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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만능 치트키
욕구 게이지를 초록빛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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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담
May 23. 2023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그리
즐겨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중학생 때 유독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인
심즈라는 게임을 좋아했다.
애매모호한
현실의 나와는 달리,
게임 속 캐릭터는
각 욕구에 대한 수치가
가로로 길쭉한 바 형태로
시각화되어 있었다.
잠이 부족하면
초록색으로 가득 차 있던
에너지 게이지는
왼쪽으로 점점 떨어졌고,
한계치에 다다르면
제발 잠 좀 자자고 소리치듯
빨간색으로 변하면서
위험 신호를 보냈다.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을 몰라서
답답할 때면,
원하는 게 뭔지
확실히 알고 있는
심즈 캐릭터가 부러웠다.
내 머리 위에도
직관적으로 볼 수 있는
욕구 데이터가 반짝거린다면,
하루 종일 원인을 알 수 없던
꾸리꾸리한 기분까지라도
금방 다시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가끔 서점에 가서
책을 구경하다 보면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욕구 게이지가
머릿속에 둥둥
떠다닐 때가 있다.
책에 적혀있는
'자존감', '자신감', '용기'
이런 비스름한 단어를 보며
위로를 받는 날이면,
무표정 속에 가려져있던
지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부모님께 조금은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어서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책을 다 읽을 때쯤이면
욕구 게이지가
초록색으로 가득 차서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을까 기대해 보지만,
마지막 페이지에
가까워질수록
처음의 다짐이 무색하리만큼
점차 원래의 나로 돌아오며
빨간색 불빛이 반짝거린다.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한 책이
괜히 원망스러워지고,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다른 책을 펼쳐보며
초록빛과 빨간빛이
번갈아가며 깜빡거린다.
"그저 책 한 권을 읽고,
메시지 하나를 골라
내 인생에 적용하면 끝이다."
최근에 읽었던
'저는 이 독서법으로
연봉 3억이 되었습니다'라는
책에 적혀있는 한 문장 때문에,
또다시 초록빛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심즈 캐릭터도
욕구의 수치만 보여줬지,
결국 초록빛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밥을 먹든, 잠을 자든
적당한 액션을 취하기 위해
스스로 움직여야 했다.
내 상황과 감정을
대변하는 듯한 책을 읽으며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욕구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해 보지도 않고
그저 책 한 권을 다 읽었다는
뿌듯함만 간직한 채
그대로 책을 덮어버렸다.
방 한편에 책이
쌓여가는 동안
작게나마 책의 내용을
인생에 적용해 봤다면,
지금 내 모습은
자신감 넘치고,
아이디어도 많고,
말도 꽤 잘 하는
어느 사람들의 모습과
손톱만큼은 닮은 구석이
있지 않았을까.
'책 한 권에 메시지 하나'라는
인생의 만능 치트키로
이제라도 욕구 게이지를
초록빛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수많은 저자의
가치관을 손에 들고
나만의 인생 컨트롤러를
앞으로 밀어보며,
과거의 나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생각에
괜히 설레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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