 빌려
조금 더 나다운 대답을 해본다.
이번에는 부끄럼 없이
잘 대답한 것 같아
스스로를 토닥이며,
어느 때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에 든다.
지금의 내가
젓가락을 쓸 때나
자전거 앞에 설 때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것은,
7살짜리 아이의
수치심 덕분인 것 같다.
지금의 미숙한 말과 서툰 감정에
달려있는 보조 바퀴도
언젠가 떼어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부끄러운 순간이
부쩍 많아진 요즘,
어쩌면 훗날
꽤 괜찮은 할머니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